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끝내고 개백수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이 '서울 2호선 걸어서 완주한 후기' 라는 릴스를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아마 원본 글이 펨코였던걸로 기억합니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던 저는 보자마자 "좋은데? 당장하자"를 시전했지만 위에 보이시듯이 저 동생은 바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어찌저찌 다른 멤버들을 구했고, 집이랑 제일 가까운 역삼역에서부터 원본 글쓴이 분과는 반대 방향, 즉 시계 방향으로 한바퀴를 돌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제가 소규모 유튜브 채널이 있어서 기록도 남길 겸 유튜브 라이브를 켜놓고 걷기로 했습니다.
(네이버지도 경유지 제한 이슈로 당산역 부근에서 경로가 살짝 어긋나는데, 큰 차이는 없습니다)
원본 글쓴이 분은 순수 도보시간은 약 10시간 정도였다고 후기를 남기셨고, 네이버 지도에 경로를 검색했을때도 14시간 정도 걸린다길래 23시~새벽 1시쯤 도착할 생각으로 13일 오전 9시에 역삼역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1. 역삼역
약속했던 13일이 되었고, 방송 세팅 등의 이슈로 예정보다는 조금 늦은 9시 30분쯤에 역삼역에서 출발했습니다.
친구 하나는 사당역에서 합류하기로 해 처음에는 저랑 친구 둘 이렇게 셋이서 걸었습니다.
2. 강남역
3. 교대역
4. 서초역
5. 방배역
6. 사당역
사당역에서 합류하기로 한 친구가 합류를 했고, 이때까지 1시간 50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여러명이서 함께 걸으면 속도가 필연적으로 느려진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기억한 저는 이때부터 예상보다 도착이 많이 늦어질 것이라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친구 한명이 잠깐 은행 업무를 봐서 시간이 딜레이가 더 되었고, 친구가 은행 업무를 끝내자마자 한명 늘어난 일행을 이끌고 출발했습니다.
7. 낙성대역
사당역에서 낙성대역 가는 길에 꽤 높은 언덕이 하나 있어 힘들었습니다.
8. 서울대입구역
재수를해도샤대는쳐다볼수조차없네요제가봤을땐5수해도못갈거같습니다
9. 봉천역
봉천역과 신림역 사이에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고 친구가 알려줘서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마침 동선이 겹치는 친구도 하나 있어 점심은 도보멤버 넷에 그 친구 하나까지 다섯이서 먹기로 했습니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꽤 오래 대기를 해서 먹었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지체됐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송을 켠 다음 발걸음을 마저 옮겼습니다.
10. 신림역
신림역을 지나고 나서는 도림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11. 신대방역
12. 구로디지털단지역
13. 대림역
14. 신도림역
시간이 계속 늦어져 신도림역에서 좀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고 홍대까지 논스톱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20분 남짓 푹 쉬고 편의점에서 간식까지 사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15. 문래역
16. 영등포구청역
17. 당산역
출발한지 약 8시간만에 한강을 코앞에 두었습니다.
당산철교는 도보로 통행이 불가능해 양화대교를 통해 강북으로 올라갔습니다.
양화대교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벌써 노을이 질락말락 하는 모습입니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동안 일행 한명이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밤 10시 반이면 도착한다고 구라를 쳤습니다.
그 친구는 구라에 혹해 자기도 홍대입구에서 합류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아무튼 한강 경치를 감상하며 양화대교를 건너고,
18. 합정역
슬슬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모습입니다.
홍대에서 합류하기로 한 친구는 합정역에서 홍대입구역 가는 길에 합류를 해, 일행이 5명이 되었습니다.
19. 홍대입구역
거리상으로는 여기가 거의 중간 부분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끝나가는 것이지만, 반이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번 여정에선 후자에 가까웠던것 같습니다.
20. 신촌역
신촌vs인간도시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1. 이대역
홍대에서 합류한 친구를 제외하면 다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이대역 근처 bhc에서 치킨을 먹기로 했습니다.(치킨사진은없습니다)
치킨을 먹던 중 제가 켜놓은 방송을 보고 있던 친구 하나가 치킨집으로 찾아와 즉석으로 일행에 합류해 일행이 6명이 되었습니다.
이미 27km 남짓 걸어 다들 지치고 배도 고픈 상태라 치킨집에서 생각보다 꽤 오래 있었습니다(1시간 30분정도)
더 이상 늦어지면 진짜 큰일나겠다는것을 깨달은 저는 5명의 남정네들을 이끌고 빠르게 출발했습니다.
22. 아현역
23. 충정로역
24. 시청역
25. 을지로입구역
여기서 DDP까지 이어지는 지하통로가 있어 DDP까지는 역 사진찍을때만 잠깐 올라오고 지하통로로 걸어갔습니다.
26. 을지로3가역
여기 지날때쯤부터 발바닥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27. 을지로4가역
을지로사가vs을지로팔고가 엌ㅋㅋㅋㅋㅋㅋㅋ
28.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여기서 저녁먹을때 즉석으로 합류한 친구 하나와 처음부터 같이 걸은 친구 하나가 리타이어해 일행은 4명이 되었습니다.
즉석으로 합류한 친구는 애초에 여기까지만 걸을 예정이었고, 처음부터 함께한 친구는 다음날 일정떄문에 불가피하게 귀가했습니다.
DDP에 일정이 있던 친구 하나랑 잠깐 만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합류시키는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때 시간이 밤 10시 20분쯤 되었습니다.
29. 신당역
방송을 켜놓은 폰을 충전한 보조배터리가 방전되어 근처 편의점에서 보조배터리를 대여하느라 조금 지연되었습니다.
30. 상왕십리역
31. 왕십리역
왕십리역에서 20분정도 쉬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꽤 오래 쉬었다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통증이 심해 앞으로 남은 길은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다시 강남으로 내려간다고 의지를 다지면서, 아픈 하체를 이끌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32. 한양대역
2호선은 명문대를 많이 지납니다.
33. 뚝섬역
저는 이때쯤부터 다리를 살짝 절면서 걷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여기 지날즈음에 자정이 넘었습니다.
34. 성수역
역삼역에서 출발할때부터 함께 걸은 친구 나머지 한명이 아쉽게도 여기서 다음날 알바 이슈로 리타이어해 일행은 세명이 되었습니다.
역삼역에서부터 걸어온 멤버가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옆에 남아있는 두 명의 친구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다시 출발했습니다.
35. 건대입구역
신당역 근처에서 대여한 보조배터리가 방전되어 여기 근처에서 한번 더 대여했습니다.
36. 구의역
저는 여기 지날때쯤부터 신체적인 한계에 도달했는데, 한강만 건너고 쉬자는 생각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37. 강변역
출발한지 16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다시 강 아래로 돌아오는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당산철교는 도보로 통행이 불가능하지만 잠실철교는 가능해 잠실철교를 통해 한강을 건넜습니다.
잠실철교
롯데타워가 가까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잠실철교를 건넜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8. 잠실나루역
가까스로 잠실철교를 건너고 더는 못 걸을거같아 여기서 20분정도 꽤 오래 쉬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39. 잠실역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대여한 보조배터리가 방전되고, 제 폰까지 방전되어서 잠실역 근처에서 보조배터리 두개를 대여했습니다.
40. 잠실새내역
걷다보니 다행스럽게도 다리가 아주 조금은 괜찮아져서 끝까지 할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41. 종합운동장역
지나면서 작년 와카생각이 났지만 올해 4할 60-60를 달성해 두산베어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kbo mvp를 차지할 김대한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42. 삼성역
드디어 우리 집이 있는 강남구로 돌아왔습니다.
43. 선릉역
선릉~역삼으로 가는 길에 있는 언덕이 마지막 고비였습니다.
44. 역삼역(끝)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약 19시간 30분에 달하는 대장정을 끝냈습니다.
3명의 멤버로 출발했고, 도착도 3명의 멤버로 했는데, 저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출발멤버와 도착멤버가 모두 달랐습니다.
사당역에서 합류한 친구와 홍대에서 합류한 친구가 끝까지 같이 걸었습니다.
도착하면 기뻐가지고 날뛸줄알았는데 그럴 힘이 없어서 대충 라이브 종료멘트 치고 편의점 들어가서 라면 한 그릇 했습니다.
도착 기념샷
무리해서 걸은 여파로 발에 발가락만한 물집이 생겼고 다리는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픈 상태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걸 하고싶으시다면 혼자 걸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걷는 속도도 느려지고, 걷는 페이스도 각자 달라 본인의 페이스가 깨지기 쉽습니다.
저도 제 페이스가 계속 깨져서 걸을때 더 힘들고 아팠던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페이스도 계속 깨졌지만 그래도 저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좋았던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풀로 걸은게 저 하나뿐이라 좀 아쉽긴 하지만, 친구들과 이런 경험을 한것 자체로 정말 즐거웠습니다.
잠깐이라도 같이 걸어준 친구들 덕분에 긴 시간동안 지루할 틈 없이 즐겁게 걸었던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친구들이랑 20시간 동안 서울 2호선 한 바퀴 걸어서 완주한 후기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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