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선 DB그룹]①경영난 때 놓친 DB하이텍 지배력 되찾을까

김남호 DB그룹 회장. 

DB그룹이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사 전환 통보를 받으면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지 관심이 쏠린다. DB그룹은 지주사로 전환해 DB하이텍 등 계열회사의 지분 문제를 해소하거나 지주사 전환을 포기해야 한다. 양자택일  상황에서 DB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5월11일 DB그룹 지주사인 DB아이엔씨에 지주회사 전환신고 심사 결과를 통보했다. 공정위는 DB아이엔씨가 지주사 전환 기준을 충족해 내년 1월 지주사로 전환될 것이라고 심사결과를 통해 밝혔다. DB아이엔씨는 지난해 말 자산총계가 6019억원을 돌파하면서 지주사 전환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DB하이텍이 지난해 말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증가로 시황이 개선되면서 지분가치가 급등했고, 지분 12.42%를 보유한 DB아이엔씨의 자산이 증가한 게 이번 지주사 전환 신고의 배경이다.

자료=금융감독원

DB아이엔씨의 선택지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건 DB아이엔씨가 DB하이텍과 DB메탈 등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 지주사 행위제한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현재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지분을 12.42% 보유하고 있어 대주주로 분류돼 있다. DB하이텍은 DB아이엔씨의 회계상 관계기업이다.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의 최대주주로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지분율만 보면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번에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의 지분을 17.58% 확보해 종속기업으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남호 회장 등 → DB하이텍 등 → DB메탈'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DB아이엔씨는 현재 DB하이텍의 지분을 12%밖에 갖고 있지 않아 경영권 방어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적대적 세력이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DB아이엔씨가 DB하이텍 지분을 30% 이상 확보하는 경우 안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고,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투명하게 바꿀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DB아이엔씨가 DB하이텍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하려면 약 784만주를 매입해야 한다. 전일 종가(4만2850원) 기준으로 약 33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자료=금융감독원

DB아이엔씨는 현금이 빠듯한 상황이다. 올해 2분기 기준 현금성자산은 407억원이다. 곳간을 털어 지분을 살 수 없는 만큼 DB하이텍 지분 매입을 위해 차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주사 전환을 하려면 자금을 최대한 끌어와야 한다. 지주사 전환 이후 2년 내 행위제한 요건을 해소하면 된다.   

또 다른 선택지는 지주사 전환 요건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차입금 등 부채를 늘려 DB하이텍의 주식비중을 50% 이하로 낮추면 지주사 전환 요건이 해소된다. 이 경우 DB아이엔씨는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해 매해 금융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3% 금리로 2000억원을 빌렸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60억원의 이자비용을 내야 한다.

지난해 DB아이엔씨는 이자비용으로 48억원을 지출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DB아이엔씨의 총차입금은 640억원으로 1년 내 모두 상환해야 한다. 지난해 DB아이엔씨의 영업이익은 약 234억원을 기록했는데, 영업이익의 25% 이상을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한 비용으로 지출하는 셈이다.

DB그룹은 2014년 경영난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4년 말 사업보고서 기준 DB하이텍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37.4%에 달했다. 그러나 2015년 말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율은 19.09%로 급격히 줄었다. 경영난으로 동부제철(현 KG스틸)과 동부건설을 매각하면서 보유 지분이 급감했다. 과거 DB하이텍은 ㈜동부(현 DB아이엔씨)와 동부제철, 동부건설 등 계열회사와 김준기 명예회장 등이 골고루 지분을 갖고 있었다.

DB하이텍이 DB그룹의 핵심 계열사에서 자회사로 바뀐 이유는 그룹 경영난이 한몫했다. 이후 DB그룹은 지금도 DB하이텍의 지배력을 되찾지 못했다.

DB하이텍이 설비 보수 등 최소한의 투자만 이뤄진 것도 종속기업이 아닌 영향이 컸다.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DB하이텍은 주력 사업인 8인치 웨이퍼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사실상 현상유지만 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수익성이 매우 높다. DB하이텍은 2017년부터 연간 100억원 이상을 배당했는데, DB그룹은 배당금만 받아왔다. DB그룹은 핵심 계열사를 대부분 매각하면서, 배당창구가 DB하이텍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 투자를 하지도 지배력을 높이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배당만 받은 것이다.  

DB그룹은 지주사 전환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DB하이텍의 지분을 매입할까. 아니면 지주사 전환을 포기하고 현상유지만 할까. 앞으로 4개월이 DB그룹의 미래를 바꿀 중차대한 시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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