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지연(鴻門之宴),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가르다

기호일보 2026. 2. 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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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승리의 잔치를 벌이는 현장에 항우, 유방, 번쾌, 범증 등 여러 인물들의 마네킹이 당시 상황을 흥미롭게 재연하고 있다.<문승용 제공>
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시황제가 죽고 전국이 또다시 큰 혼란에 빠지자 항우(項羽, B.C.232~B.C.202)는 반란군 40만을 이끄는 당당한 대장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항우는 반란군의 주력 부대를 이끌고 진나라 20만 대군을 몰살시키는 전과를 거두며 의기양양하게 수도 함양(咸陽)으로 진군하였다. 이때 항우의 휘하에서 따로 부대를 이끌던 유방(劉邦, B.C.256~B.C.195)은 큰 싸움 없이 일찌감치 함양에 도달하였다. 총사령관 격이었던 항우는 진나라 궁궐을 처음으로 입성했다는 명분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수도에 다다를 때까지 궁궐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렇지만 유방은 항우의 명령을 어기고 진나라 궁궐에 먼저 들어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것처럼 보였다.

항우는 함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홍문(鴻門)에 진영을 설치하고 유방에게 궁궐에서 나오라고 압박하였다. 오늘날 홍문은 서안시 임동구(臨潼區) 홍문연로(鴻門宴路)에 있으며 정식 명칭은 홍문연경구(鴻門宴景區)다. 서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지인 시황제의 병마용박물관과 양귀비의 화청지(華淸池)가 부근에 있다. 

입장료 30위안을 내고 홍문에 들어서면 기원전 206년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와 유방이 연회를 베푼 곳이라는 큰 비석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유방, 장량(張良), 번쾌(樊噲), 하후영(夏侯嬰)이 서 있고 왼쪽으로 항우, 진평(陳平), 항장(項莊), 항백(項伯), 범증(范增) 등 당시 내로라할 만한 장군들의 석상이 나란히 줄지어 서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홍문연이 벌어질 당시 항우의 군사는 40만이었고 유방의 군대는 10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방은 항우와 감히 맞붙어 싸워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궁궐 밖으로 나오라는 항우의 명령에 별 도리없이 굴복하여 승리를 자축하는 홍문연에 억지로 참석하였다. 유방은 100여 명의 군사만을 거느리고 항우를 찾아가 궁궐에 먼저 들어가지 말라는 항우의 명령을 어긴 것을 항우에게 사죄했다. 이때 항우의 군사(君師)였던 범증(范增)은 뒷날 유방이 항우를 위협할 위험한 인물이 될 것이니 이참에 후환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유방을 죽일 계략을 꾸몄다. 잔치 자리에서 무사에게 칼춤을 추는 척하다가 흥이 무르익으면 항우가 눈짓을 주어 바로 유방을 처치하자는 것이었다.

유방이 위험한 처지에 빠졌다는 낌새를 눈치챈 유방의 경호대장 번쾌(樊噲)도 칼춤을 추는 현장에 뛰어들어 함께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는 것을 막았다. 항우 역시 번쾌의 기세에 눌려서 어리어리하여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유방은 배탈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잔치 자리에서 빠져나와 도망쳐서 목숨을 지키게 되었다.

홍문연 기념관에는 승리의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당시 인물들의 마네킹으로 매우 흥미롭게 재연되어 있다. 항우가 가운데에 앉아 크게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고 유방을 죽이라는 지령을 받은 무사와 그것을 막으려고 애쓰는 번쾌가 서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승리에 도취해서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를 내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범증이 오른쪽에 앉아 있고 건너편에서는 때를 보아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려는 유방이 낌새만 노리고 있다.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재현이 잘못된 것이 항우의 마네킹이다. 털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것이 호쾌한 장군의 모습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나이와는 걸맞지 않다. 이 잔치가 벌어진 때가 바로 진나라가 망한 기원전 206년이다. 항우는 기원전 232년에 태어났으니까 이때 나이가 26세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에서 항우로 보이는 마네킹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50세는 되어 보인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통일 왕조를 이룬 진나라를 무너뜨린 항우라면 나이가 50세는 되었을 것이라고 여기고 만든 듯하다. 실제로 그때 항우가 스물 중반의 젊은 나이에 천하를 제패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때 유방을 처치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 결국 항우가 천하를 차지하지 못하는 단초가 되었다. 역시 어떤 일이나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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