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불법 여론조사’, 명태균의 일그러진 행적들
미래한국연구소, 총선·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표본 조작’ 17회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김건희 여사와 상상 못 할 대화 많다." 명태균씨(54)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명태균 리스크'로 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이미 진흙탕 싸움이 됐다. 정치 컨설팅을 표방한 브로커, 이에 얽매인 정치권의 민낯이 밝혀지면서 선거제도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분위기다. 명씨는 과연 누구인가. 시사저널이 그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여러 범죄 전과가 드러나기도 했다.
명씨가 정치권에 입김을 불어넣기 위해 그간 이용한 '맞춤형 여론조사' 행적은 이미 전과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여러 판결문 등에 따르면 명씨는 10여 년 전부터 여론조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직원들 임금 체불과 사기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중 핵심은 불법 여론조사다. 경남을 거점으로 중앙의 대통령 부인에게까지 미친 그의 영향력을 두고 '어둠의 정치 컨설턴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명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업체 '좋은날' '시사경남' '미래한국연구소' 등에 주목하게 된다.
명씨의 여론조사 행적은 주식회사 '좋은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좋은날은 '온세전화번호부' '온세계신문' 등 회사명이 두 차례 바뀌다가 2008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등기 완료됐다. 이 주소지는 이후 시사경남과 미래한국연구소에도 등장한다. 업종은 인쇄·출판업, 신문(무료주간·일간지) 발행, 텔레마케팅업(콜센터) 등으로 다양하지만 사실상 여론조사업체로 알려졌다. 초기 자본금은 100만원으로 시작해 2012년 2억원까지 늘어났다. 명씨는 이곳에서 사내이사 등재·사임을 반복하다가 2014년 대표이사를 사임한다.
불법 여론조사 지시하며 "선거 때 늘 있는 일"
명씨는 좋은날 직원들에게 임금·퇴직금을 주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법정에 섰다. 판결문에 따르면 좋은날의 실경영자인 명씨는 2016년 직원 4명에 대한 임금 2382만원, 8년간 근무한 직원 등 5명의 퇴직금 5448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창원지법은 명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에도 명씨는 2019년 퇴직한 직원 2명에 대한 임금 308만원을 주지 않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상시근로자는 9명이었다.
비슷한 시기 사기 전과도 확인됐다. 명씨는 2016년 말, 창원시 6급 공무원 A씨의 승진을 청탁해 주는 대가로 현금 3000만원과 골프용품 세트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명씨는 A씨의 승진을 청탁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승진 부탁을 하려면 인사할 명목이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A씨에게 현금 3000만원과 225만원 상당의 여성용 골프채를 받아 챙겼다. 이에 창원지법은 명씨에게 사기,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3225만원을 추징했다.
'불법 여론조사' 논란은 시사경남과 미래한국연구소의 등장으로 불거졌다. 두 회사는 여론조사업, 신문·인터넷신문 발행업, 텔레마케팅업, 법률 연구 및 자문업 등으로 좋은날과 업종이 비슷하다. 특히 선거 컨설팅 업계엔 여론조사 관련 규제를 피해 가기 위해 이 같은 '유사 언론'이 종종 등장한다. 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시작 2일 전까지 구체적인 조사 내용 및 방식을 사전 신고해야 하지만, 방송·신문·정기간행물·뉴스통신 사업자 등이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경우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연구소가 주간신문 '시사경남'을 발행하는 점도 이러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불법 선거 여론조사는 어떻게 벌였을까. 명씨는 2018년 선거 여론조사기관 자격이 없는 시사경남에 여론조사를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전 경남대 교수 B씨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한 뒤 시사경남에 게시한 혐의다.
시사경남 편집장 C씨의 진술에 따르면, 명씨는 B 교수에게 "기고문을 토대로 여론조사를 해서 인지도를 올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의했다고 한다. 명씨는 해당 여론조사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할 가능성을 묻는 C씨의 우려에도 "선거 기간에는 늘 있는 일이라 문제 될 게 없다"며 "여론조사는 진행하고 선관위에서 연락 오면 그때 얘기하라"고 했다.
B 교수를 부추긴 정황도 드러났다. 판결문에는 명씨가 B 교수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통화에서 "아직 후보 출마도, 정당 가입도, 아무것도 안 하셨기 때문에 경남대 교수로 사람들한테 홍보를 해서 다 익은 다음에, 후보 등록일 전에 최대한 다 끌어내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나온다.
'표본 조작' '유도 질문'…법원 "죄질 나쁘다"
명씨는 당시 법정에서 "선거 여론조사가 아닌 단순 정책 여론조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명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법률상 처단형 범위에서 최고 수준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명씨는 항소했고, 변호인으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을 선임했다. 항소는 결국 기각됐다. 이후 대법원이 2020년 2월 명씨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벌금 600만원이 확정됐다.
벌금형 확정 직후 명씨는 다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앞선 사건으로 선거권이 박탈돼 같은 해 4월 제21대 총선 등 5년이 경과하기 전까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2020년 2~3월 자신의 SNS에 "여론조사 김영선으로" "전화를 꼭 받아주세요" 등 김영선 전 의원의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 이에 창원지법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여론조작' 혐의도 속출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19~22년 불법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3차례 재판에 넘겨져 총 24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연구소는 선거 여론조사기관 자격이 없음에도 불법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시사경남에 게시했다. 여론조사 표본을 조작한 사례만 무려 17회에 달한다. 이 같은 범죄는 2019년 보궐선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22년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등에서 발생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당초 미래한국연구소를 선거 여론조사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의 대표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선거법상 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자체 구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할 수 없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전 계층을 대표하는 표본을 선정해야 한다. 이는 조사 결과를 공표·보도하지 않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래한국연구소는 2019년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체 표본을 이용한 불법 선거 여론조사를 벌였다. 연구소는 당시 출마 예정이던 진순정 전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대변인의 선거 여론조사 의뢰를 받았다. 이에 성별·연령대·거주지 등이 확인되지 않은 유·무선 전화번호 데이터 19만 건을 통해 9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심지어 실제 여론조사 당시 질문한 일부 내용을 삭제하는 등 거짓 증거를 제출한 혐의도 받았다. 이 사건에서 연구소 편집국장인 강혜경씨도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9월에도 범행이 반복됐다. 연구소는 당시 원외였던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 출마 시 지지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이때도 자체 보유 전화번호 데이터 7만8152개를 이용했다. 판결문에는 연구소 측이 지역구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라는 점을 고려해 김 의원의 고향인 해당 지역을 부각시킬 의도로 질문지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연구소 측은 여론조사 결과 분석을 의뢰할 때도 "선거용 여론조사라고 생각될 여지가 충분했기에 '비공표용'이라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했다.
2020년 3월에는 경북 경주 등에서 제21대 총선 관련 10만2911개의 검증되지 않은 표본을 이용하는 등 불법 여론조사를 3차례, 같은 수법으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에선 4차례의 불법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법원은 "민주주의 기반인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려고 시도했다"고 했다.
강혜경, '明 리스트 27인' 공개…정치권 파장
최근 명태균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한국연구소에 대해 "5년 전 김아무개 소장에게 처분했다"며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초대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당시 명씨의 직책이 '미래한국연구소 회장'이었던 점 등을 고려해 사실상 연구소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현재 명씨의 개입으로 '전략공천' 의혹을 받는 김영선 전 의원은 2019년 연구소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바 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제보자이자 김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강혜경씨도 비슷한 시기 사내이사에서 사임했다.
명씨의 '여론조작' 의혹은 짙다. 최근 강혜경씨가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명태균 리스트 27인'은 그 파장을 더했다. 강씨 측은 "김영선 전 의원, 김진태 (강원)지사와 박완수 (경남)지사 등은 명씨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의 '여론 작업'을 한 사례"라며 "나머지는 여론조사를 의뢰해 뭔가 진행하려다 실패하거나, 하다가 말았거나, 안 했거나 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명씨와 한 번이라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정치인이라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셈이다.
정치권의 민낯도 여실히 드러났다. 명씨의 한마디에 전국이 떠들썩해지는 건 김건희 여사에 대한 불신과 선거제도의 취약함을 방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 여론조사에 대한 쇄신의 목소리도 커졌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는 "당내 경선에서 너도나도 하는 여론조사를 없애고, 선관위 관리하에 오픈 프라이머리로 전환하고 불필요한 의혹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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