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입을 닫고 선생님은 쫓겨났다

나경희 기자 2024. 10. 10.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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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소용없었다. 성폭력을 공론화 한 교사는 전보 조치 되었다. 딥페이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학교는 가정통신문 발송 빈도를 늘렸을 뿐이다.
9월9일 지혜복 교사가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전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30년을 근무하고 정년까지 2년 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2023년 5월24일, 여학생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던 지혜복 교사(사회과)는 어쩌면 자신의 소박한 꿈을 이루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남학생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당해온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순간이었다. 외설적인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평가와 소문, 심지어 강제적인 신체 접촉까지 피해 범위는 넓었다. “한 아이가 그래요. ‘선생님, 1년 전에 들은 성희롱이 아직도 안 잊혀요.’ 저는 그 말이 안 잊히더라고요.”

담임에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했어요. 근데 걔(가해 학생)를 불러서 ‘너 그런 짓 하지 마’ 그러고 끝났어요.” 피해 학생은 생활지도부도 찾아갔다고 했다. “교무실에 불려갔다 온 애가 웃으면서 교실에 들어오던데요.” 학생 몇 명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닐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 학년 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돌렸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충격적이었다. 여학생 3분의 2가 학교 내 학생 간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피해 사실을 외부로 알린 경우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담임에게 말했는데 달라진 게 없었다’고 적었다.

한두 해의 일이 아니었다. 성폭력은 마치 학교 내 ‘전통’과 같았고, 여학생들은 ‘더 눈에 띄는 표적이 될까 봐’ 나서기를 꺼려했다. 남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학생이 집에 가서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여자애 뒤를 껴안았어’라고 말할까요? 안 하죠. 그러니까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지도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학교예요. 학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 집에서도 ‘우리 아들은 착해’라고만 믿고 아이는 비뚤어진 채로 크는 거예요.” 교실에서도 제지받지 않은 가해 남학생들은 학년이 바뀌어도 계속 여학생들을 괴롭혔다.

결국 피해 학생 여섯 명이 나섰다. 처음 교육청에 신고된 가해 남학생은 여덟 명이었다. 그런데 생활지도부장이 가해 학생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 신원이 유출됐다. “가해 관련 학생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생활지도부장으로부터 신고자의 이름을 들었다’는 취지로 (피해 학생들에게) 말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생활지도부장 및 학교 답변으로 보아도 사안을 조사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사이에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음.” 위는 사건이 벌어진 2023년 말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학교장에게 시정을 권고한 문서에 적혀 있는 문구다.

지혜복 교사는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처리 대응 매뉴얼(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3부 복사했다. 2019년 2월 처음 만들어진 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은 학교 선배 학생들이 ‘스쿨 미투’를 통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지 교사는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친 다음 교장과 교감, 생활지도부장에게 각각 한 부씩 전달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생활지도부장은 피해 학생들을 공개된 장소인 교무실로 불러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위협적인 분위기’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남학생들은 피해 여학생의 책상을 발로 차고 의자를 밀어 쓰러뜨렸다. SNS에 저격 글을 남기는 건 기본이었고 칼을 가지고 다니며 누가 진술했냐고 협박하는 남학생도 있었다. 결국 2차 가해를 견디지 못한 한 피해 학생은 ‘내가 쓴 피해 사실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가해 학생이 여덟 명에서 세 명으로 줄었다.

‘명랑운동회’로 가해자와 피해자 화합?

학내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뒤 다른 학교로 발령 난 지혜복 교사. ⓒ시사IN 박미소

애초에 피해 학생들이 원한 건 처벌이 아니라 사과였다. 지혜복 교사는 반마다 들어가서 피해 학생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2차 가해가 왜 더 큰 상처를 주는지 간곡하게 설명했다. 일평생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쳐온 선생님의 의무이기도 했다. 지 교사는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긴급대책 수립도 건의했으나 학교의 대응은 달랐다. 지난 4월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에서는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신 남학생들에게 여학생들과 말을 섞지 말라며 여학생들이 유난히 예민한 양 인식하도록 했다. 학교에서 선택한 해결 방법은 명랑운동회를 열어서 아이들이 화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올해도 성희롱적인 발언은 빈번히 재발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해당 학교 관계자는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권고한 사항은 모두 이행했고, 현재 피해 학생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결과는 솜방망이였다. 세 명 중 가해 수준이 가장 심한 학생이 서면 사과에 교내 봉사 5일 처분을 받았다. 가해 학생은 그마저도 사과문을 여러 장 복사한 뒤 이름만 바꿔 적었다. “아··· 정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교육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지혜복 교사는 두 달 동안 교장실, 교감실,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을 쫓아다니며 ‘최소한 대면 사과라도 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학교는 지혜복 교사를 다른 학교로 보내는 전보 조치 결정을 내렸다. 학교 측은 2024학년도 교사 정원 감축으로 한 명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상적인 전보 절차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해당 중학교에는 역사과 교사가 3명, 사회과 교사가 2명이었다. 게다가 지 교사는 정년까지 2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의 2024학년도 ‘중등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인사관리원칙’ 제7조 2항에 따라 본인이 희망하면 마지막 학교에서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은 전보를 강행했다.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해당 인사관리 원칙은 전보를 유예할 수 있다는 거지 유예해야만 한다는 조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4일, 지혜복 교사는 발령받은 학교로 출근을 거부하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시작했다. 출근 거부로 징계를 받게 되면 명예퇴직은 물론 평생 쌓아온 퇴직금과 연금까지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도저히 새 학교로 출근할 수 없었다. “돌아가겠다는 게 아니라 돌아가야만 해요. 학생들이 선생님께 부당한 일을 신고했는데 오히려 그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걸 보면 마음이 어떻겠어요. 학교로 돌아가서 그 결과를 바로잡아야만 ‘선생님이 나 때문에 쫓겨났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은 결국 바로잡히는구나’라는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어린 친구들한테 평생 갈 멍에를 어떻게 지웁니까.” 9월27일, 서울시교육청은 지혜복 교사에게 징계위 결과를 통보했다. 해임이었다.

지난 7개월 동안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던 지혜복 교사는 한여름 땡볕을 받으며 2018년 스쿨 미투를 자주 생각했다. 학교 창문에 ‘YES WE CAN!’ ‘ME TOO’ 포스트잇을 붙여 세상에 문제를 알린 용화여고 학생들과 함께 싸우다 결국 교단을 떠난 지인도 떠올랐다. “스쿨 미투 이후 교내 성폭력이 사라져서 조용한 게 아니에요. 그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낸 선생님들이 이후에 고통받는 모습을 학생이고 직원이고 모두가 지켜봤거든요. 이제는 거의 그런 분위기예요. 다들 무기력을 학습했어요.”

2018년 11월3일 서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학생의 날 스쿨 미투 집회가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용화여고 스쿨 미투 당시 ‘노원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최경숙씨는 가장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학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대책 TF를 꾸리는 데 학교는 참여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학교가 변하는지 안 변하는지 알 수가 없죠. 몇몇 선생님을 통해 알음알음 분위기를 전해 들어보면 ‘스쿨 미투’의 ㅅ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관계자는 ‘제발 학교 이름 좀 기사에 안 나오게 해달라’고만 하고요. 잊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잊혔죠. 오는 9월30일이 용화여고 스쿨 미투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되는 날인데, 100여 곳에 달하는 다른 학교 스쿨 미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관심 없잖아요.” 교육부는 스쿨 미투로 만들어진 성폭력 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쓰이는지 감독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스쿨 미투 이후 신설된 성인권 시민조사관 제도 역시 유명무실해졌다. “제가 시민조사관으로 위촉받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어요.” 최경숙씨의 말이다.

2022년 12월 학생 만족도 조사(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 적힌 성희롱 문구를 공론화했던 교사 가넷(가명)도 교직을 그만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사건을 공론화했던 건 교원평가를 통해 성희롱을 당한 자기 자신보다도 가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데 같은 학생들한테는 더 심할 거 아니에요? 어떤 문제가 나아지려면 적어도 그 세대에서 끝나야 해요. 학교 안에서 문제가 반복된다는 건 그게 대물림된다는 의미거든요. 그건 ‘전통’이 돼요.”

학교 내 성폭력 발생 구조만큼이나 심각한 게 대응 메커니즘이다. “피해 학생 학부모는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서 힘들어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든요. 가해 학생 학부모는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어요. 민원을 받은 학교는 피해 학생이나 교직원을 ‘단도리’하는 방식으로 빨리 해결하려 하고요. 이때 교육청에서라도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감사, 전보, 징계 같은 절차로 찍어눌러요.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기보다 민원을 두려워하는 행정기관이죠. 저도 그만두지 않았다면 불이익을 받았을 거예요. 실제로 세종시교육청 감사실에서 협박 아닌 협박을 듣고 사표 쓰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2019년 2월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 스쿨 미투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시사IN 신선영

학생은 자력구제, 학부모는 전정긍긍

가넷은 최근 학교에서 터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도 전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교직에 있을 당시 2020년에도 학교에서 일어난 딥페이크 성범죄 사례를 들은 적 있었다. “피해 학생을 만나서 물어봤어요. ‘해결은 됐어?’ 했더니 힘없이 웃더라고요. ‘선생님, 그건 해결이랄 게 없어요. 그냥 계속 퍼지는 거예요’라면서. 벌써 4년 전 이야기이니 이제 딥페이크 성범죄도 ‘전통 놀이’가 된 거죠.”

9월9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초·중·고교 내 딥페이크 성범죄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월부터 9월6일까지 피해 건수는 434건, 이 중 수사 의뢰된 사건은 350건이다. 피해자는 617명(학생 588명, 교사 27명, 직원 2명)에 달했다. 8월27일 경찰청에서 발표한 딥페이크 성범죄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7월 전체 피의자 178명 중 10대 피의자는 131명으로, 그 비율이 73.6%나 된다. 신고되고 드러난 사건만 이 정도다.

교육부는 실태조사를 하는 한편 ‘학교 딥페이크 대응 긴급 TF’를 운영해 피해 학생과 교원에게 심리 지원을 하고 인식 개선을 해나가기로 했다. 경찰청 역시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단속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들이 체감하기에 사건 이후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가정통신문 발송 빈도가 늘어났다는 것뿐이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아이가 먼저 불안하다고 이야기를 꺼내서 비로소 사태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느 학교가 털렸대, 로그인이 안 되는 게 해킹의 증상이래, 이렇게 해야 내 사진이 딥페이크에 도용되는 걸 막을 수 있대’ 하면서 엑스(X)에 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저는 하나도 모르는 내용인 거예요. 어른과 제도는 너무 느려요. 겨우 사건을 파악하는 동안에 아이들끼리 스스로 구제할 방법을 찾고 있더라고요.”

9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및 총력 대응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권은숙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처벌을 넘어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만 한다고 없어지는 범죄가 아니잖아요.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에요. 아이들이 왜, 어디에서 성적인 농담을 배우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살펴서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해야 해요. 그런데 제가 사는 경기도만 해도 지난해에 학교에 있던 성교육 도서 2500여 권을 폐기했어요. 아이들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까 봐 불안한 부모들은 성교육을 하는 사기업에 가서 몇십만 원씩 내고 강연을 들어요.” 실제 남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는 한 사설 기관은 내년 4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태다. 소그룹 교육은 최소 50만원, 일대일 교육은 최대 90만원을 내야 하는 곳이다.

학생들이 자력구제를 하고 학부모는 전전긍긍하며 성교육 기관을 찾아가는 동안,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을까?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제7차 본회의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한덕수 총리는 “정부가 잘못했다는 답변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SNS의 발달이 비정상적으로 됐다”라고 말했다. 2021년 법무부에서 만든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전문위원회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일주일 만에 사실상 해체된 데에 대해서는 “참 유감”이라고만 짧게 답했다.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는 7개월째 공석이다.

가넷은 스쿨 미투, 세종시 교원평가 사건, 지혜복 교사 사건, 딥페이크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고 말한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요. 성폭력 문제는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고요. 아이들은 학교가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고 배운 각자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사회로 나올 거예요. 이미 우리 모두 뉴스를 통해 그 세대의 출현을 보고 있지 않나요?”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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