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서산 간척지 '정주영 기념관'을 추진하는 까닭은?
'정주영 공법' AB지구 간척 공사 마무리, 대규모 농장 조성
1998년 서산농장 소 이끌고 방북, 남북 교류협력 단초 제공
정 회장의 '도전, 창의, 희망' DNA 잘 남아 있어


서산 간월호 간척지에 '평화박물관' 또는 '정주영 기념관'이 건립될 수 있을까?
최근 서산시가 서산 AB지구로 널리 알려진 간월호 일원에 정주영 정신을 살린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곳에 기념관과 복합문화시설과 여가레저 공간 등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현대 쪽에 참여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정주영(1915~2001년)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잘 아는 거목이다. 삼성의 이병철과 더불어 일제말에서 6.25를 거쳐 산업화에 이르는 고난과 격동의 시기 수많은 기업을 창업, 성공시킴으로써 한국경제의 초석을 놓았다. 논자에 따라서 이런저런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정주영 이병철 두 거물이 한국경제사에 굵은 글씨를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서산에 정주영기념관 또는 평화기념관 건립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2개의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하나가 '서산 AB지구 간척'이고 다른 하나는 '정주영 소떼 방북'이다.
이들 두 개의 사업(혹은 사건)은 기업가이자 인간인 정주영의 모습을 잘 투영하고 있다. 돈을 버는,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이 불도저 식으로 밀어붙여 성사를 시킨 것이다.
'서산 AB지구 간척'은 바다를 막아 대규모 농지를 조성한 사업이다. 1979년 바다를 매립하기 위한 면허를 받았고, 1985년 4월 물막이 공사를 마쳤으며, 이듬해 4월에 소금기가 가득한 뻘을 농지로 만드는 개답(開畓)을 시작하여 1995년에 준공했다. 15년 3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간척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쌀'이었다. 간척사업으로 논을 만들고 여기에 벼를 심어 식량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정부도 식량 증산이 시급했던 터라 민간기업의 대규모 간척사업을 적극 장려했다.
정주영 회장은 서산AB지구 간척을 위해 '열일'했다고 한다. 수시로 현장을 방문했으며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 했다. 틈만 있으면 제방을 막는 공사장을 찾아 확인하고 공사를 독려했다고 한다.
이때 정 회장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간척사업을 마무리했다.
제방 건설은 마지막 물막이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AB지구 간척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안면도에서 육지 쪽으로 양쪽에서 덤프트럭으로 돌과 흙을 실어 날라 둑을 쌓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양쪽에서 조성해온 둑을 연결하는 마지막 공사 구간이 문제였다. 물살이 너무 세 바위와 토사가 여러 차례 번번이 떠내려갔던 것이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심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수 많은 선박들이 침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때 정 회장이 내놓은 게 폐유조선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현대건설은 정 회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울산에 있던 폐유조선을 끌어다 물막이에 활용했다. 폐선으로 거센 물살을 막아 강한 흐름을 지연시킨 뒤 빠르게 바위와 토사를 쏟아부어 양쪽을 연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방식은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으로 세계토목사에 이름을 남겼다. 정 회장의 뚝심과 집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대역사(大役事)를 성공시킨 것이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서산시 부석면, 태안군 안면도에 이르는 7.7km의 둑을 완성함으로써 방대한 농지와 호수가 조성됐다. 이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면적이 모두 154.08㎢(A지구 96.26㎢, B지구 57.82㎢)이고 이중 101.32㎢(A지구 63.83㎢, B지구 37.49㎢)이 농지로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간월호와 부남호라는 커다란 담수호로 변했다. 농지의 규모는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1%이고, 쌀 생산량이 연간 5만4,000톤으로 50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완성한 서산AB지구는 1998년 소떼 방북 사건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정 회장은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차에 싣고 방북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본래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현재 북한) 출신의 실향민이었다. 그는 17살 때 아버지가 소를 팔아 갖고 있던 70원을 몰래 훔쳐 서울에 왔다고 한다.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아버지의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했던 것이다.
정 회장은 당시 북한을 방문하면서 "한 마리 소가 1,000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며 벅찬 감회를 밝혔다.
이때 정 회장이 북한으로 몰고 간 소가 AB지구 간척사업으로 조성한 서산농장에서 기른 소였다. 정 회장은 오래 전부터 북한에 소를 몰고 가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2년부터 서산농장에 소 150마리를 사서 주고 기르게 했다고 한다. 이들 소는 서산면 부석면 70여만평의 농장에 방목됐으며, 3,000여 마리로 불어났다.
정 회장은 당시 서산농장의 소를 차에 싣고 북한행 길에 올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부 당국자가 아닌 민간이 소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 언론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치열한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정 회장의 소떼 방북을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평했다. 당시 언론과 국민들은 이 소를 '통일소'라고 불렀다.
정 회장은 그해 10월 2차 방문 때 김정일위원장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와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남북공동석유시추사업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정 회장의 소떼 방북 이후 남북한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금강산 관광개발과 남북 정상회담, 개성공단 건립 등이 진행됐다. 민간 교류가 정부 차원의 협력까지 이어진 것이다.

서산AB지구는 이처럼 기업인 정주영 회장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좀 더 살펴보면 산업화시대 식량자급 노력,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 등이 배어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가출했던 소년이 수십개의 기업을 일궈 성공했고,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었다. 그 농장에서 소를 길러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갖다 줌으로써 빚을 갚았다. 좁게 보면 인간 정주영의 스토리이고 현대그룹의 역사이지만 산업화와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와도 맥이 달아있다. 기업인 정주영, 실향민 정주영의 삶이 바로 그런 시대를 관통했고 결과적으로 그런 과제를 풀어가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서산은 AB지구 외에도 정주영 회장 및 현대가와 인연이 많다. 주행시험로와 자동차부품 연구시설이 있고, 현대파워텍, 현대다이모스, 현대위아 등의 부품 회사와 기아차 생산라인도 있다. 현대오일뱅크 본사도 있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은 서산농장에 유독 애정이 많았다고 한다.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이곳을 찾아, 벼를 심고 소를 기르는데 관심을 쏟았다.
"서산농장은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농토를 만들어가며 고생하셨던 내 아버님 인생에 꼭 바치고 싶었던, 이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같은 곳이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인 남긴 말이다.
2001년 정 회장인 세상을 떠난지 20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역사적인 인물로 남은 것이다.
현대는 정 회장의 정신을 '도전, 창의, 희망' 세 가지로 요약한다. 현대가의 이러한 DNA가 잘 남아있는 곳이 서산AB지구와 서산농장이다.
정 회장의 정신이 서산농장과 바닷가에서 머물며 대한민국 경제가 더 발전하고 민족사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는데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 현대가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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