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가 뭐길래…KIA 타이거즈, 섬에서의 설

KIA 타이거즈의 '아마이오시마배' 윷놀이 현장에 설치된 피치 클록.

한 번씩 ‘야구가 무슨 스포츠냐’라는 말을 듣곤 한다.

얼핏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종목이다.

다양한 체형의 선수들이 뒤섞인 그라운드, 가끔은 그냥 서 있다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면서 쉴 새 없이 달리는 종목의 선수들이 보기에는 꽤 평온해 보일 것이다.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야구는 결코 쉬운 스포츠가 아니다.

가장 많은 144경기를 소화하는 종목이다.

경기 시간도 빨라야 2시간 30분 정도에 끝난다.

보통 3~4시간은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포지션마다 편차가 있지만 어찌 됐든 2025시즌 기준 평균 3시간 5분, 최소 144경기를 치러야 하니까 정말 많은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낸다.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더 지루하고 힘들다.

시즌이 끝나면 마무리캠프에 참가하는 선수도 있고, 1월 중순이 되면 스프링캠프를 위해 다시 집을 나서야 한다. 캠프는 3월이 훌쩍 넘어야 끝난다.

1주일에 6일, 초집중 상태로 모든 경기를 뛰는 선수도 경기에 앞서 훈련은 한다. 경기에 나가지 않더라도 매일 훈련은 이어진다.

명절은 잊은 지 오래다. 추석에는 경기가 있고, 설에는 한국에 없다. 스프링캠프에서 설을 보내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는 연휴 개념은 없다.

오로지 월요일만 있을 뿐.

KIA 아마미오시마 캠프에 마련된 설 특식.

명절을 잊고 사는 선수들에게도 명절은 찾아온다.

KIA 타이거즈 선수들도 일본 아마미오시마라는 낯선 섬에서 설을 맞았다.

설날은 있지만 연휴는 없다. 15일 휴식일을 보냈던 KIA 선수들은 당연하게 3일턴에 맞춰 달력에 빨간색으로 쓰인 16·17·18일에도 훈련을 했다.

똑같은 3일이었겠지만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전해오는 소식에 집이 그립기도 하고, 명절을 실감했을 것이다.

지치기에 딱 좋은 시기에 찾아온 설이었다.

1월 25일부터 시작된 훈련에 몸도 마음도 고단한 때다.

그리고 아마미오시마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말 그대로 섬이다. 고요한 섬에서 같은 풍경을 보면서 맞는 설이 우울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섬에서의 설을 위해 프런트가 팔을 걷어붙였다.

닭곰탕 육수에 일본식 떡이 올라간 떡국.

설날에 떡국이 빠지면 섭섭하다.

우리가 아는 그 떡국은 아니었지만 선수들은 설날 특식으로 ‘아마미식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가래떡을 뽑을 수는 없고 선수단 음식을 준비하는 호텔측에서 구단의 요청을 받아 모찌 스타일의 고운 떡을 준비했다.

떡이 들어갔으니 떡국이 맞다. 구단에서 전달한 떡국 레시피로 완성된 떡국은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닭곰탕 육수를 베이스로 했다.

비슷한 음식에, 고된 훈련에 입맛이 떨어졌던 선수들은 이날 준비된 떡국을 모두 소진시켰다고 한다.

훈련이 끝난 뒤에는 ‘아마이오시마배 윷놀이 대회’가 펼쳐졌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윷놀이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느 순간 목소리와 몸짓이 커지고,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걸린 듯 환호하고 좌절한다. 별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윷놀이는 그 이상이다.

이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윷놀이는 그냥 윷놀이가 아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2024년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 취재를 갔다가 선수단과 같이 설을 맞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캔버라배 윷놀이 대회’가 펼쳐졌고 모든 이가 초집중해서 국가대항전처럼 윷가락을 던졌다.

구경꾼들은 웃느라 배가 아플 정도로 선수들은 영혼을 끌어내서 윷놀이를 즐겼다.

올해 대회 현장도 뜨거웠다고 한다. 시작부터 신중했다.

8명의 코치가 조편성을 위해 드래프트를 진행했다.

사다리 타기로 대진표가 완성됐고, 예선전부터 피치클록이 적용됐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선수들은 10초 이내에 윷가락을 던져야 했다.

치열했던 승부 끝에 이범호조와 김주찬조의 결승 대진이 완성됐다.

현역시절 선구안 따위 필요 없이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둘렀던 김주찬 타격 코치가 윷놀이 대회에서는 남다른 선구안으로 ‘승장’이 됐다.

나성범, 양현종, 성영탁, 윤도현을 호명한 김주찬 코치의 숨은 병기는 해럴드 카스트로와 제리드 데일이었다.

뭔지 모를 윷가락이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두 사람은 ‘원투펀치’로 결승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윷놀이 결승전 무대에 설치된 트랙맨

야구단의 경기라고 전력분석팀이 그냥 있지 않았다.

결승전 무대에는 트랙맨이 설치됐다. 정확한 분석과 경기 진행을 위했다나 어쨌다나. 완벽한 판정을 위해 초고속 카메라 설치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선수들과 프런트는 혼연일체가 돼 진심을 다한 윷놀이 대회를 펼쳤다.

선수들이 던진 윷가락에도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윷놀이 영상을 보고 저렇게 큰 윷가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캠프 들어갈 때 한국에서 들고 갔나?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폼롤러로 제작한 윷가락

윷가락의 비밀은 폼롤러였다.

이우중 매니저가 섬 이곳저곳을 뒤져서 윷가락 만들기에 나섰다고 한다.

매니저의 선택은 하프 폼롤러였다.

폼롤러에 테이핑을 해 그럴듯한 윷가락을 완성했다.

떡국으로 배를 채운 선수들은 윷놀이로 모처럼 크게 웃으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냥 즐거운 놀이가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고 긴 캠프를 부상 없이 완주하고 경쟁을 거쳐 144경기를 꾸준하게 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

캠프 반환점을 앞두고 선수들은 즐거운 경쟁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리고 팀으로 함께 뭉치면서 ‘팀워크’도 다졌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다. 얼굴을 붉히는 날도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지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배에 탄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망망대해에서 함께 노를 저여야 한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특별했던 설날을 보낸 KIA는 다시 또 달린다.

달리기 속도는 더 빨라질 예정이다. 23일부터 오키나와에서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
사진제공 = 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