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욕망하던 소년…잔혹한 경영자 논란에도 ‘조만장자’ 자리 예약 [더 비저너리-일론 머스크]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미래 산업 선두주자’ ‘잔혹한 경영자’ ‘천재’ ‘지독한 관종’ ‘괴짜 사업가’...
일론 머스크(52)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형용하는 단어는 차고 넘친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 중 하나로 경제, 산업,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서 단순한 사업가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머스크는 어린 시절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했다. 그의 고독한 경험과 상상력은 후에 경영과 창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독서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에 흥미를 키웠고 이는 그가 스페이스X, 테슬라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을 창업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여전히 혁신을 추구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머스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의 다음 행보가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어린시절 외톨이, 공상과학과 책에 빠져…아버지 학대, 인간관계와 리더십에 영향=머스크는 1971년 6월 28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타인과의 감정적 소통이 어렵고 또래 친구를 사귀지 못해 방에 틀어박혀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머스크의 가족은 시간만 나면 무엇이든 읽으려 하는 그를 신기하게 여겼다. 한살차이 동생인 킴벌 머스크 역시 하루에 10시간씩 책을 읽는 형의 모습이 어릴 적 기억에서 가장 많은 장면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킴벌의 표현에 따르면 당시 일론은 ‘깨어있는 시간에는 대부분 책을 읽고 있는 아이’였다.
머스크는 남아공 초등학교의 작은 도서관에 있던 모든 책을 다 읽어버리고, 사서에게 책을 더 사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머스크는 “어렸을 때, 나는 항상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느꼈다. 책이나 과학, 그리고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것들이 나의 친구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머스크의 불안한 정서는 남아공 출신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아버지 에롤 머스크의 영향이 컸다. 일론은 부모 이혼 후 아버지와 살았는데, 그는 아버지를 “이름 대신 바보, 천치,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 “어린아이를 1시간 이상 꼼짝하지 못하게 세워두고 언어 폭력을 쏟아내는 소시오패스”로 회상했다. 당시 머스크는 학교폭력에도 시달렸던 터라, 학교와 집에서 모두 괴롭힘을 당하는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다.
머스크의 연인이었던 가수 그라임스는 “일론은 어린 시절부터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든 유년기를 보낸 까닭에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는 성향을 갖게 됐고,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한 것으로 주변인들은 추측한다.
머스크의 어머니인 메이 머스크는 “일론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아버지와 특히 정치적 발언에서 거의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 에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짓이라고 믿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해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범죄자”라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 역시 바이든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엑스(X·옛 트위터)에 반트랜스젠더 콘텐츠나 음모론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거나 이에 대한 논의를 촉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플랫폼 정책이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머스크의 전처이자 배우인 탈룰라 라일리는 이런 머스크의 행보를 보며 “그 남자(일론) 안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우주를 열망하던 소년…스페이스X 세우다=1995년 머스크는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등록했다가 학교를 접고 실리콘 밸리로 이주한다. 인터넷 사업의 잠재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머스크와 남동생 킴벌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지역 정보 제공 시스템인 Zip2를 창업했다. 이들은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과 같은 신문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1999년 Zip2를 매각하고 1000만달러를 투자해 X.com이라는 온라인 결제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년 만에 경쟁사였던 콘피니티를 인수합병한 후, X.com이란 이름 대신 페이팔(PayPal)로 바꿨다.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달러에 인수하면서 머스크는 1억6500만달러를 손에 쥐게 됐다. 이 자금은 그가 이후 스페이스X와 테슬라 같은 다른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종잣돈이 됐으며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재정 기반이 됐다.
머스크의 최대 관심사는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가진 ‘화성’이었다.
그는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돼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스페이스X를 설립한 이유 중 하나도 인류가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자원 고갈, 지구 재앙,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화성에 인간이 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먼저 미국 우주군과 공군, 항공우주국(NASA), 보잉과 같은 우주 항공 산업이 모여있는 로스앤젤레스로 거주지를 옮겼다. 2001년 그는 화성 탐사와 이주를 촉진하기 위한 비영리 단체인 마스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마스 소사이어티가 추진한 마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머스크의 비전과 일치한다. 스페이스X는 화성에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해 다양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머스크는 화성을 인간의 두 번째 집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마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작은 식물을 채워 넣은 온실을 로켓에 실어 화성으로 보낸 다음,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줘 대중이 화성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머스크가 이 단체에 직접 가입한 적은 없지만 그의 많은 발언과 계획은 마스 소사이어티의 비전과 맞닿아 있다고 보는 이유다.
머스크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의 군축 정책에 따라 폐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구입해 발사용 로켓으로 사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모두가 이 일을 ‘정신 나간 짓’이라며 머스크를 말렸다. 로켓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인 역시 회의적인 태도였다. 거래가 불발된 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른 일행들은 잠에 빠졌지만, 머스크는 로켓을 만들고 조립하고 발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비용을 따져보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러시아인들과의 거래 실패는 오히려 머스크에게 우주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경제적인 로켓’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심어줬다. 2002년 6월 그는 로스앤젤레스 엘 세군도에 약 2000㎡ 면적의 창고를 구입했다. 이 공간은 스페이스X의 초기 로켓 개발 및 조립 작업을 위한 기지로 사용됐으며, 회사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페이스X는 첫날 출근 직원이 10명에 불과했으나 지난 8월 기준 약 1만3000명에 달하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스페이스X가 처음으로 만든 로켓인 팰컨 1호는 수차례의 발사 시도에도 실패하고 만다. 머스크의 막대한 자산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스페이스X 창업 5년 뒤인 2007년이었다. 펠컨1호는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도약했지만 1단 로켓이 2단 로켓의 노즐에 충격을 주었고, 안전성의 문제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당시 머스크는 심각한 불안으로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잤으며 거칠게 잠꼬대를 하거나 때로는 팔을 마구 휘두르며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허벅지와 어깨 등 신체 여기저기에 통증을 느끼고 수면이 부족해 눈 밑 지방 덩어리가 불룩 튀어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머스크를 볼 때마다 그가 곧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스크는 불안해하면서도 직원들 앞에서는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페이스X의 팰컨 1호는 2015년 마침내 1단 부스터를 지상에 착륙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 2018년 2월 팰컨 헤비 로켓 발사에 성공한다. 팰컨 헤비는 강력한 발사 능력을 갖추고 있어 대량의 화물 뿐만 아니라 유인 임무에도 적합한 로켓이다.
팰컨 헤비의 개발은 스페이스X의 우주 탐사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이 로켓은 나사의 달 유인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Artemis)’ 임무의 성공에 중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
▶“자동차는 갈망하는 것이 돼야 한다”…소유하고 싶은 섹시한 전기자동차=테슬라는 2003년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에 의해 설립된 회사였다. 2004년 머스크가 투자자로 참여했고, 초기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머스크가 CEO에 올라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지루하게 생기지 않고, 뛰어난 성능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강력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섹시한 전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초기 창업자들의 의견에 동의한 머스크는 테슬라에 650만달러(약 70억원)를 투자했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2006년 7월, 테슬라 팀이 1년 동안 만들어낸 100% 전기로만 움직이는 슈퍼카인 로드스터의 출시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포함한 350명의 유명 인사와 언론은 모두 로드스터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렀다.
‘캘리포니아 부자들을 위한 전기 스포츠카’라는 콘셉트는 적중했지만, 하루 이벤트에 필요한 소수의 핸드메이드 자동차를 만드는 일과 수천, 수만 대의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은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2007년 8월 테슬라 이사회는 일론 머스크를 CEO로 임명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머스크는 이미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CEO가 되면서 전기차 개발에 전략을 집중했다.
머스크는 로드스터의 부품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인건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을 마칠 때까지 주말에도 일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모터 파트의 한 엔지니어가 “3개월 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머스크는 “파산하고 나면 가족의 얼굴을 원 없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단칼에 잘랐다. 머스크는 일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거나 살인적인 기한을 준 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완수할 것을 요구했다.
‘하드코어’ 방식이건 강력한 추진력이건 결과적으로 테슬라는 머스크의 리더십 덕분에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가 확고해졌다. 현재는 미국, 유럽 등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전기차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머스크의 신념은 자신에게도 적용됐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 했던 캐나다 SF 소설 작가 저스틴 윌슨과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저스틴은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가 아닌 일론과 대등한 동반자가 되고 싶어했다. 다정한 남편과 거리가 멀었던 일론과 감정적 갈등이 쌓이며 둘은 2008년 6월 이혼 소송에 이르게 됐다.
저스틴은 8년간의 결혼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현금 200만달러(약 26억6000만원)와 위자료·양육비로 17년 동안 매달 8만달러(약 1억650만원), 테슬라 로드스터 1대를 받는 것으로 소송에 합의했다.
머스크는 성공이 불확실한 2개의 사업을 꾸리며 이혼 소송까지 해야 했던 당시 상황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사방에서 공격을 당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보며 쾌감을 느끼더라. 여러 면에서 너무 괴로웠다. 저스틴은 언론을 통해 나를 고문했고, 테슬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기사와 스페이스X의 3차 발사 실패를 들먹이는 기사가 넘쳐났다. 내 삶이 문제가 있다는 의혹은 커갔고 내가 만든 자동차와 로켓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다 이혼까지 겹치다 보니 스스로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독선적인 경영자 vs ‘극단적 몰입’의 천재 사업가=‘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이면서 살인적인 마감 기한을 설정하는 것’은 머스크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혁신을 위한 급진적인 접근을 선호하고, 빠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마감 기한을 설정하곤 한다. 이러한 방식은 팀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스페이스X 출범 후 모든 로켓 발사의 마감 기한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설정됐다. 스페이스X가 초기에 발표했던 계획에 따르면 팰컨1은 2003년 5월 1단 엔진, 6월 2단 엔진, 7월 동체를 완성하고 10월에 발사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모든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제한 것이다.
테슬라를 세운 후에도 파산 위기에 맞서 무모한 생산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천막으로 임시 생산라인까지 만든 후 목표량을 달성하도록 직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동료를 해고하는 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독재자에 가까웠지만, 또 목표를 위해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모든 규정과 요구사항에 의문을 제기하고 불필요한 과정과 부품을 과감히 버렸다. 생산라인의 과도한 자동화로 제품 생산이 오히려 늦어지자 로봇을 들어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산을 서두르기 위해 안전과 품질을 등한시한다는 비판도 받았으며, 실제 테슬라의 산업재해율은 다른 기업에 비해 30%나 높다.
▶‘오너리스크’ 논란에도…개인 최초 ‘조만장자’ 등극 전망= 영국에 본부를 둔 자산 분석 및 마케팅 컨설팅업체 ‘인포마 커넥트 아카데미’는 최근 보고서에서 머스크의 재산이 연평균 110%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대로 가면 3년 뒤 세계에서 처음으로 1조달러(약 1339조원) 자산가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18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머스크의 순자산은 2490억달러로 세계 1위다.
인포마 측은 테슬라의 시가총액을 6693억달러로 평가했고 테슬라의 시총이 연평균 173%씩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로 인해 테슬라 지분 20.5%를 소유한 머스크의 재산 또한 급증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머스크는 복잡한 사생활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2017년부터 2019년 스페이스X에 근무했던 회사 인턴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해당 직원을 정규직으로 입사시켜 초고속 승진을 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적어도 4명의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성 추문으로 개인 뿐 아니라 회사 이미지를 깎아 내리며 ‘오너 리스크’가 부각됐다.
이러한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테슬라는 머스크에게 약 66조원의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을 지급했다. 이 스톡옵션은 2020년에 테슬라의 경영 성과와 회사 목표 달성에 기반하여 부여된 성과 기반 보상안의 일환이다.
또 지난해에는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 견해를 지지하는 의견을 엑스에서 드러내면서 또 한번 ‘머스크 리스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엑스에 대한 광고 중단 행렬이 이어지는가 하면,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테슬라의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기도 하고 있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혁신성에 한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여전하다.
테슬라의 초기 성장 과정에 기여한 인물인 마이클 마크스 테슬라 전 CEO는 머스크에 대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능력이 뛰어나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면서 “머스크의 야심과 추진력이 기업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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