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의 美서 고민하는 정치와 세계]
김정은, 북-러동맹후 대외 협상력 커져
트럼프, 초기 2년내 협상 기회 노릴 듯
남한 리더십 공백...'통미봉남' 지켜볼 뿐
남-북 적대관계 해소 통해 비핵화 이뤄야
①에 이어
② 북한과 남한의 대응 예측
자신감 생긴 김정은
북한의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2019년 하노이에서 굴욕을 당한 이후 트럼프와의 개인적인 관계와 국가관의 관계를 구분짓기 시작했고, 중재자 역할을 했던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핵과 미사일 능력을 더욱 고도화했고,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평화통일 목표를 헌법에서 삭제했다. 동시에 북러 관계를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러우 전쟁에 파병까지 해 국제사회의 행위자로서 자신의 위치와 협상력을 향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다소 유리한 상황이기에 트럼프에게 구미에 맞는 조건으로 협상 제의가 온다면,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협상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시기 진행된 남북회담의 성과들은 삭제하고 남한을 강하게 비판해 왔으나, 북미 협상의 성과는 부정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정부 시기 북미 협상 제의에 침묵한 것과 대조적으로, 최근 트럼프 2기의 북미 협상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나마 북이 언급을 하기 시작한 것은 관심이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하노이 협상이 결국 실패했던 한계에도, 정상회담까지 할 만큼 북에 관심을 보인 것은 트럼프였고, 트럼프 집권 2기 중간 선거에 공화당이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의회 상하원과 행정부를 공화당이 장악한 초반 2년의 협상기회를 북한이 무시하기도 쉽지는 않다.
정치적 효과 큰 트럼프와의 회담
김정은으로서는 일단 트럼프와 1대1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또한 냉전기에 북한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냈는데, 현재 강화된 북러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 낸다면 중국도 북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과거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북중 정상회담은 무려 7년간 한번도 열리지 않았는데,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으로 북중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8년 남북관계가 급격히 개선되고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잡혀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이 커지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곧바로 김정은을 만나 냉랭했던 북중 관계를 회복한 바 있다.
현재 러시아는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셈인데,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고, 그것이 북중 관계를 냉랭하게 만든다는 설이 있다. 만약 트럼프가 북을 핵국가로 인정한다면 중국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데, 만일 북한이 북러 동맹을 유지한 채 북미 관계, 북중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 김정은으로서는 상당한 외교적인 성취가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남한 정부의 대응과 전략
문재인 정부가 미중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도 국익을 최대화 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조심스러운 '헤징 전략'을 추진했다고 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한미일 3자 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올인함으로써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세력균형 전략'에 가깝다고 하겠다. 윤 정부는 미중 갈등은 불가피하며 한국은 미국 편에 확고히 서야 한다는 ‘진영외교’, 그리고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미일과 연대해 권위주의 독재정부인 북중러를 견제해야 한다는 ‘가치외교’를 신봉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백악관에 다시 돌아오는 트럼프는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중시하는 '거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윤 정부는 외교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나아가 윤 정부가 북미 협상의 방해자로 나서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의 보수 정부는 미국의 보수 정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무엇보다 윤석열은 12월 3일 충격적으로 불법 계엄령을 시도하고 국회에서 탄핵으로 직무정지가 되었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면서 당분간은 남한 정부의 외교에 공백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트럼프가 김정은과 직통으로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북미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개선된다면, 미국의 남한 패싱, 북한의 통미봉남 (通美封南) 가능성도 높다.
결국 빨리 남한의 민주적인 리더십이 회복되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남한의 목소리를 내고 협상에서 소외되지 않는 길이 아닐까 한다.
미국 내에서 교민들을 중심으로 정부와 의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주민주참여포럼 케이팩(KAPAC)은 브래드 셔먼 등 미국의 지한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 법안을 발의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 53명의 의원들에게서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에는 49명의 민주당 의원과 더불어 4명의 공화당 의원도 참여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가 북미 협상을 시작한다면 공화당 의원들의 참여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으며,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앤디 킴을 중심으로 상원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트럼프-김정은 간에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고 해서 난제 중의 난제인 북미관계 정상화, 종전선언과 평화조약,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등의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북미 양자 협상을 통한 클린턴 정부의 제네바 합의, 페리 프로세스, 그리고 북미공동 코뮤니케가 있었고, 다자 대화를 통한 부시 정부의 6자회담, 정상회담 중심 탑다운 방식의 트럼프의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 등이 있었다.
그런 다양한 노력에도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북미간에 뿌리 깊은 불신과 협상국의 국내정치적 변화로 인해 협상이 중단되거나, 일방적으로 상대의 행동과 양보를 요구하며 협상이 더 진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의 경우에도 CVID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강경파가 협상을 좌초시키고, 또한 장기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기적인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에 끌려가는 문제도 있었다. 또한 모든 것을 거래관계와 미국의 이익으로 보며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운 면이 있는 트럼프가 이러한 난제를 인내심과 신중하고 장기적인 노력으로 해결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소망하는 이들이라면, 한계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한국정부나 미국내 한인들이 북미 협상을 촉구하고자 한다면, 위에서 언급 했듯 북미 관계 개선이 미국의 이익과 전략에 부합한다는 설명, 그리고 과거와 같은 CVID에 기반한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목표에서 시작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방식, 즉 상호적이고 단계적으로 관계 개선과 비핵화 과정을 이어가는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비핵화는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를 통한 적대관계의 종식과 맞물려서 이해해야 할 문제이기에 관계 개선을 통해 핵무기 개발의 원인을 제거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유도하고 지원해서, 북이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는 동기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이인엽은 서울대 국제대학원과 미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조지아 대학에서 클린턴 정부와 부시 정부 시기 미국의 대북 정책을 주제로 국제정치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테네시텍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연구 분야는, 북핵문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미국 외교정책이고, 저서로는 "Politics in North and South Korea",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바라보는 다섯 가지 시선"등이 있다. 미국에서 거주하며 미국과 한국의 정치, 미국 외교 정책과 한반도 문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