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스파이로 의심받은 이유?” 오토바이 타고 80일간의 세계 일주
마커스 안드레 마이어는 2행정 베스파 스쿠터로 세계 일주에 도전했다.
32년의 라이딩 경험을 가진 독일 켐프텐 출신의 마커스 안드레 마이어가 2행정 베스파 스쿠터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지난 2018년 6월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9월 17일 귀환한 그의 여정은 쥘 베른의 소설처럼 정확히 80일이 걸렸다.
200cc 미만 엔진의 스쿠터로는 매우 빠른 속도였다. 대서양과 태평양은 비행기로 건넜지만, 육로에서는 하루 평균 280마일(약 450km)을 달렸다. 24시간 중 16시간을 안장에서 보낸 셈이다.
전체 77일 동안 16,487마일(약 26,533km)을 달리며 18개국, 3개 대륙을 지났다. 290갤런(약 1100리터)의 연료, 12개의 타이어를 소비했고, 2번의 사고와 4번의 동물 공격을 겪었다. 매일 110파운드의 짐을 싣고 다녔으며, 약 26,000달러(약 3640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마드리드, 샌디에이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각각 다른 스쿠터 3대를 이용했다.
“가치 있는 여행이었나? 당연하다”라고 마이어는 외신 로드&트럭(Road & Track)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관광객처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중앙 유럽을 거쳐 바자즈 체탁 150을 타고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러시아의 황량한 산맥을 횡단했다. 발칸반도를 떠날 때의 폭풍우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강타한 태풍까지, 기상 조건도 까다로웠다.
코카서스산맥에서 시베리아까지는 부품 조달이나 유능한 베스파 정비사를 찾기 어려워 상당량의 예비 부품을 가져가야 했다.
동물 공격도 여정에서 큰 문제였다. “시베리아의 많은 마을과 몽골 국경에서는 70kg이 넘는 거대한 목양견들이 낯선 이방인과 2행정 베스파의 생소한 소리에 놀라 내 스쿠터를 물어뜯으려 했다”라고 마이어는 말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울란우데 근처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 떼의 수소가 나를 자신의 암소들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스쿠터를 들이받으려 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매우 무서운 순간이었다.”
유라시아 횡단 중에는 일정 차질도 잦았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는 카스피해를 건너는 페리를 기다리며 일주일을 허비했다. 터키에서는 실린더 파손으로 이스탄불과 트라브존에서 부품이 세관을 통과하기를 기다리며 6일을 잃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한국행 페리가 주 1회만 운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천공항에서는 잘못된 여권을 제시해 억류되기도 했다. “여권 두 개, 휴대폰 두 대, 카메라, 드론, 다섯 개의 SIM 카드, 여러 나라 화폐를 왜 소지했는지 심문을 받았다”라며 “제이슨 본의 허접한 버전으로 의심받은 것 같다”라고 마이어는 회상했다.
한국에서 하와이를 거쳐 샌디에이고로 날아간 그는 전년도에 900달러(약 126만 원)에 구입해 보관해둔 두 번째 스쿠터인 제뉴인 스텔라 150을 타고 미국을 횡단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해발 12,000피트의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지났다.
캔자스의 토네이도와 버지니아의 허리케인 등 기상 악화는 계속됐지만, 미 대륙을 무사히 건넜다. 버지니아 노퍽에서 뉴욕을 거쳐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스히폴에서 위트레흐트까지 30분 이동한 후, 여섯 대의 베스파와 스즈키 부품으로 조합한 마지막 스쿠터에 올랐다. 네덜란드에 남겨둔 오래된 헬멧을 제외하고 약 2,000달러(약 279만 원)가 들었다고 한다. 9월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서유럽을 남하하는 여정은 이전과 비교하면 평온했다.
“76일 차에 여행을 끝낼 수 있었지만, 쥘 베른의 소설처럼 스페인에서 와인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마무리하고 싶었다”라고 그는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처럼 낭만을 추구하는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호흡기 감염, 장 질환, 치핵 출혈, 타이어 펑크로 인한 쇄골 탈구 등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다음 스쿠터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
“다음은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그리고 호주까지 1.5~2년간의 모험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라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나는 한 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경험과 추억을 제외하고는.”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