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조선은 끝난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고조선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고조선을 너무 쉽게 과거로 밀어낸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우리는 지금, 다시 고조선을 사유해야 하는가. 고조선은 멀어진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유의 층위이며, 오늘의 문명이 직면한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기억하고 모셔와야 할 문명적 기억의 저장소다.
직선 시간은 무너지고 있다. 21세기 초반의 세계는 더 이상 '발전–성장–진보'라는 직선적 시간 위에 있지 않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삶은 오히려 불안정해졌고, 국가는 강해졌지만 사회는 갈라졌으며, 연결(connect)은 극대화되었지만 의미(value)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 시간 감각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면 좋아질 것(진보)"이라는 말로 미래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런데 고조선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다. 때문에 고조선의 시간 구조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고조선의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직선이 아니었다. 단절과 반복, 변주와 환류가 함께 작동하는 입체적 시간, 순환적 시간이었다.
나는 이것을 '뫼비우스적 시간'이라고 불러왔다. 이 시간 감각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과거의 재귀, 전통의 재등장,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고조선 문명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접히고, 비틀리면서 현재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사회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네트워크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네트워크는 기술과 효율의 문제로만 이해되고 있다. 고조선은 '강해(江海) 문명권'으로 체계화 됐다. 긴 강은 내륙을 연결했고, 하구는 교차점을 만들었으며, 바다는 외부 세계와의 순환 통로였다. 이 강과 바다의 네트워크는 지배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 환류를 위한 구조였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강해 문명은 오늘날의 디지털 네트워크, 물류망, 문화 순환 구조나 의미상 의외로 깊이 '공명'한다. 우리가 한동안 잃어버린 네트워크의 철학이 여기에 남아 있다.
21세기형 생태 위기 앞에서 우리는 고조선을 다시 읽고 적용해야 한다. 기후 위기와 생태 붕괴는 근대 문명 모델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분리하고, 소유하는 방식이 더 이상 지속되게 해서는 안된다. 고조선 문명은 결코 인간을 자연 위에 올려놓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한 결이었고, 문명은 자연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먼 옛날의고조선 문명권은 낭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인류가 반드시 다시 사유해야 할 문명적 선택지다.
오늘날 그토록 문제가 심한 정치는 상징으로 작동하고, 문화는 이미지와 코드로 순환한다. 이 점에서 고조선은 문자 이전의 문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호 문명의 성격을 띄운것 같다. 일연이 기록한 단군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산·하늘·나무의 삼중 구조, 반복되는 제의와 공간 배치, 장소에 새겨진 의미들로 차있다.
원(고)조선은 기호를 활용해서 세계를 조직하고 운영하던 문명이었다. 그리고 이 상징과 논리는 오늘날의 이미지 정치와 문화 분석에도 의미를 주는 해석 자원이 된다. 고조선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질문이다. 고조선을 다시 사유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와 서양문명이 배제했던 시간 감각을 회복하고, 직선적 발전사관을 넘어, 관계·환류·공존의 문명 논리를 다시 묻는 일이다. 인간은 시원은 물론 불확실한 과거에서 찾는다. 문명사에서 시원이란 오래된 출발점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다시 돌아가 확인해야 할 사유의 깊이다. 특히 고조선은 이미 끝난 문명이 아니라 충분히 사유되지 않은 문명이다. 지금 나는 우리의 원형인 원(고)조선을 통해 우리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언어와 사상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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