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내부 "회사 망칠 생각으로 사장 지원? 봐줄 생각 없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후보 면면 비판 "지원서부터 참담"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차기 연합뉴스 사장 공모 지원자들의 지원서가 공개되면서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지 않은 후보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히거나 일방적인 인사평가제 도입을 제안했다. 노조를 약화시키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후보도 있다.
지난 19일 마감된 연합뉴스 사장 공모 지원자 12인 가운데 3명(이우탁, 정규득, 추승호)은 언론사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인 편집총국장 임명동의제를 폐지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경영감독기구이자 최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가 공개한 지원서에서 이우탁 관훈클럽 총무(연합뉴스 국제뉴스1부 선임)는 “효용을 다한 (편집)총국장제를 폐지해 4국장 체제로 전환하겠다”며 “편집총국장 임면동의제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규득 연합뉴스 글로벌코리아본부장은 “편집총국장제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면서 “경영진이 제품(콘텐츠)의 생산 및 품질 관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행 제도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책임경영' 실현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추승호 연합뉴스TV 상무도 임명동의제를 “재검토”하겠다며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각종 부작용이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상무의 경우 “국가기간(통신사)은 그 어떤 명분보다도 국익을 최우선해야 한다”면서 “구성원 모두가 국익 최우선 원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 산하 '지배구조개선 및 경영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지난 20일 성명에서 “이(우탁) 지원자는 3년 전 사장 공모에 응했을 때 공정보도를 실천하겠다며 '편집권 독립이 제1의 가치'라고 밝힌 바 있다”며 “편집권 독립을 상징하는 편집총국장제에 대해 별다른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고 '효용을 다했다'고 평가하고, 임면동의제 폐지까지 들먹이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고 했다.
이창섭 전 펜앤드마이크 사장에 대해선 “편집과 경영의 분리, 편집총국장 중간평가제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편집총국장 책임운영제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편집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면서도 “본인이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2015년 3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근 2년간 편집국장 직무대행 자리를 꿰차고 앉아 총국장제를 형해화한 데 기여한 것과 그 기간에 소위 '삼성 장충기 문자'를 보내 이해관계자에게 줄을 대는 외양을 보인 사실을 고려하면 진심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상무를 두고는 “지난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론은 자국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동창생으로 '윤석열의 진심'이라는 책까지 저술한 이가 '국익 최우선 원칙'을 내세우는 것은 불필요한 의심을 사는 발언에 다름아니다”라고 했다. 이경욱 상무는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1960년생이며 충암고를 졸업했다.
신현태·이경욱·정규득·정천기·추승호·황대일 등 지원자 6명은 '인사평가제 도입'을 내걸었다. 관련해 특위는 “인사평가제 도입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사에서 인사평가제가 졸속으로 도입되면 보도 공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구성원들의 위축 또한 필연”이라며 “특히 공정보도를 위한 장치를 해체하겠다고 공약한 지원자들이 인사평가제 도입안을 내놓는 것은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앞서 연합뉴스 경영진은 가깝게는 2020년, 2022년 인사평가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가 노조가 '사측에 의한 일방 도입'에 반발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공적 기능을 축소한다는 계획을 밝힌 경우도 있다. 외국어 뉴스 서비스 구조조정을 주장한 이창섭 전 사장이 일례다. 특위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6개 외국어 가운데 '전달 수준'이 떨어지는 언어는 폐지하겠다는 것”이라며 “국가기간통신사로서 공적기능을 도외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나아가 특정 노동조합을 약화시킨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주장도 일부 지원서에서 확인됐다. 이우탁 관훈클럽 총무는 “(제작국장과 함께) 편집총국장 임명동의제도 폐지하며 언론노조의 과도한 집중을 피할 실질적 복수노조가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정규득 연합뉴스 글로벌코리아본부장에 대해선 특위가 “2023년 8월부터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합뉴스 사내게시판에 노조가 언론노조가 소속한 민주노총을 탈퇴해야 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특위는 “경영계획서에 적힌 것만으로도 지원자들의 속내가 이토록 적잖이 드러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연합뉴스를 망칠 생각으로 사장에 지원한 이들을 우리는 그냥 봐줄 생각이 없다. 빨리 돌아가시라. 우리는 연합뉴스가 국가기간통신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보고 끝까지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장 지원자는 △추승호 연합뉴스TV 상무 △이창섭 전 펜앤드마이크 사장 △정천기 연합뉴스 경영기획 담당 상무 △이우탁 관훈클럽 총무 △황대일 전 연합뉴스 콘텐츠총괄본부장 △정규득 연합뉴스 글로벌코리아본부장 △신현태 지방소멸대응전략포럼 총괄 △이명조 전 연합뉴스 유럽총국장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상무 △배재성 강원도립대 겸임교수 △김대영 전 한국폴리텍대학 강사 △최기억 연합인포맥스 대표이사 등이다.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원서를 냈다가 공모 사실이 발표된 이튿날 지원을 철회했다.
뉴스통신진흥회가 지난 19일 구성한 사장추천위원회는 오는 25일까지 후보군을 추린다. 뉴스통신진흥회는 26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최종 후보를 확정해 사실상 사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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