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새 주인을 찾는 가운데 속전속결로 진행된 회생신청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주목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용등급 강등 이후 나흘 만에 관련 작업을 끝낸 것을 두고 미리 내부적으로 준비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지도 하지만, 이는 MBK파트너스의 과거 경험과 법률대리인의 전문성이 시너지를 낸 결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회생사유가 지급불능 가능성이 아니라 유동성 관리를 위한 사전대응이었던 덕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홈플러스는 법원의 인가 전 인수합병(M&A) 허가를 받았다. 인가 전 M&A는 법정관리 중인 기업이 회생계획 인가를 받기 전 M&A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홈플러스는 2월28일 한국기업평가로부터 단기 신용등급이 기존 'A3'에서 'A3-'로 강등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3월4일 홈플러스는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선제적 구조조정 차원에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신용등급 하락 이후 불과 4일 만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사전에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인지하고 기업회생을 준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MBK도 이 같은 논란을 인지한 듯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을 예견하지 못했고, 회생절차 또한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MBK가 이처럼 빠르게 기업회생을 신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2016년에도 영화엔지니어링의 기업회생 절차에 나선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MBK는 1000억원을 들여 영화엔지니어링을 인수했다. 이 회사는 2007~2012년 국내 강구조물 시공능력 평가에서 6년 연속 1위에 오른 강소기업이었다. 그러나 국내 건설경기 하락과 무리한 해외 수주에 따른 자금소진 등으로 경영난에 직면해 201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국 영화엔지니어링은 2017년 1월 496억원에 연합자산관리가 인수했다.
이후 영화엔지니어링은 부활에 성공했다. 2016년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엔지니어링은 영업손실 117억원, 당기순손실 132억원의 적자기업이었다. 같은 해 매출은 510억원으로 전년 대비 40.1% 급감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31억원, 당기순이익 26억원을 달성하며 흑자를 거뒀다. 연간 매출은 891억원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해보다 400억원 가까이 불었다.
이번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에서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관기 김·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도 신속한 절차를 진행하는 데 숨은 원동력이었다. 법조계에도 기업회생 분야의 전문가가 드문 현실에서, 관련 경험이 많은 김 변호사의 내공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김 변호사는 기업회생·파산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도산법연구회장을 맡는 등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한국도산법학회 이사와 법무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개정·태스크포스 위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회생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앞서 그는 수원지법 판사와 서울민사지법 판사, 제주지법 판사 등을 지냈다. 서강대 법학과 교수와 등기경매변호사회장을 맡은 뒤 대한변협 수석부협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또 홈플러스의 회생사유가 지급불능이 아닌 유동성 문제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국내에서는 유동성 문제로 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드물지만, 홈플러스는 유동성 리스크가 예상되자 선제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홈플러스의 유동성은 최근 수년 새 눈에 띄게 악화됐다. 당좌자산을 기준으로 보면 5년 사이 반 토막 난 후 회복되지 못하는 흐름이다. 당좌자산은 상품판매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다. 기업 자산 중에서도 빠른 현금화가 가능한 여력을 살필 때 활용되는 지표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올해 2월 말 당좌자산은 4080억원에 그쳤다. 2021년 같은 달의 1조774억원과 비교하면 62.1% 급감한 액수다. 이후 △2022년 2월 말 5067억원 △2023년 2월 말 3051억원 △2024년 2월 말 3814억원 등에 머물렀다.
그런데 유동성을 이유로 한 회생은 신청 절차를 훨씬 간소화할 수 있다. 홈플러스가 유독 빠르게 이 절차를 마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지급불능 사유라면 법원에 향후 변제계획을 필수적으로 제시해야 하지만, 유동성 사유일 때는 일정 기간의 현금흐름만 예측하면 되기 때문이다. 회생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절차가 진행되며 채무지급이 중단되는 동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만 살펴보면 된다는 취지다. 이는 외부 회계사의 도움 없이 사내 재무부서 선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업무다.
IB 업계 관계자는 "MBK는 과거 영화엔지니어링 기업회생 절차를 경험했기 때문에 홈플러스도 예상보다 빠르게 회생 절차에 나선 것으로 안다"며 "유동성을 이유로 한 회생신청은 자금지급 여부, 자금활용 계획 등 기업불능 회생과 달리 신청서가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MBK의 발 빠른 회생신청과는 별개로 법원에서도 유동성 위기에 따른 회생 허가를 빠르게 결정해준 것이 상황의 시급성을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황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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