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 날벼락?"…'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에 '대혼란' [현장+]
재학생 "소통 없이 정치 논리로만 진행"
문체부 "현재까지 계획 수립된 바 없어"

"광주 이전 논의 전에 학생들과 소통이 있었나요? 우리를 존중해주긴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27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캠퍼스. 무대 설치 작업 중이던 무대미술과 학생 박모 씨(25)는 '정치권의 한예종 전라남도 광주 이전 논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한예종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면서 '한예종 전남 광주 이전설'에 불을 지폈다. 해당 법안에는 한예종 전남 광주특별시 이전, 예술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석·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원을 설치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 의원은 다음날인 23일 민형배·전진숙 의원 등 광주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한예종 광주 유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한예종의 전남 광주 이전은 전남 광주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예술 거점 도시로 도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청년 예술인들이 지역에 모여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직 법안 발의 단계지만 학생들과 교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커지며 그야말로 '날벼락'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학생들은 정작 자신들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 "학생들과 소통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법안 발의 닷새 만에 찾은 한예종 캠퍼스에서 학생들은 당혹감부터 드러냈다. 캠퍼스 내 카페테리아 앞에서 마주친 영화과 학생 임모 씨(31)는 "학생 얘기를 듣지 않고 진행되는 것 자체가 그냥 직관적으로 기분이 안 좋았다"며 "법안에 대해서도 뉴스로만 들었는데, 학생들 귀에까지 들리도록 소통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어떤 학생들을 "경기 광주 말하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인프라 격차로 인해 특정 학과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학과 학생들은 작품 전시나 포트폴리오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시장과 화방 등을 직접 찾아야 하는데, 지역 내에 그런 곳이 충분히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전문사(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모 씨(33)는 "공구도 지방에서는 농업용 같은 것만 있어 대부분 서울에서 사야 하고, 미술 화방도 서울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달랑 학교만 옮겨놓는다고 문화예술 생태계가 조성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직원들도 한예종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발생할 재원 문제까지 거론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한예종 직원은 "건물을 다 지어주겠다고 하지만, 우리 학교 건물을 지으려면 다른 학교보다 건축비가 훨씬 비싸다"며 "일반 대학교는 강의실에 의자만 넣어주면 끝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 장비를 다 세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그런 걸 생각하고 법안을 낸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지역 주민들 "진짜 한예종을 이전시키겠나"

지역 상권도 반대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빠져나간다면 자영업자부터 직격탄을 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예종 후문 인근 한 프랜차이즈 카페 관계자는 "주민들은 (학교가) 가는 걸 싫어한다"며 "커피숍이나 식당은 학생들이 오는 곳이라 (이전 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예종 후문 인근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는 "땅값을 빼고 건물 짓는 것만 2조원 넘게 든다고 들었다"며 "재원이라는 게 그렇게 몇 조가 한 번에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지역 주민 역시 "그 얘기는 20년 전부터 들어 별 신경도 안 쓰고 있다"며 "일산도 안 갔는데 광주까지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한예종 이전)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17년째 떠도는 한예종 이전 논의…이번엔 다를까

한예종 이전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 의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가 문화재 보호구역에 편입됐고, 문화재 당국은 의릉의 훼손된 구역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한예종 이전이 번번이 무산된 데는 부지 문제와 주민 반대가 작용했다. 한 한예종 관계자는 "학교 규모를 대체할 만한 부지 자체가 사실상 없었다"며 "송파의 경우도 그린벨트가 서울시에 묶여 있고, 보상금 등 규제를 다 풀어야 해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민들도 학교가 빠져나가는 걸 원치 않아 최근 성북구에 '돌곶이역'을 '한예종역'으로 바꿔 달라는 제안까지 나온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현재는 총학생회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광주 이전은) 학생들에 대한 고려나 일말의 예고 없이 추진된 주장"이라며 "교육기관의 본질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외면한 채,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학교를 이전 가능한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교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예종 관계자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현재 내부 회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신중한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어디로 언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지금 수립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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