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인생③] "나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6년간 톱스타 김지미와 결혼생활
이건희 회장이 불러도 거절한 '자존심'
"별은 별이어야...아무데나 보여선 안돼"

톱배우 김지미와의 '사랑과 이별'

나훈아는 가수로서는 큰 굴곡 없이 탄탄대로 걸었지만 가정사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사실혼을 포함해 총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결별을 했다. 1973년 공군에 입대하기 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동생 이모 씨와 결혼했다가 3년 만에 이혼했다.

이 씨와 이혼한 나훈아는 1976년에 당대 최고 여배우였던 11살 연상의 김지미와 결혼을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김지미는 세 번째, 나훈아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다. 결혼 후 김지미는 나훈아에게 예절·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나훈아는 서예에 매우 능하다.

결혼을 발표하는 나훈아와 김지미(오른쪽)

두 사람은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5년간 ‘초원’이란 식당을 운영하며 나름 알콩달콩한 생활을 이어갔지만 1982년 끝내 파경을 맞았다. 김지미는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면서 살고 싶어했지만,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결별하면서 나훈아는 김지미에게 전 재산을 주고 나왔다. ‘여자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혼한 여자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이긴 했지만, 설마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돈이 궁할까 봐 전 재산을 줬을까. 그는 훗날 김지미에 대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라 평했다.

“그 여인은 내 인생에 참 필요했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까지 평탄대로를 걸어오던 내가 덜커덩 그 일이 있고부터 이것저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또 모든 것이 힘들게 됐죠. 그런 걸 겪으면서 제가 어른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겁니다.”

한편 김지미는 주위에 '나훈아와의 혼인이 후회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화감독 홍성기와 배우 최무룡에 이어 나훈아, 심장전문의 이종구 박사까지 4명의 남자와 살다 헤어진 김지미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한 전력이 있다.

김지미와 최무룡이 결별하면서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은 지금도 연속극 대사처럼 자주 인용되곤 한다.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김지미의 ‘남성관’을 한 번 들어보자.

“남자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냐고? 그런 생각은 안 들지.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나보다 잘난 게 없었으니까. 나는 과감하고, 대담하고, 용기 있고, 옳다 믿으면 양보를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아들 결혼식 불참한 나훈아

나훈아는 김지미와 헤어진 다음해인 1983년, 14살 아래의 정수경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다시 가정을 꾸렸다. 정수경은 1976년 ‘여군 일등병’으로 데뷔한 후배 가수다. 나훈아는 정수경과 동거생활 중 1983년에 아들을 얻는다. 그 후 1985년에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3년 뒤인 1988년도에는 딸도 얻게 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훈아는 가정적으로 안정적인 정착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내 정수경이 1993년 아이들의 교육 목적으로 하와이로 거처를 옮기면서 나훈아의 ‘기러기 아빠’ 생활이 시작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나훈아가 5년간 연락을 끊고 2007년 아들의 결혼식까지 불참하자 정수경은 이혼을 결심하고 이혼소송을 낸다.

나훈아는 이혼을 끝까지 반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에 시작된 소송은 지루하게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마침내 이혼 판결이 났다. 법원은 나훈아의 유책을 인정해 정수경에게 위자료 1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두 사람은 33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지만, 그 중 9년간은 서로 남남처럼 떨어져 지내왔으니, 실제로는 24년간 부부관계가 유지된 셈이다.

이건희 회장이 불러도 안 가!

나훈아가 김지미와 이혼하고 가요계에 복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많은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나훈아는 서울 청량리 ‘맘모스 카바레’에서 한 달에 1억 원씩 받기로 하고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나훈아는 이 무렵부터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울긴 왜 울어’를 필두로 ‘잡초’, ‘무시로’, ‘건배’, ‘영영’, ‘사랑’, ‘평양아줌마’, ‘공’,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발표하는 곡들이 줄줄이 히트를 기록했다. ‘여자이니까’는 심수봉에게 줘서 히트했다. 인순이의 ‘잠깐’과 이자연의 ‘당신의 의미’도 나훈아가 만든 곡이다. ‘당신의 의미’는 원래 나훈아가 ‘내 당신’으로 발표했던 노래였다.

나훈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가수’가 됐다. 그의 공연은 매회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천하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러도 응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 책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이건희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과 클래식 연주자 또는 패션모델 등이 동원된다.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2~3곡 정도 부르고 3천만 원쯤 받아 간다. 이건희 집안 파티에 불렀을 때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가수 나훈아 씨다. 삼성 측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초청할 수는 없었다.”

나훈아는 대략 이런 입장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다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나훈아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괴소문에 휩싸였던 나훈아가 2008년 공식기자회견장에서 괴소문에 대한 진상을 위해 바지를 벗으려 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 여기서 딱 5분 보여드리면...”

이렇게 잘나가던 나훈아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2008년의 일이다. 일본 야쿠자와 여배우 K를 놓고 시비가 붙어 신체 일부가 훼손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 너무 돌자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그는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연다.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나훈아는 “제가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바지를 내려서 증명하려 하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나훈아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단상 위에 올라가자 당연히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며 셔터들이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훈아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증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여기서 딱 5분간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며 원한다면 아예 바지를 벗어 증명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 나훈아는 기자들 중 남자기자들 몇 명을 뽑으면 대기실에 가서 직접 ‘신체 중요부위 절단설’을 반박할만한 ‘물증’을 제시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초강수였다. 나훈아의 이 퍼포먼스 덕에 여배우 K나 '고자 스캔들'은 한 방에 묻혀 버렸다.

유튜브 동영상= 나훈아의 테스형

젊은 세대까지 사로 잡은 ‘테스형!’

이제 남진과 나훈아를 라이벌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두 사람이 벌인 ‘진검승부’의 승자는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라이벌이긴 했지만 두 사람의 전성기 ‘양대 산맥’ 체제 때는 남진이 더 잘 나갔다. 1970년대 초반 방송사 가수왕은 내내 남진 차지였고 나훈아는 항상 2등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공연과 콘서트 시장에서는 나훈아가 남진을 압도한다. 나훈아 공연은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나훈아 콘서트는 BTS(방탄소년단),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급으로 티켓 예매하기가 어렵다. 부모님 선물을 위해 아들과 딸이 전부 나서서 예매를 시도해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남진이 대중들과 가까이 하면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고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 지역축제 무대 등 노출을 많이 하면서 이미지를 빨리 소모한 반면, 나훈아는 철저하게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

자신이 기획한 라이브 무대에만 서는 나훈아는 탄탄한 노래 실력과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스타들 중에서도 가장 ‘비싼 가수’로 군림했다. 지난 2020년엔 '테스형!'을 불러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나훈아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나훈아는 이렇게 말했다.

“별(스타)은 별이어야 합니다. 별은 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안 보여야 합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별은 하늘에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합니다. 빛나려면 항상 닦아야 합니다.

내가 저 동네 아저씨 같다면 사람들이 돈 주고 시간 버려 가면서 왜 보러 옵니까. 공짜표 줘도 안 올 겁니다. TV에도 잘 안 보이고, 보려고 해도 방법이 없고, 보고는 싶은데, 이럴 때 사람들이 보러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