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조 수주탑 쌓은 K-전력기기 빅3, 이젠 ‘납기 전쟁’
출하 역량이 변수…인력·부품·원자재 확보가 관건

전력기기 업계의 슈퍼사이클이 ‘수주 호황’을 넘어 ‘납기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북미 중심의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로 국내 빅3의 1분기말 수주잔고가 32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대형·초고압 변압기는 2030년까지의 생산 일정이 꽉 찰 만큼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이에 따라 국내 관련 기업들이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향후 시장 주도권은 숙련 인력난과 원자재 병목을 뚫고 약속한 물량을 적기 출하하는 ‘납기 관리 전쟁’될 것이란 분석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주요 전력기기 기업들의 수주 물량이 각각 2030년, 2029년까지 가득 찼다. 그 중 공급난이 가장 심한 품목은 대형 변압기다. 북미에서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시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대형 변압기의 리드타임(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대 4년까지 늘어진 상태다.
전력용 변압기 시장의 성장세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용 변압기 시장 규모는 2025년 277억9000만달러에서 2035년 548억9000만달러로 확대가 예고됐다. 북미를 중심으로 노후 전력망 교체와 재생에너지 연계, 산업 전력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공급 부족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신규 수주보다 적기 납품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부분이다. 초고압 변압기는 데이터센터, 제조시설, 송전망 프로젝트의 전력 공급 일정과 직결되는 핵심 장비인 만큼, 납기가 발주처의 전체 프로젝트 일정이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과 품질은 기본이고, 납기 신뢰도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기업들의 투자 방향도 생산능력 확충에 맞춰져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북미 생산법인에 제2공장을 짓고 있다. 2027년 4월 준공을 목표로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기존보다 50% 확대할 계획이다. 공장 준공 후에는 765kV급 초고압 변압기 시험·생산 설비도 갖추게 된다.
LS일렉트릭은 부산 초고압 변압기 제2 생산동 준공으로 생산능력을 연 2000억원에서 6000억원 규모로 세 배 늘렸고, 미국에서도 2030년까지 2억4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창원 단일 공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누적 생산 10조 원을 돌파한 효성중공업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공장에 1억5700만달러(약 2300억원)을 투자해 2028년까지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장, 북미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초고압 변압기 제조에 권선과 조립, 시험 등 숙련 작업이 필수적이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전문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 방향성 전기강판과 구리 등 핵심 원자재 가격 변동성, 주요 부품 공급 병목까지 겹치면서 리드타임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변압기 납기 지연은 데이터센터나 송전망 구축 등 발주처의 전체 프로젝트 일정에 결정적이다"면서 "가격보다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 만큼, 소재·인력·부품 조달까지 관리할 수 있는 업체에 장기 물량이 집중될 것”이라고 봤다.
장애리 기자 1601chang@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