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서 가난하다고 무시당했는데.." 내 직업을 안 친구가 고개 숙인 이유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 승용차와 수십억 원대의 아파트일까요. 아니면 평생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흘린 땀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일까요.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진다고 믿지만,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서도 여전히 옷차림과 재산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올해 예순여덟을 맞이한 서정태 씨는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노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가구 공장에서 일했고, 쉰다섯 살에 공장이 문을 닫은 뒤로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지금까지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정태 씨의 손에는 늘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부축하고, 식사를 돕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분들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일이었지만 정태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마지막 노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늦가을 어느 화요일 오후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 김영식에게서 30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영식은 이번 주말 서울 강남의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동창회가 열린다며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모임 비용은 자신이 모두 부담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나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정태 씨에게 영식은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면 자신의 밥을 반으로 나누어주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영식은 건축 자재 유통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정태 씨는 평생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지도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토요일 아침, 정태 씨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내 한미숙 씨는 옷장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남색 양복을 꺼내 정성스럽게 다림질했습니다. 20년도 더 된 양복이었습니다. 소매 끝은 조금 해졌지만 정태 씨에게는 특별한 날에만 입는 가장 좋은 옷이었습니다. 아내는 새 양복이라도 하나 사 입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지만, 정태 씨는 옷이 친구를 만나는 것은 아니라며 웃어넘겼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집을 나서기 직전, 미숙 씨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당부했습니다.

"여보, 혹시 누가 당신 하는 일 가지고 이상한 소리 하더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당신이 얼마나 귀한 일 하는 사람인지 나는 아니까요."

정태 씨는 아내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이 나이에 남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만큼 어린애도 아니라며 안심시켰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낡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며 오늘만큼은 지나간 세월을 잊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동창회 장소는 서울 강남의 고급 한정식 식당이었습니다. 정태 씨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식당 앞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값비싼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정태 씨는 잠시 자신의 낡은 구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몇 년 전 직접 밑창을 덧대어 수선한 구두였습니다.

넓은 방 안에서는 벌써 웃음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배가 나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웃는 모습만큼은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였습니다. 정태 씨는 동창들과 악수하며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따뜻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방의 가장 안쪽, 상석에 앉아 있던 김영식 씨가 정태 씨를 발견하자 크게 웃었습니다. 그는 정태 씨의 낡은 양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아직도 1990년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농담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는데, 정태는 예나 지금이나 돈 쓰는 법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몇몇 동창이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정태 씨는 오래됐어도 멀쩡한 옷이라 그냥 입고 왔다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영식의 시선은 계속해서 정태 씨의 해진 소매와 낡은 구두에 머물렀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자 대화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재산과 자식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누구는 서울에 아파트를 두 채 가지고 있다 했고, 누구는 아들이 대기업 부장이 되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영식은 그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컸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의 매출부터 아들에게 물려준 아파트까지,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영식이 정태 씨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정태 씨가 지금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영식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는 정태 씨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캐물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식사와 목욕, 기저귀 교체를 돕는다는 설명을 듣자 대놓고 혀를 찼습니다.

"아이고, 정태야. 너는 젊을 때도 그렇게 고생하더니 늙어서까지 남의 부모 뒤치다꺼리하면서 사는구나. 이 나이면 이제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참 안됐다."

순간 식탁 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몇몇 친구는 불편한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지만, 술기운이 오른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람 인생은 젊을 때 얼마나 돈을 잘 버느냐에 달렸다며, 정태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자신이 아는 건물의 경비 자리라도 알아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정태 씨는 잠시 영식을 바라보았습니다. 30년 전 도시락을 반으로 나누어주던 소년의 얼굴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낯선 노인의 얼굴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정태 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좋고 보람도 있다며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영식은 누구나 자기 처지를 좋게 포장하는 법이라며 웃어넘겼습니다. 정태 씨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이 이렇게 쉽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그 순간 정태 씨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치매로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아침마다 돌아가신 아내를 찾으며 눈물짓던 할아버지, 자식들이 찾아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올해 아흔셋의 김옥분 할머니였습니다. 치매가 심해진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정태 씨만 보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밤마다 누군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며 울던 할머니도 정태 씨가 손을 잡고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옥분 할머니는 유독 아들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졌다가도 문득 정신이 맑아지는 날이면 아들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추운 날 옷은 따뜻하게 입는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아들의 얼굴을 보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할머니는 정태 씨의 소매를 붙잡으며 울먹였습니다.

"우리 아들이 나를 잊어버렸나 봐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요."

정태 씨는 할머니의 마른 손을 감싸 쥐고 한참 동안 곁을 지켜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께 제대로 된 병원 치료 한 번 해드리지 못했던 젊은 날의 후회가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부모를 돌보는 일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영식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화면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영식은 자신의 어머니가 또 식사를 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매달 비싼 요양원 비용을 내고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던 영식은 결국 전화를 끊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동창이 걱정스럽게 묻자 영식은 어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데 요즘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밤마다 소리를 지르신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던 정태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 연세와 성함을 물었고, 영식이 아흔셋의 김옥분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영식아, 혹시 어머니가 지금 햇살요양원에 계시니?"

영식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이 어머니의 요양원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데 정태 씨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정태 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영식아... 내가 바로 그 요양원에서 일한다. 그리고 네 어머니를 주로 돌봐드리는 사람이 나야."

순간 식당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영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태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남의 부모 뒤치다꺼리나 하며 산다고 비웃었던 친구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정태 씨는 옥분 할머니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을 찾으며 울던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잡으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를 들려드리면 환하게 웃으시고, 가끔 정신이 맑아지는 날에는 아들 영식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신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영식의 머릿속에는 몇 달 전 아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져 식사를 거부하고 밤마다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그 이유가 한 남자 요양보호사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어머니를 자기 부모처럼 정성껏 돌봐주시고, 쉬는 시간에도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식은 그 요양보호사의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매달 시설 이용료를 내고 있으니 직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생활은 아내에게 맡긴 채 자신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정태 씨는 그런 영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영식아, 어머니께서 요즘 네 이름을 자주 찾으셔. 지난주에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우리 영식이는 어릴 때부터 밥을 빨리 먹어서 늘 체할까 봐 걱정이었다고 하시더라. 지금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영식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밥상 앞에서 늘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뒤 수십 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느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정태 씨는 치매 때문에 기억이 흐릿해지는 날이 많지만 아들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얼굴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시더라도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손을 잡아드리면 분명 좋아하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영식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자신은 조금 전까지 이 친구를 향해 남의 부모 기저귀나 갈아주는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돌보지 못한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외로운 밤을 지켜주고, 잊혀가는 기억 속에서 아들의 이름을 함께 불러준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던 것입니다.

"정태야... 내가 정말 못난 놈이다. 나는 돈만 벌면 효도하는 줄 알았어. 비싼 요양원에 모시고 매달 비용만 보내드리면 자식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정작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영식의 목소리가 끝내 잠겼습니다. 방 안에 앉은 동창들도 숙연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영식은 자신이 가진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정작 사람답게 사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태 씨는 그런 친구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습니다. 자신 역시 돈이 없어 서러웠던 날이 많았고, 생활비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일도 세상에는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영식아, 어머니가 바라시는 건 비싼 선물보다 네가 한번 찾아와 손을 잡아드리는 일일지도 몰라. 아직 늦지 않았어.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뵈어라."

그 순간 영식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수십억 원의 재산을 가진 자신은 낡은 양복 한 벌로 친구를 평가했지만, 평생 거친 손으로 일해 온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따뜻한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습니다.

영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동창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태 씨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습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사람 되는 공부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며, 친구의 직업을 함부로 비웃었던 일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동창들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식의 무례한 말을 듣고도 누구 하나 제대로 말리지 못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는 언제부터 동창회가 돈 많은 사람들의 자랑을 듣는 자리가 되었느냐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도시락 반찬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도 그토록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 서로의 재산과 지위를 비교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동창회는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영식은 곧바로 차를 돌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으로 향했습니다. 정태 씨도 함께했습니다.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옥분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영식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가득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업고 시장 골목을 뛰어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저 영식이에요. 어머니 아들 영식이요."

할머니는 한참 동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앞에서 그동안 미뤄왔던 수많은 방문과 전화가 떠올랐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미뤘던 시간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때 정태 씨가 다가가 할머니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아드님이 찾아오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정태 씨를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영식의 손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나?"

그 한마디에 영식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서 여전히 밥을 먹었는지부터 걱정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마른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태 씨는 말없이 두 모자를 바라보다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랜만에 단둘이 함께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습니다. 영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찾아가 식사를 돕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함께 산책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만, 영식은 더 이상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잠시라도 편안하게 웃으시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어느 날 영식은 정태 씨를 따로 찾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값비싼 선물 상자 대신 지역 복지관의 후원 안내서가 들려 있었습니다. 정태 씨와의 만남 이후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위한 돌봄 지원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역 복지관과 상의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식은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태 씨는 친구의 변화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영식이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란히 앉아 한참 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돈과 재산을 자랑하느라 바빴던 동창회 자리와는 달리, 이날의 대화에는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늙습니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도, 높은 직함도, 화려했던 명예도 언젠가는 빛을 잃습니다. 통장에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아두어도 그 숫자가 인간의 깊이까지 증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는 평생 큰 건물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거리를 청소하고, 누군가는 병든 사람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흘린 땀에는 각자의 사연과 존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삶의 무게는 자동차의 가격으로도, 집의 평수로도, 은행 잔고의 크기로도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서정태 씨는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요양원으로 향합니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부축하고, 누군가의 어머니에게 따뜻한 밥을 떠먹여 드리고, 가족의 얼굴조차 잊어가는 노인의 손을 잡아주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의 삶이 하루아침에 화려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오래된 집에 살고, 아내와 함께 검소한 밥상을 마주하며, 특별한 날에는 20년 된 양복을 꺼내 입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에게 자랑할 재산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이 세상에 있다는 조용하고도 깊은 자부심입니다.

30년 만의 동창회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한 노인은 끝내 자신의 재산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삶 앞에서 얼굴이 붉어진 것은 낡은 양복을 입은 친구가 아니라, 가장 값비싼 양복을 입고 있던 부자 친구였습니다.

사람의 진짜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세상에 어떤 온기를 남겼느냐에 있습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가장 빛나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따뜻한 사람으로 남는 이가 아닐까요.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고, 그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한 인간의 진정한 품격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