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나라의 가후입니다.
본디 동탁을 모시다가 조조에게로 넘어간 책사죠?
삼국지 역사서를 편찬한 진수는
조조의 3대 책사로 순욱, 순유 그리고 가후를 꼽았습니다.

그 정도로 가후의 능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죠.
계산하는 능력만 놓고 봤을 때
가후의 능력은 장자방에 비견될 정도였다는 묘사도 있습니다.

동탁 사후 가후는 동탁의 부하들 중 장제를 섬겼는데,
장제 사후에는 장제의 조카 장수를 모셨죠.
장수는 조조에게 괜히 덤비다가 패배한 후 항복하였는데,
조조가 장수의 숙모와 간통했다는 사실에 장수가 분노합니다.

가후의 계략에 따라 조조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군대들을 무장시켰고,
가후가 정해준 날짜의 정해준 시간에 조조를 급습하니
바로 완성 전투죠.

이 완성 전투에서 조조가 그토록 아끼던 전위와 아들 조앙이 사망한 사건이 유명하죠?

이 이후 가후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완성 전투의 복수를 하고자 조조는 장수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었으나
조조군이 퇴각을 하는 겁니다.

조조군의 유인책 같다며 절대 추격하지 말라는 가후의 조언을 무시하고
장수는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했다가
역시나 매복을 받고는 도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가후는 다시 장수에게
지금 다시 조조군을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조언했고,
정말로 가후의 말대로 조조군을 공격하고는 장수가 승리를 거둔 겁니다.

한번 조조군이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경계가 느슨해져 있을 것이고
또 패주한 군대가 다시 돌아와 공격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가후는 분석했던 거죠.

그러나 끝끝내 조조를 이길 순 없었고
장수와 가후 모두 조조에게 완전히 투항하죠.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원소에게 밀려 절망하고 있을 때
가후와 순욱만이 조금만 버티면 이길 수 있다고 조조를 설득했고

적벽대전 직전에 절대 손권을 자극하지 말고 차라리 손권에게 여러 혜택을 주어
손권을 조조 편으로 만들라는 조언을 했으며,

마초의 서량군벌이 조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때도
마초와 마초의 숙부 한수를 이간질하라고 조언한 것도 가후였죠.
그리고 조조가 후계문제로 고민할 때
가후가 조조에게 원소와 유표를 잊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죠.

삼국지의 결말까지 아는 시점에서 본다면 가후의 거의 모든 계책과 추측은 다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후는 위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는 가후가 절대 정치투쟁에는 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