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하드 보일드 액션, 그가 장르다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가난했던 아이 류승완의 꿈은 한국의 이소룡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액션 키드가 되는 것. 그가 자신의 영화 ‘짝패’(2006)에서 스스로 540도 발차기를 선보인 것을 보면 처음엔 연출보다 액션 연기에 관심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배우로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적이 많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는데 현관에 들어서서 철가방을 턱 내려놓고 짜장면과 단무지를 척척척 꺼내는데 그 액션 각이 경력 10년 차 정도되는 ‘철가방’ 그 자체였다. 영화 ‘짝패’에서는 아예 주연급으로 영화 전체에서 활약한다. 그는 이 영화 촬영 도중 부상을 당했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국내 스턴트 액션의 1인자이자 역시 ‘짝패’에서 주연을 맡았던 정두홍에게서 위로의 전화를 받는다. 정두홍은 “십자인대만 괜찮으면 돼. 걱정마”라고 했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십자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류승완은 이제 540도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
유럽의 평론가들에게 한국의 감독들의 어떤 점이 주목을 끌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국 영화에 정통한 몇몇은 한국 영화감독들에게서는 ‘고유한 독특함(uniqueness)’이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다. 박찬욱의 ‘올드 보이’는 박찬욱만 찍을 수 있고 봉준호의 ‘괴물’은 봉준호만이 찍을 수 있는데 액션 장르에 있어 류승완의 영화는 류승완만이 찍을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실제로 액션의 서스펜스 측면에서 ‘모가디슈’의 탈출 장면 같은 스트리트 몹 씬(mob scene)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은 한국에 류승완 밖에 없다. ‘베를린’같은 첩보 스릴러를 구상하고, 각본을 쓰며, 연출을 할 수 있는 감독 역시 류승완 밖에 없다. 류승완은 어느덧 류승완식의 전쟁역사액션, 첩보 스릴러, 수사 액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류승완표라는 라벨이 생겼고 스스로 장르가 된 감독이 됐다. 이제 그의 영화는 류승완 장르로 분류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던 27살이래 지난 24년간 그는 연출과 제작, 출연까지 합하여 40편이 넘는 영화에 관여해 왔다. 류승완은 1973년생이다. 그도 50을 넘겼다.
‘베테랑2’가 이전의 1편(2015)에 비해 못 하다느니 하는 지적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런 비판의 각도가 조금 어긋나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섬세하게 품질론을 내세울, 그런 류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는 늘 재미와 의미의 비중을 적절한 비율로 섞되 재미를 의미보다 앞에 세운다. 이 영화의 빌런(악당)이 지닌 서사가 없다는 지적들을 많이 하지만, 그래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들을 하지만 만약 이 자경단같은 연쇄살인마의 앞선 이야기, 그가 왜 살인마가 됐는지를 구구이 설명하려면 이 영화는 OTT 드라마로 갔어야 했을 것이다. 2시간 안쪽의 영화에서 감독은 늘 이야기의 어디를 강조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류 감독, 24년간 40편 넘는 영화에 관여
류승완은 이번 ‘베테랑2’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가족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서도철의 아들은 학교에서 학원폭력의 피해를 당하며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서도철 본인 역시 연쇄살인마(이지만 한국의 사법제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 흉악범 강간범 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종의 응징자)를 쫓으면서 범인의 행동에 조금이나마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을 때리는 애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도철은 선을 넘지 않는다. 아들을 때리는 아이들도 원칙적으로 처리한다. 매맞는 아들을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범인이다. 그래서 범인은 범인이고 형사는 형사이다. 이것이야 말로 ‘베테랑2’가 보여주는 단순명료한 주제이다.
류승완이 이번 영화에서 스스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라면 먹는 장면이다. 찢어지고 부르트고 시퍼렇게 멍이든 얼굴로 서도철은 라면을 끓인다. 그는 자신처럼 얼굴이 깨지고 찢어진 아들(변홍준)을 식탁으로 부른다. “여 와서 한 젓갈 해. 아 한 젓갈만 해. 얼릉!” 자고 있던 아내(진경)가 깨고 라면을 한 입 뺏어 먹으며 “어우 짜. 애한테 이렇게 짠 걸 멕이고 아이 참”이라고 투덜거린다. 류승완이 ‘베테랑2’로 복구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대의 가족주의이며 평범한 가정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것이 바로 1편과 2편의 차이이며 어떤 사람들은 1에 비해 2는 ‘한 방’이 없다고 말하지만 류승완은 그걸 어쩌면 의도적으로 없앤 것으로 보인다. 격정의 한 방보다는 여운과 여유의 아우라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류승완도 나이를 먹었고 애들이 많이 컸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눅눅해졌다.
황정민과 류승완은 영화를 통해 숱한 교감을 이루어 낸다. 서로가 서로의 얼터 에고이다. ‘베테랑1, 2’ ‘부당 거래’, 류승완이 제작한 ‘인질’ 등을 통해서이다. 언뜻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보여도 황정민이 그간 보여 준 많은 액션 연기, 곧 ‘크로스’와 ‘길복순’ ‘교섭’, 특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의 액션연기가 류승완과의 그간의 작업이 없었다면 밑바탕이 튼튼했을까. 황정민-류승완 조는 이제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감독 류승완과 배우 황정민 콤비의 결정적인 장면은 ‘베테랑2’의 후반부이다. 서도철은 절뚝거리며 터널 벽을 기대고 앉는다. 막 범인과의 격렬했던 일합을 끝낸 상황이다. 그의 입에서는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아 힘들어, 아후 힘들어 죽겄네.” 그러면 차츰 동료 형사들이 슬금슬금 옆으로 와 앉는다. 팀장(오달수)과 팀원들(장윤주·오대환·김시후)도 어구어구 힘들어 하는 표정들이다. 황정민의 그 지친 표정은 류승완이 지난 시절 영화를 만들며 여기까지 온 지친 마음을 대변한다. 감독과 배우는 그런 식으로 교감한다. 류승완의 하드 보일드 액션의 원더랜드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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