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재정긴축'이 부른 최악 세수결손, 결과는 '피크코리아'
[나원준 경북대 교수(wjnah@knu.ac.kr)]
한국경제의 성장 엔진이 꺼져간다. 추세 성장률은 2000년~2006년 기간에 5%였다가 2010년대 들어 3%로 하락했다. 최근에는 약 2%까지 떨어졌다. 다음 세대는 성장이 실질적으로 멈춘 경제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물론 성장 자체가 지상 가치는 아니다. 지속가능하고 균형 잡힌 성장을 추구하는 규범적 판단이 더욱 중시되어야 옳다. 다만 성장의 문제는 시장경제에서는 일자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과 같은 대전환기에 경제사회의 전환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 갈등을 성장 결실의 재분배로 조정할 수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끌어올려 '플러스 섬(plus-sum, 누군가의 희생 없이 모두 이득을 누릴 수 있음)'을 창출하는 노력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방향 잃은 한국경제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최근 추세 성장률 둔화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 인구 감소다. 향후 중장기 경제정책의 핵심은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성장을 위해서도 초저출산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복합적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제 성장 정책은 사회 정책과 만나야 한다. 정부로서는 경제발전의 달라진 상(像)에 대한 시민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 정책에는 그와 같은 한국경제의 장기 과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지난 정부와 정말로 차별화하려면 미래 과제들을 공론의 장에 올려 다시 답을 찾는 숙의의 사회적 과정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노력은 이 정부 들어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향후 노동 인구 감소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보완하는 정책조합도 그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부자 감세와 재정 긴축의 결과는 피크코리아가 될 것
오늘 세계 각국은 국가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하며 능동적으로 재정 확충에 나서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첨단 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을 시작했다. 유럽 주요국도 '차세대 유럽연합 기금' 등을 활용해 대전환기에 필요한 공공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에너지 보조금이나 교통비 명목으로 가계소득에 대한 지원도 이어가고 있다.
각국은 소요되는 재정을 부자 증세로 확보하는 중이기도 하다. 미국은 기존 법인세 과세 제도를 정비하고 대기업에 15%의 최저실효세율을 부과한 데 이어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및 '슈퍼리치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은 코로나19 기간에 초과이윤을 벌어들인 업종을 중심으로 이미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와 같이 큰 정부와 증세는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대세가 되었다. 기후변화와 사회 양극화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절박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만은 그와 같은 변화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정권의 지지층을 위한 선물 공세로 '정치 감세'인 부자 감세, 재벌 감세를 고집한다. 그러니 사상 최악의 세수 결손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더 나쁜 것은 그 감세가 긴축과 결합된 탓이다. 감세를 밀어붙이면서도 재정건전성 타령을 늘어놓는다. 감세가 재정건전성과 모순된다는 자명한 사실은 이 정권한테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 힘들더라도 허리띠 졸라매고 재정을 아끼겠다고 한다. 부자에게는 감세를! 서민에게는 긴축을!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부자만을 위하는 포퓰리즘 정권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부자 감세와 재정 긴축으로는 경제도, 민생도, 재정도 모두 쪼그라드는 축소균형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다. 잘못된 재정정책은 '피크코리아'(한국경제가 정점을 찍고 추락하고 있다는 진단)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점점 더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 민족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기회의 창마저 이렇게 닫히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안 될 수 없는 것이다.
정책 실기(失期), 그리고 무너지는 지표
경제정책에서는 단기적인 경제운영도 중요하다. 그간에 정부의 경기 대응은 어땠나. 코로나19 기간부터 최근까지 정부의 성장 기여도를 비교하면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경제침체를 방어했던 시기는 2020년이었다. 감염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2분기는 정부 없이는 성장률이 –4.0%였지만 정부 재정지출 덕에 –2.6%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후 2021년과 2022년 상반기는 민간부문이 점차 정상 복구되는 과정이었기에 정부의 성장 기여도 하락에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2022년 4분기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년 동기(2021년 4분기) 대비 성장률이 추세를 밑도는 1.4%까지 떨어졌고 계절조정 기준 직전 분기(2022년 3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 값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경제가 재침체로 빠져들지 않도록 정부 조치가 나왔어야 했다. 당시 경기 판단이 어렵지도 않았다. 경기종합지수를 보면 선행지수는 순환변동치가 2021년 6월에 정점을 찍은 뒤로 쭉 내리막길을 달려 2022년 하반기에는 1년 넘게 하락하는 중이었다. 동행지수도 순환변동치가 2022년 11월에 급락했고 12월에는 기준치 100을 하회하며 확실한 침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선제적 대응의 기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상황 인식에 실패했고 경기 방어에 실기했다.
추경은 절대 안 된다는 몽니
정부는 적어도 2022년 말에는 정책 전환에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눈앞에서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데도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 작년 말 확정된 2023년 지출예산은 2022년 682.4조 원보다 줄어든 638.7조 원에 그쳤다. '살포재정'이라는 근거 없는 신조어로 지난 정부를 헐뜯었을 뿐이고 유일한 돌파구인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은 경제상황이 어떻든 절대 안 된다며 몽니를 부렸을 뿐이다. 그 덕에 경제 지표는 무너져 내렸다. 2023년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요행수만 바라던 상저하고도 공염불에 그쳤다. 부자들, 재벌들 세금 깎아주면 경제가 자동 활성화될 것인 양 우겼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의 '무당 경제학'이었을 뿐이다. 2022년 4분기 이후의 경기침체는 정책 실패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최근 개정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은 한국의 2023년과 2024년은 2022년보다 사정이 나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다시 2024년 예산안을 긴축예산 656.9조 원으로 편성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경제전망에서 2024년 명목성장률이 4.2%로 추정된 것과 비교하면 총지출 증가율이 2.8%에 그친 2024년 예산안은 재정총량 기준으로 명백히 긴축적이다. 2.8%면 올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이대로는 내년에도 정부가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된다.
관건은 재정정책의 기조 전환에 있다
그렇다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현재와 같은 무리한 긴축재정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관건은 재정정책의 기조 전환에 있다. 내년도 지출예산을 재편성하고 지출 추경으로 재정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 2022년에 우리 경제가 추세선인 '잠재 성장 경로'(양호한 고용 수준이 유지되는 추세적인 성장 궤적) 상에 있었다고 전제하고 올해와 내년 우리 경제가 잠재 성장 경로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시험적으로 계산해보면, 올해는 대략 20조 원 넘게, 그리고 내년에는 대략 30조 원 정도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1]). 단 이들 수치는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년 및 2024년 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GDP 산정 시 적용하는 물가지수) 전망치, 그리고 최근 추세 성장률을 적용한 결과이며 여러 가정에 기초한 일종의 단순 시산이므로 전망치나 가정이 달라지면 결과 값도 달라진다.
시산 결과는, 만약 올해 경기침체 없이 기존 추세 수준의 경제활동을 유지하려고 했다면, '재정 승수'(재정지출 1원 증가로 인해 늘어나는 국내총생산의 크기)를 1로 가정할 때, 20조 원 넘는 추경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올해 추경을 하지 못한다고 보고 내년에 기존 추세로 복귀하려면, 재정 승수에 대한 동일한 가정 하에서는, 필요한 추경 금액이 약 30조 원에 이를 수 있다. 다만 30조 원을 꼭 내년 한 해에 모두 추가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금액만큼은 부족한 수요가 보충되어야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기존 추세와의 차이를 메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재정 승수 값이 크다면 필요한 추경 금액도 줄어들 것이다. 어쨌든 최근 정부 긴축정책의 실패가 초래한 소득 상실이 규모 면에서 결코 작지 않았던 셈이다.
지출 확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출을 어떻게 확대할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물가 압력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감안한다면 현 상황에서 추경의 재원은 기존 감세 조치를 되돌리고 증세로 확보하는 방안이 최선이다. 자산 과세를 정상화하고 사회연대 목적세를 법인세와 소득세 상위 구간에 부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수 확보 전까지는 한시적으로 국채의 신축적 활용 가능성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고금리로 명목이자율은 올랐다고 해도 성장률이 세후국채실질금리(국채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상승분과 이자소득세 부분을 차감)를 추세적으로 상회해 적자국채의 경제적 이점이 여전히 존재하는 때문이다([그림 2]).
정부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특히 카르텔로 '찍힌' 연구개발(R&D) 예산, 재생에너지 예산, 의무지출 아닌 복지예산 등이 삭감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법정 상한마저 무시한 과도한 국세감면 탓에 지방재정이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향후 추경에서 지출의 분야별 배분은 지방교부세 회복을 비롯해 본예산에서 확대 편성이 요구되었던 부분부터 증액하는 방식이 순리다.
아울러 경기 대응과 성장의 마중물 확보를 위한 지출 확대도 이번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소상공인의 공공요금 및 채무 부담 경감, 전세사기 피해자를 포함한 주거 취약계층 지원, 저소득 가구의 소득 보전은 필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제1야당이 제안한 25조 원 민생 예산 증액 계획이 논의의 한 출발점은 될 수 있을 법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잘못된 긴축의 망령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에 당장 시급한 정책 과제들을 한시라도 빨리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를 바란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wjnah@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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