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어느 택배기사의 부조금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사람을 마주하지 못하는 경험까지 하며, 비대면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다.

애경사(哀慶事) 부조를 온라인 계좌번호로 보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택배나 음식 배달도 집 앞에 놓아두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팬데믹은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거리도 멀게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택배로 물건을 보내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 부모님께서는 자식들 얼굴 대신 택배를 받는 일이 더 많아졌다.

우리 부모님은 1층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현관 앞이 잘 보인다. 택배 차량이 들어서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먼저 음료수를 챙기셨다. 기사님에게 드리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그 세대 분들 정서는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는 물건은 기사님이 꼭 집안에 들여놓아 주셨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랬다는 것이다.

올해는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해가 된다. 어머니는 이제 혼자 계신다. 아버지께서 올 봄에 황망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장례기간, 삼우제, 49재를 지내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어디로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지아비 자리 대신 멀리 사는 아들 딸, 손주들까지 예전과 다르게 같이 지내주고, 효자 아들들 덕에 고맙다 하시지만 아직도 슬퍼하신다.

여름 한 철이 지난 어느 날 택배기사님은 어머니에게 왜 요즘 바깥 어르신이 안보이냐고 물었다.

추석 직전이라 바쁘게 움직이던 기사님은 부고를 듣고 한참을 넋 놓고 서있었다.

“점잖으신 분이셨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시다니요, 알았더라면 아무리 바빠도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를 드렸을 텐데요”

그리고는 차에 가서 급히 뭔가를 챙기는 것 같더니 어머니에게 부의금을 주고 가셨다.

여름 한 계절이나 지나서 절대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얼떨결에 받게 되었다.부의라고 쓰인 종이를 보는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격식을 갖춘 봉투도 고마운 일이지만 수첩 한 장에 담긴 기사님의 손 글씨에서 진심과 정성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다시 잡아보는 느낌이었다.

상사(喪事)를 미처 알지 못한 어떤 분이라도 이렇게 위로를 해 주신다. 슬픔 속에서도 사람의 정이 오고가는 순간이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송계아(宋季雅)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인정이나 인품을 거론할 때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다.

비대면이 다반사가 되고 있는 요즘 만리를 가는 좋은 사람의 향기를 기사님에게 받았다. CJ 대한통운 전O우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힘겨운 폭염도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고, 가을을 또 맞이하며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 홀연히 가신 아버지의 유훈을 다시 그려본다.

‘애쓰지 마라, 괜찮다’

부모님 돌아볼 시간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사는 늘 바쁜 딸에게 진심어린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에 멍이 되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에 한없이 고마운 인향 가득한 기사님의 마음이 말을 한다.

‘사람이 사랑이에요.

’기사님의 말씀이 만리를 간다.

최성희 <예인문화원 대표·동암고 예절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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