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렇게 되는구나" 현대기아차 초비상, 우려가 현실됐다

2025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성적표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표면적인 브랜드별 합산 점수만 놓고 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테슬라를 근소하게 앞서며 체면치레를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참패'에 가깝다.

단일 차종 기준으로 테슬라 모델Y가 11월까지 무려 4만 4천 대 넘게 팔리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 여기에 하반기 구원투수로 등판한 보급형 모델 EV3까지 총동원해서 막아낸 결과가 고작 이렇다.

'숫자의 착시'를 걷어내면 보이는 현실. 허리가 끊어졌다

대한민국은 현대차그룹의 심장이자 본진이다.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세계 어느 곳보다 높고, AS 네트워크와 충전 인프라의 절대적 우위가 있는 안방 시장에서 수입 단일 모델에게 왕좌를,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내줬다는 사실은 단순히 순위가 바뀌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음이자, 현대차그룹이 마주한 위기의 본질을 보여주는 지표다.우선 냉정한 현실 인식부터 필요하다. 기아가 브랜드 판매 1위를 했다고 자위할 때가 아니다. 판매량의 '질(Quality)'을 따져봐야 한다.

올해 1월~10월 브랜드별 국내 전기차 판매량 순위

테슬라 모델Y가 기록한 4만 4천여 대의 판매량은 대부분 5천만 원대 이상의 중형 SUV 시장에서 나왔다. 즉, 구매력이 가장 높고 수익성이 좋은 '핵심 허리 시장'을 테슬라가 독식했다는 뜻이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의 성적표를 뜯어보자.

기아의 선전을 이끈 1등 공신은 하반기에 출시된 소형 전기 SUV 'EV3'(약 1만 7천 대)와 경형 전기차 '레이 EV'(약 1만 1천 대)다. 현대차 역시 경형 SUV '캐스퍼 일렉트릭'이 판매량을 뒷받침하고 있다. 즉, 현대기아차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진입 장벽이 낮은 소형·경형 차급에서 물량을 채워 넣으며 전체 판매량을 방어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메인스트림 시장인 중형급(아이오닉5, EV6)에서는 모델Y에게 완벽하게 밀렸다.

올해 1~10월 국내 전기차 모델별 판매량 순위

특히 지난 9월, 테슬라 모델Y가 단 한 달 만에 9,069대를 쏟아내며 수입차 월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운 사건은 상징적이다. 이 수치는 현대기아차의 주력 전기차들이 분기 내내 팔아야 달성할 수 있는 물량에 가깝다. 심지어 올해 8월부터 야심 차게 인도를 시작한 기아의 PBV 모델 'PV5'가 11월까지 2,173대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승용 시장에서 모델Y가 만든 거대한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방에서 주력 차급을 내줬다는 것은 현대기아차가 더 이상 '홈 어드밴티지'에 기댈 수 없게 됐음을 시사한다. 가장 뼈아픈 패착은 가격 경쟁력의 상실이다. 소비자들이 모델Y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복잡한 기술적 우위 때문이 아니다.

"이 가격에 테슬라를 살 수 있다"는 직관적인 가성비가 소비자들을 움직였다.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된 LFP 배터리 탑재 모델Y(RWD)는 보조금을 적용했을 때 국산 주력 전기차인 아이오닉5나 EV6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한 구간까지 가격을 끌어내렸다.

국산차의 장점은 늘 '가성비'였다. 수입차 대비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옵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최대 무기였는데, 이제 그 공식이 깨졌다. 테슬라가 가격을 파괴적으로 낮춰버리자 소비자는 "비슷한 돈이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가 강력하고, 슈퍼차저를 쓸 수 있으며, 중고차 가격 방어가 잘 되는 테슬라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테슬라의 가격 정책은 유연하고 공격적이다. 원가 절감을 통해 수시로 가격을 조정하며 보조금 정책을 비웃듯 시장을 공략한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정부 보조금 상한선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보조금 100% 지급 구간'에 딱 맞춘 가격표는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데 보조금 따 먹으려고 안 낮추는 것 아니냐"는 불신만 심어줬다.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가 아닌 보조금 정책에 종속된 상황에서, 테슬라의 '가격 파괴' 공습을 막아낼 재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의 판매량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다. 테슬라의 주행 보조 시스템인 FSD(Full Self-Driving, 현재는 관리 감독 하의 자율주행)의 국내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FSD가 도입된다고 해서 당장 모든 운전자가 자율주행을 맹신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복잡한 도로 사정상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실체'보다 무서운 '여론'과 '이미지'다.

FSD가 국내 도로에서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영상들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순간, 대중의 인식 속에 테슬라는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AI 기업'으로, 현대기아차는 '아직도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자동차 제조사'로 각인될 위험이 크다. 이미 북미 시장에서는 FSD v12의 성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테슬라의 브랜드 가치를 견인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건 심지어 v14 슈퍼바이즈드 버전이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레벨3 자율주행 기술(HDP) 도입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기술적 난이도와 안전성 확보 때문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시장은 냉혹하다. 소비자는 눈에 보이는 혁신에 반응한다. 테슬라가 한국 도로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며 AI를 고도화하는 동안, 현대기아차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율주행은 역시 테슬라"라는 공식이 고착화될 것이다.

한번 굳어진 '기술적 2류' 이미지는 나중에 아무리 좋은 제품이 나와도 뒤집기 어렵다. 피처폰 시절 세계를 호령했던 노키아나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에 어떻게 몰락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현대기아차에 필요한 것은 어설픈 애국 마케팅이나 감성 호소가 아니라 뼈를 깎는 결단이다.

우선 무너진 가격 정책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가격 정책을 폐기하고, 차량 본연의 원가 경쟁력을 통해 테슬라와 '계급장 떼고' 붙을 수 있는 가격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오닉과 EV 시리즈의 가격 거품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수익성이 일시적으로 악화되더라도 시장 점유율(M/S)을 잃으면 미래가 없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판매량을 유지하고, 도로 위에 자사 차량을 깔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추후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전환할 때 데이터라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가격 정책으로 시간을 벌어놓은 뒤, 그 확보된 '골든타임' 동안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단순히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유지해 주는 수준의 주행 보조 장치(ADAS)를 개선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테슬라의 FSD와 직접 비교될 수 있는, 혹은 한국의 좁고 복잡한 도심 도로 환경에 특화된 독자적인 자율주행 솔루션을 내놓아야 한다.

정의선 회장이 강조해 온 '퍼스트 무버' 전략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없다. 패스트 팔로워(추격자) 전략은 하드웨어 시대의 유물이다. 소프트웨어와 AI가 지배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 안방에서 들려온 '모델Y 1위, 4만 대 판매'라는 비보(悲報)를 단순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몇 년 뒤 우리는 한국 도로를 점령한 수입 전기차들을 바라보며 현대차의 전성기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승현 안피디의 스포일러 | 디지털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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