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도 단 한 척의 잠수함도 받지 못한 채 6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인도네시아는 "한국 잠수함 성능이 떨어진다"며 프랑스로 눈을 돌렸고,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800억~900억 원어치 부품을 이미 선주문한 채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멈췄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요?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왜 돌아온 것일까요?
그 이면에는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선 훨씬 더 큰 그림이 숨어 있습니다.
계약은 있었지만 잠수함은 없었다 — 6년 공백의 진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한화오션으로부터 나가파사급 잠수함 추가 3척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 계약 금액은 무려 1조 1,62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었죠. 문제는 계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척도 건조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재무부가 차관을 승인하기는 했지만, 실제 사업 진행을 위한 신용장이 끝내 발부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화오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잠수함 건조를 위해 전동 추진기 등 핵심 부품을 이미 수백억 원어치 선주문해 둔 상태였으니까요.
그 부품들은 창고에서 6년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한때는 필리핀에 판매할 잠수함에 이 부품들을 전용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지만, 필리핀이 사업비를 증액하면서 장보고 3급 같은 더 고성능의 잠수함을 원하게 되자 그 계획도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잠수함 성능 부족"이라더니 — 프랑스 스콜과의 냉혹한 현실
6년의 공백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가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는 프랑스로부터 스콜급 잠수함 2척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고, 재무부에서 21억 6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 2,600억 원 규모의 차관 공급 계약까지 승인했습니다.
"한국 잠수함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말이죠.

그런데 냉정하게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화오션이 인도네시아에 공급하는 나가파사급의 척당 가격은 약 3,873억 원입니다.
반면 프랑스 스콜의 척당 가격은 무려 1조 6천억 원이 넘습니다.
한국 잠수함보다 네 배나 비싼 가격이죠. 성능이야 물론 스콜이 더 뛰어납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재정 여건에서 척당 1조 6천억짜리 잠수함을 실제로 도입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지금 과거 한국이 겪었던 그 상황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화오션의 뜬금없는 공시 — 그 속에 담긴 신호
지난 3월 31일, 한화오션이 한 가지 공시를 했습니다.
내용인즉슨 "2019년에 수주한 인도네시아 잠수함 3척에 대한 계약이 아직 미발효 중"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아무 의미 없는 공시처럼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잠수함 사업이 6년째 멈춰 있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굳이 이런 공시를 했을까요? 한화오션 측은 그 이유를 스스로 밝혔습니다.
작년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인도네시아 양국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이후 양국 관계가 호전되었으며, 현재 사업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 것입니다.
공시란 본래 주요 사업의 변동 사항을 알리는 것입니다.
즉, 협상이 실질적으로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를 공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멈췄던 엔진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나가파사급의 약점과 업그레이드 가능성 — 협상 타결의 열쇠
그렇다면 인도네시아가 한때 "성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던 나가파사급은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가파사급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비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가파사급은 리튬 배터리도 없고, 잠수함의 수중 지속 작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AIP(공기불요추진) 기관도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최신 장비가 전혀 없는 구형 사양의 잠수함인 것이죠. 가격이 저렴한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AIP 기관을 추가 탑재하면 가격이 대폭 상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리튬 배터리만큼은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도 나가파사급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튬 배터리를 탑재하면 수중 잠항 지속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기동 성능도 개선됩니다.
아마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는 이처럼 리튬 배터리 탑재를 포함한 소폭의 성능 업그레이드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은 최대한 낮추면서도 인도네시아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성능 향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이번 협상 타결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잠수함 전력의 현실 — 왜 지금 도입이 절실한가
사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도 잠수함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해군이 운용 중인 주력 잠수함은 한화오션으로부터 도입한 나가파사급 3척이 전부입니다.
세계 최대의 도서 국가이자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국토 면적과 해양 영역을 고려하면, 3척의 잠수함은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거기에 더해 남중국해를 둘러싼 지역 안보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중국의 해양 팽창 정책이 인도네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나투나 해역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안보 환경 속에서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입니다.
프랑스 스콜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가격의 벽에 막혀 돌아온 인도네시아로서는, 결국 현실적으로 도입 가능한 한국의 잠수함이 최선의 선택지인 셈이죠.
돌고 돌아 한국으로 — 앞으로의 전망
결국 인도네시아는 돌아왔습니다. 프랑스 잠수함은 너무 비쌌고, 계약을 해 놓고도 신용장을 발부하지 못하는 패턴은 한국 때와 판박이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의 잠수함은 가성비가 뛰어나고, 인도네시아가 이미 나가파사급을 운용하고 있어 군수 지원과 정비 체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실질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6년간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부품들도 마침내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협상이 타결되어 사업이 본격 재개된다면, 한화오션으로서도 수천억 원대의 손실 위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대규모 수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죠.
물론 인도네시아가 과거처럼 또다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국이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를 새롭게 구축한 만큼, 그리고 인도네시아 스스로도 더 이상 잠수함 도입을 미룰 수 없는 안보 현실에 직면해 있는 만큼,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