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교복을 입고 거리를 걷기만 해도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하이틴 스타의 정점에 있었던 배우.
바로 ‘국민 여동생’의 원조, 임예진입니다.
한 장의 잡지 표지에서 시작된 인생
본명 임기희.
1960년 1월 24일생인 그녀는 우연히 삼촌의 소개로 잡지 ‘여학생’의 표지 모델로 얼굴을 알리며 연예계에 입문합니다.

그리고 1974년, 겨우 14살의 나이에 영화 파계에서 삭발 투혼까지 감행하며 비구니 역할로 데뷔합니다.

임예진은 청순함과 단정함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수줍은 웃음, 흰 피부, 단아한 말투까지.
<진짜 진짜 시리즈>로 대박을 치고 연예인 수입 1위까지 올랐던 1976년.
그녀는 그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사랑만 받던 소녀, 현실을 마주하다

하지만 그 인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성인 연기자로 전환하며 맞닥뜨린 이미지의 굴레와 가혹한 평가들.
기대와 오해 사이에서 임예진은 긴 슬럼프에 빠지고 맙니다.

그때, 선배 윤여정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사랑받는 주인공만 할래?”
그 한 마디가, 임예진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배우로 살아남기 위한 결심

임예진은 주인공을 내려놓고 조연, 단역, 심지어 예능까지 두드렸습니다.
《오박사네 사람들》에서 철부지 고모로, <세바퀴>에선 패러디 여왕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진짜 ‘배우’로 거듭난 그녀.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의 소양자처럼 웃기지만 따뜻한, 얄밉지만 정 많은 캐릭터로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1988년, 어린이 드라마 촬영장에서 조연출이던 최창욱 PD를 만나 연인이 되었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 든든한 가정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임예진은 여전히 바쁩니다.
드라마, 예능, 뮤직비디오까지.
그녀는 늘 자신의 자리를 찾아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사랑받던 소녀에서 사랑을 전하는 여배우로.
임예진의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