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BEAT LA!”를 외치나
1982년의 일이다. 농구(NBA) 경기 때였다. 보스턴 셀틱스가 패배를 눈앞에 뒀다. 파이널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셀틱스 팬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그리고 상대(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작은 구호였다. 하지만 이내 거대한 합창이 된다. 경기장(보스턴 가든)이 쩌렁쩌렁 울린다.
“BEAT LA!” “BEAT LA!” “BEAT LA!”
생뚱맞게 LA가 등장한다. 셀틱스의 철천지 원수다. 바로 LA 레이커스다.
그들은 이미 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자신들은 탈락이 확정적이다. 그러니 식서스가 대신 가서 앙갚음을 해달라. “BEAT LA”에는 그런 염원이 담겼다.
이후로 여러 곳의 외침이 됐다. 뉴욕에서도, 시카고에서도, 마이애미에서도…. 모두가 LA를 박살 내려고 한다.
비단 NBA뿐만이 아니다. 야구장(MLB)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저스는 그야말로 사방에 적인 것 같다. 걸핏하면 “BEAT LA”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플래카드가 관중석에 넘쳐난다.
가까운 지역일수록 더 치열하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1위 다툼을 벌여야 하는 팀들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애리조나 D백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콜로라도 로키스가 그들이다.

6주 만에 따라 잡힌 9게임차
특히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 1시간 남짓 거리의 이웃 파드리스다. 최근 전력이 부쩍 좋아졌다. 그래서 늘 만만치 않은 어깨싸움을 벌이게 된다.
올해가 유독 그렇다. 불과 7월 초만 해도 싱거웠다. 다저스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NL 서부지구) 2위와 무려 9게임 차이나 벌렸다. 그야말로 요지부동의 구도였다.
그런데 천지가 개벽했다. 파드리스가 무섭게 치고 올라간다. 반면 다저스는 휘청거린다. 결국 따라 잡혔다. 14일(이하 한국시간) 1, 2위 순서가 바뀐다. 불과 6주 사이에 벌어진 변화다.
7월 4일이 기준이다. 이후로 샌디에이고는 23승 12패를 했다. 승률이 65.7%나 된다. 거꾸로 다저스는 12승 21패(36.4%)로 허우적거렸다.
이유는 부상과 부진이다. 선발진이 줄줄이 드러누웠다. 그러더니 불펜마저 시름시름한다. 중반 이후 역전패가 부쩍 늘었다.
타선도 더위를 먹었다. “난 올해 틀렸다.” 핵심 무키 베츠마저 두 손 들었다. 나머지 타자들도 지리멸렬이다. 오타니 쇼헤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친다. 그러나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반해 파드리스는 올인 작전을 펼쳤다. 윈 나우(win-now) 코드를 발령했다. 그리고 획기적인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여기에 따라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진행했다. 결국 트레이드 마감시한(8월 1일)에 큰 거래를 완성시켰다. 유망주 13명을 내주고, 즉시 전력 7명을 데려왔다.
덕분에 확실한 마무리(메이슨 밀러)를 영입했다. 또 좌완 네스터 코르테스를 데려왔다. 불펜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게다가 돌아온 다르빗슈 유도 선발진의 무게를 더했다.

처절한 보복과 응징 = 사구 8개
두 달쯤 됐다. 섬찟한 SNS 하나가 있었다.
“내일 X레이 결과가 나쁘기만 해 봐.” 그렇게 시작되는 멘션이다. 다음 문장이 비장하다.
“그들은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촛불도 하나 켜 놓는 게 좋다. X레이가 음성으로 나오도록 말이다.”
역시 ‘신부님(Padre)’ 팀이다. 기도 열심히 하라는 충고다. 계정의 주인은 그 팀의 3루수다. 바로 매니 마차도다.
사연이 있다. 다저스 전을 치른 날이다. 그 경기에서 동생 같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쓰러졌다. 다저스 투수 브랜든 리틀의 공에 오른쪽 손목을 맞은 것이다.
극심한 통증으로 교체됐다. 그리고 이튿날 병원 검진을 예약했다. 그러니까 마차도의 말은 이런 뜻이다. “내 동생 부상이 심하기만 해 봐. 너희들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그나마 다행이다. 검진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비장한 경고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만큼 두 팀의 사이는 싸늘하다.
당시는 4연전 시리즈였다.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됐다. 그 나흘간 8개의 몸에 맞는 볼이 나왔다. 보복에 보복이 거듭되는 처절함의 연속이었다.
페타주의 손목을 향한 것도 그중 하나다. 그는 이틀 전에도 등에 한 방을 맞았다.
홈팀의 슈퍼스타도 피해자다. 곧바로 몇 분 뒤에 응징이 돌아왔다. SD의 로베르토 수아레스가 100마일짜리를 오타니의 옆구리에 꽂았다.

내일부터 전쟁 같은 3연전+3연전
이때 오타니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격렬한 통증을 애써 참아낸다. 그리고는 벤치를 향해 손을 번쩍 든다. “괜찮다. 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우르르 몰려나가려던 동료들을 향한 일시정지 사인이다.
사실 두 팀은 직전에도 신경전을 펼쳤다. 페타주의 사구 때 이미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다시 한번 으르렁거리면, 크게 사달이 날 수도 있었다.
결국 4연전이 끝나고 MLB 사무국의 징계가 발표됐다. 양 팀 감독에게 1게임 출장정지와 벌금이 내려졌다. 오타니를 맞힌 수아레스는 3게임 정지와 벌금이 부과됐다.
작년 가을의 기억도 있다.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NLDS)가 하필이면 앙숙의 대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내 시끄러운 매치업이 됐다. 2차전 때는 홈런성 타구를 처리한 주릭슨 프로파와 관중들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공을 잡고도, 아닌 척하며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다음이 더 기가 막힌다. 이번에도 마차도가 원인제공자다. 뜬금없이 다저스 덕아웃 쪽으로 공을 던진다. 공교롭게도 감독이 있는 방향이다.
데이브 로버츠가 흥분한다. “그물망이 있어서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우 불쾌하다. 만약 나를 타깃으로 한 행동이라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격앙된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호소한다. 다저스 구단은 사무국에 사안 검토를 요청했다.
그야말로 원수나 다름없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불구대천, 不俱戴天) 상대다. 그런 둘이 다시 만난다. 내일부터 LA에서 3연전(16~18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는 장소를 샌디에이고로 옮긴다. 거기서 다시 3게임(23~25일)을 벌인다.
두 말하면 숨만 가쁘다. 무척 중요한 일전이다. 정규시즌 1위를 가늠할 시리즈가 될 것이다. 그만큼 전쟁 같은 대결이 될 것이다. (올시즌 상대 전적은 5승 2패다. 다저스가 앞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