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창 “약속 못 지킨 삼성전자, 당분간 추운 겨울”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력 하락 등으로 위기론이 확산하면서 3분기(7~9월) '어닝쇼크'를 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맥쿼리는 삼성전자를 "허약한 반도체 거인(Sickly Semicon Giant)"이라고 평했다. 최근 실제로 삼성전자에 우려되는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범용 D램의 경우 중국산 '레드 메모리' 공격까지 받고 있다. 중국 1위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DDR4, LPDDR4X 등 레거시(구형) 범용 D램을 중심으로 물량 공세에 나서며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10월 13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업체의 D램 시장점유율은 올해 3분기 6%에서 내년 3분기 10.1%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전문가인 노근창 현대차증권 센터장은 "차세대 D램을 만들려면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데, CXMT는 미국 제재로 EUV 노광 장비를 구입할 수 없다"며 "CXMT가 레거시 DDR4 제품을 저가에 공급하면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긴 했어도 EUV 노광 작업을 하지 못하면 단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10월 14일 노 센터장을 만나 '삼성전자 겨울론'을 분석하고 투자전략을 물었다.
중국 D램 위협은 해소될 전망
삼성전자가 3분기 영업이익 9조1000억 원의 '어닝쇼크'를 낸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반도체 부문의 일회성 비용 증가가 제일 크고, D램 DDR4 가격이 기대만큼 상승하지 못한 영향도 받았다. 또한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력 약화와 파운드리 선단 공정의 낮은 가동률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원인들로 3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분기 대비 감소한 5조2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영업이익이 6조8000억 원으로 예상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 때문에 '반도체 겨울'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 역시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뒤 "중국 메모리업체의 구형 제품 공급 증가로 실적이 하락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을 어떻게 봐야 하나.
"CXMT가 주력하는 DDR4는 삼성전자 주력인 DDR5와 비교하면 3세대 이상 기술력이 뒤처진 제품이다. 또한 CXMT의 웨이퍼 캐파(생산능력)는 4만~5만 장으로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절반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CXMT에 삼성전자가 추월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중국 반도체 기업은 미국 대선 이후 블랙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이 같은 우려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향후 차세대 D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EUV 노광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데, CXMT는 미국 제재로 EUV 노광 장비를 구입할 수 없다. 물론 중국 로컬 기업 장비를 쓸 수 있겠지만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 CXMT가 레거시 DDR4 제품을 저가에 공급하며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긴 했어도, EUV 노광 작업을 하지 못하면 단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XMT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올라간다는 전망도 맞지 않다. 물론 DDR4 가격을 인하하면서 당분간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시장에서 DDR4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그 영향력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큰 것인가.
"내년에도 반도체 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좋은 시장 상황을 삼성전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겨울론은 틀렸지만 '삼성전자 겨울론'은 맞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반도체 기업은 모두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마이크론은 72%, SK하이닉스는 25% 영업이익이 증가했는데 삼성전자만 감소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못 쫓아가고 파운드리는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왜곡된 DDR4 정보를 확대 해석한 점도 일조했다. 이런 부분들이 호락호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전영현 부회장이 '사과문'까지 올렸다."
엔비디아 테스트 통과해도 물량 받기 힘들어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겨울론을 계속 주장하는데."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이 출시 전 숨 고르기를 하는 시기를 틈 타 마치 겨울이 온 것처럼 왜곡하지만, 내년까지 반도체 업황은 좋을 전망이다. 다만 주가는 언제라도 겨울이 올 수 있다. 업황은 내년까지 좋아도 업황을 선반영한 주가는 상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HBM 테스트를 통과하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해도 메인 물량을 가져오기는 힘든 상황이다.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인 HBM은 이미 내년 블랙웰 물량까지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 간 캐파 조율이 끝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남은 블랙웰 물량을 받거나 구형 모델인 H200에 들어가는 물량에 기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군색한 상황은 그동안 삼성전자에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지 않나. 다만 패키징이 바뀌는 6세대 HBM4는 삼성전자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HBM4는 2026년 하반기부터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를 따라잡고 2030년까지 파운드리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도 인텔처럼 파운드리를 분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인적 쇄신과 R&D(연구개발) 경쟁력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2030년까지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무모한 목표보다 인력 체질을 확실히 개선해 확고한 2등이 돼야 한다. 따라서 TSMC를 제외하고 10㎚ 이하를 유일하게 지원하는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을 절대로 분사해선 안 된다. 선단 공정은 삼성전자와 TSMC밖에 못하는데 이걸 밖으로, 외부로 빼는 순간 지금까지 투자했던 모든 설비투자가 매몰 원가가 돼버린다."
시장에선 삼성전자 위기론의 근원 중 하나로 글로벌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인 거버넌스를 꼽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TSMC가 같은 ASML 장비를 쓰고 투자도 많이 하는데 왜 실적에서 차이가 날까. 결론은 인력이 문제다. TSMC 개발자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해 5년간 죽어라 일하고 번아웃돼 퇴사한다. 그럼 새로운 인력들이 들어와 5년간 뼈를 갈아 넣으면서 일한다. 삼성전자는 죽을 각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전사적으로 죽어라 노력해도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2년가량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이 상황을 극복하기엔 좀 늦었다는 우려도 일각에선 나오는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를 때다. 지금이라도 바꾸면 기회가 있지만, 패배주의에 젖거나 시장 탓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번에 전영현 부회장이 반성문을 쓴 마인드면 충분히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삼성전자 주가, 당분간 레벨다운 박스권
"삼성전자 주가는 당분간 레벨다운된 박스권에서 움직일 전망이다. 따라서 주가가 하락하면 매수했다가 조금 오르면 파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아니면 삼성전자가 근본적으로 변할 때까지 1년 이상 장기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4분기 영업이익이 3분기보다 나아져도 주가는 세게 상승하지 못할 것이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약속을 여러 번 못 지켰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4분기 실적이 나아져도 내년 1분기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의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도체는 변동성이 큰 업종이라 6개월이나 9개월 뒤 갑자기 회사가 체질 개선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면 주가는 생각보다 빨리 반등할 수 있다."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삼성전자 투자는 피해야 하나.
"삼성전자가 약속을 여러 번 지키지 못하면서 삼성전자의 목표나 계획을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삼성전자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간다면 시장 생각도 바뀔 것이다."
반도체 투자자 상당수가 삼성전자에서 SK하이닉스로 돌아섰는데.
"시가총액 300조 원인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어디를 사겠나.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실적뿐 아니라 수급까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나의 톱 픽도 SK하이닉스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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