“한강 책, 형부·처제 묘사 부적절” 학부모들 반대…전교조 “현대판 분서갱유”

김수연 2024. 10. 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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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단체연합, ‘채식주의자’ 도서관 비치 반대서명
전교조 “비상식적인 요구…정상 범주서 한참 벗어나”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문학실에 마련된 한강 특별서가를 찾은 시민이 한강 작가의 책을 보고 있다. 뉴시스
 
교육계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학부모 보수 단체가 성교육 유해도서라며 ‘학교 퇴출’을 촉구하자 진보 단체는 비상식적인 요구라고 맞섰다.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보수 성향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은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물’로 규정, 초·중·고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아동 및 청소년 서가 비치를 막기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전학연은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한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에서는 형부가 처제의 나체에 그림을 그리고 촬영하며 성행위 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게다가 처제는 갑자기 채식을 한다며 자해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나무가 되겠다고 굶어 죽는 기이한 내용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책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려는 시도에 학부모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청소년 보호법 제9조 제1항에 의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는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이 포함돼 있고 ‘이에 해당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누가 보아도 청소년유해매체물인 내용의 책을 아직 미성년인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9금 성인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해서 청소년 관람 가능 영화가 될 수는 없다”며 “영화에 관람 불가 등급이 있듯 도서에도 미성년 보호를 위해 연령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후보 시절인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조전혁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이 된다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이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본인이 교육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며 “이에 정 교육감에게 공개적으로 질의를 한다. 채식주의자를 끝까지 읽어보았는지, 그리고 자신의 미성년 손자·손녀가 있다면 과연 필독도서로 추천하고 싶은지 공개적인 답변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 단체는 앞서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성애를 허용하고 학생의 교내 휴대폰 사용 제한을 완화하는 등 교육 현장을 망치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법을 폐기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이 주도한 채식주의자 반대 서명은 지난 22일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서울특별시교육청·인천광역시교육청·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을 향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프란츠 카프카 변신·단식광대 책을 든 채 질의하고 있다. 뉴스1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일부 우익 단체들은 그동안 성교육·성평등 교육 도서 폐기를 요구하고 심지어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일부 교과서에 담긴 성평등 교육 관련 내용을 ‘성혁명 교육’이라 비방한,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혐오와 차별에 물든 비상식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단체”라며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들의 행태는 현대판 분서갱유와 다름없다”며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실제로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져 일부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해당 공문을 눈치 보며 교과서 선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단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로 숱한 성평등 교육 도서가 폐기돼 왔으며 그중에는 최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면서 “그리고 이러한 금서 조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해당 단체들의 주장에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일부 학교 관리자들이 침묵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인 김경률 회계사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식이면 로마신화, 단군신화 등도 보지 말게 해야 한다”며 “나아가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서적도 모두 불태우고,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도 구속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군 신화는 뭔가. 이건 곰과 호랑이의 수간을 연상한다. 단군도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성경도 오만 패륜과 부적절한 묘사가 판을 친다. 정신분석학은 또 뭐냐. 신성한 조선 땅에서 문학예술과 철학을 금하노라”고 비꼬았다.

채식주의자의 학교 도서관 비치 여부를 둘러싼 공방은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지난해 보수 단체의 보도자료를 첨부한 경기도교육청의 공문을 받은 도내 학교들이 도서 2500여권을 폐기했는데, 그중 한 학교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가 성 묘사 문제로 폐기된 사례를 놓고 지적이 잇따른 것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2일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는데 아주 깊은 사고 속에서 쓰인 깊은 사고가 들어있는 작품”이라면서도 “책에 담긴 몽고반점 관련 등의 부분에서는 학생들이 보기에 저도 좀 민망할 정도의 그렇게 느끼면서 읽었다. 내 아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대착오적 도서 검열”이라고 비판했고,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경기교육청이 작년 3차례나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목록 제출’ 등 문구가 담긴 공문을 학교에 보낸 것은 검열 또는 강압에 해당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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