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아니, JUST SINGLE! 어떤 신념 아닌 그냥 비혼 이야기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더 특별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부나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삶의 모양만큼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신념 아닌 그냥 비혼 이야기. 가장 동시대적인 비혼 인사이트.
JUST SINGLE!
이게 바로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가 걸핏하면 마주하는 무작스러운 현실이다. 나도 모르게 질문을 하는 쪽을 성 인지 감수성이 한참 모자라는 중년남성이라고 생각했나?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건 아재가 여성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또 남성이 남성, 여성이 남성에게 무시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 비혼주의자인지 묻는 건 차라리 낫다. 이성 혐오가 있냐고 안 물으면 다행이다. 그냥 결혼을 안 한 것뿐인데 내가 영영 결혼을 안 할 생각인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할 건지, 언제쯤 할 건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결정을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낱낱이 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을 했냐”는 질문에 ‘했다’고 하면 아이가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안 했다’고 하면 따라오는 질문이 결국 ‘비혼’이냐 ‘미혼’이냐로 이어진다. 언뜻 보아도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미혼이라고 하면 함부로 딱하게 보고, 비혼이라고 하면 개인주의자, 불우한 가정환경을 경험했거나 가부장제와 결혼제도에 맞서는 투사 또는 혹 이성 혐오자는 아닌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비혼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면 부지불식간에 사상 검증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비혼과 미혼을 분류해 사용하고 있다. 둘 다 ‘Unmarried’ 상태인 것 같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혼은 자발적 싱글, 미혼은 비자발적 싱글이라는 정서가 있다. 방송작가 출신의 작가 겸 크리에이터 곽민지 작가는 ‘미혼, 비혼을 혼용하는 게 아닌 비혼이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혼’은 ‘아닐 미(未)’를 쓴다. 아닐 미에는 ‘미숙’의 미와 마찬가지로 ‘아직~하지 못하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 미혼은 혼인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의 인생 주기에 결혼이라는 관문이 기본이 된다는 이념이 깔려 있게 된다. 따라서 아닐 비(非)를 쓰는 ‘비혼’이 일반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얘기다. 결혼을 ‘기본’으로 보는 오래된 전통과 관습에 대해 곽민지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 모두가 비혼으로 태어나잖아요? 비혼인이야말로 그냥 살던 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인 거죠. 결혼이라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행동을 해야 하고 인생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이라 생각해요. 결혼을 하는 사람이 더 특이한 선택을 하는 쪽이 맞지 않나요?
결혼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건 구태의연하고 구닥다리 같다. 미혼, 비혼인지를 물어 자발적 싱글, 비자발적 싱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건 또 다른 차별이다. 그러니 미혼 아닌, 결혼을 안 한 상태는 모두 ‘비혼’이라고 표현하는 게 우리 사회에 좀더 적합하고, 사려 깊게 스며들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려면 ‘비혼’이라는 단어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즘 비혼, 비혼주의자라면 ‘결코 결혼할 생각 없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사실 혼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려하거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뿐, 그걸 확언할 정도로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들은 일부다. 이번 특집 기사를 준비하며 대화를 나눈 많은 비혼인은 ‘비혼은 그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어떤 사회적 운동이나 문화적 주장이 아닌 그냥 내가 매일 맞이하고 보살펴야 하는 나의 일상. 지금의 20~30대들 중 일부는 ‘비혼주의’라 선언하고, 그게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면 ‘비혼 철회’까지 한다. 그런데 비혼이 그냥 라이프스타일이라면 이렇게 심각하고 비장할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구인지를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혼 아닌 모두를 ‘비혼인’으로 말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비혼을 ‘주의’하는 사람, ‘지향’하는 사람, 그저 비혼이 좋아서 유지하는 사람, 살다 보니 쭉 그렇게 살아온 사람,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 이혼하고 다시 혼자가 된 사람, 결혼을 하고 싶지만 아직 상대를 못 만난 사람,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동성애자 등등… 이 모든 사람을 카테고리화하거나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게 될 거다. 혐오나 차별이 될 수 있는 불필요한 질문도 줄어들 것이다. 사회는 좀더 성숙하고 사려 깊게 작동할 것이다. 결혼이 인생의 목표로 여겨지지 않게 되고, 사람들은 평생 한 사람과 깊은 애착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감정 관계를 맺게 될 거다. 커뮤니티가 생기고, 필요한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될 거다. 물론 비혼인이라는 말이 일반화되는 것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네이버에 ‘Unmarried’를 검색했을 때 ‘미혼의’라고 번역된다는 사실은 이런 고민과 희망들을 단숨에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더욱 유감 아니 경악스러운 건 ‘Unmarried Adult’를 입력했을 때다. ‘가임연령 미혼남녀.’ 가임… 연령… 미혼… 남녀… 지금 내가 무슨 고대의 흑주술을 깨운 건가 싶을 정도로 섬뜩한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다행히 Unmarried 아래, ‘Having no husband or wife’라는 단어 풀이가 약간의 위안이 된다. “그래, 이거지.” 왜 혼자냐니, 계속 혼자 살 거냐니, 비혼이냐니, 미혼이냐니. 그런 오지랖들에 일일이 답하기엔 우리의 삶과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혼자, 그냥 비혼, 그냥 싱글이다. <싱글즈> 12월호의 특집에는 비혼에 대한 인식, 그리고 비혼인을 위한 것, 비혼인에게 필요한 인사이트를 담았다. 어떠한 정치적 올바름이나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비혼인을 위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