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스쿨미투 터져나온 그 학교... '사건'은 또 일어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조아영 기자, 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5년이 흘렀다.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에서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가 터져나온 2018년 3월. 그날 이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해교사 1명은 형사 처벌을 받았다. 약 4년에 걸쳐 진행된 학생들과 시민사회 투쟁의 결실이다.
하지만 기나긴 소송 과정에도 용화여고는 성폭력에서 벗어난 학교가 되진 못했다. 2020년과 2022년 용화여고에서 교사에 의한 학교 내 성폭력 2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먼저 용화여고 스쿨미투 이후 5년의 시간을 되돌려본다.
● [2018년 3월] 용화여고 '스쿨미투' 발생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모인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이하 용화여고위원회)가 SNS를 통해 용화여고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교사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175건이 제보됐다. 2018년 4월 용화여고 위원회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립학교 내 권력형 성폭력을 전수조사하고 처벌을 강화하라"는 글을 올렸다.
재학생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교실 창문 가득 메모지를 붙여, "#ME TOO", "#WITH YOU", "WE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용화여고 측에 가해교사 18명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파면·해임 각 1명, 면직 1명, 정직 2명, 정직․경고 1명, 견책 4명, 경고 8명 등이다. 가해교사 18명 중 3명만이 학교를 떠났다.
● [2018년 12월] 검찰, 파면된 가해교사 '불기소'
서울북부지검은 가해교사 A 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A 씨는 중징계인 파면을 당한 바 있다.
2019년 1월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과 69개 시민단체 회원 30여 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책임자 처벌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북부지검은 고소인들이 재진술을 충분히 하지 않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고소인들은 이미 경찰 조사에서 힘겨운 진술을 했기에 재진술하는 게 버거웠다. 검찰은 이를 잘 알면서도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시민모임 기자회견문 일부 2019. 1. 30.)
가해교사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싸움은 이어졌다. 2020년 2월 시민모임은 서울북부지검에 재수사 촉구 진정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추가 보완수사를 시작했다. 시민모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0년 5월 159개 단체와 8244명의 개인에게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또, 서울북부지검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 [2020년 5월] 검찰, 추가 수사 이후 가해교사 '불구속 기소'
서울북부지검은 추가 수사를 벌인 끝에 가해교사 A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제추행 혐의. A 씨는 ▲치마 속에 손을 넣어 허벅지를 움켜잡거나 ▲손등으로 특정 신체 부위를 툭 치거나 ▲교복 재킷을 벌려 얼굴을 가슴까지 들이미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 5명을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2020년 6월 첫 번째 공판기일. A 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피해자와 목격자의 여러 진술 증거도 동의하지 않았다. 2020년 8월 용화여고 졸업생, 재학생이 구성한 단체 '용화여고위드유(WITH YOU)'는 가해교사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졸업생과 재학생 230명이 탄원서를 작성했다.
"'너는 여자로서 매력이 떨어진다', '수학여행에 가면 섹시백이나 춰라', '투명 수영장을 만들어서 밑에서 너희가 수영복 입은 걸 보고 싶다' 이런 말들이 수업시간에 나오면 저희는 모르는 척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야 그 선생의 눈에 들지 않고 무사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면 괜찮을 테니까, 3년은 곧 지나갈 테니까."(용화여고 졸업생·재학생 탄원서 일부)
● [2021년 2월] 가해교사 '법정구속'… 징역 1년 6개월
가해교사 A 씨가 1심에서 법정구속 됐다. 재판부는 A 씨가 5명의 학생을 여러 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각 5년 취업 제한 등을 선고했다.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한 것에 비해, 그동안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해 부족한 형량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A 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재판부는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리고 2021년 9월 마침내 약 3년간의 법정 공방이 마무리됐다. 가해교사 A 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이 확정됐다.
"오늘, 이 선고로 인해 우리는 이제야 '아직도 안 끝났냐'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오늘로 인해, 우리는 이제 맘 편히 웃으며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 가는 이 당연한 사실이 앞으로는 좀 더 수월히 계속되기를.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 피해자가 아니라 재판부와 가해자가 되기를. 이제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맘 편히 망각해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대한민국 재판부와 가해자들은 오늘을 기억하라."(용화여고위원회 기자회견문 일부 2021. 9. 30.)
● [2021년 10월] 가해교사, 파면 취소 행정소송 기각
2018년 용화여고는 가해교사 A 씨의 범행이 알려지자 그를 파면 조치했다. 하지만 징계사유서에 구체적인 혐의가 기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은 한 차례 취소됐다. 학교 측은 재차 파면 결정했다.
A 씨는 파면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에 취소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A 씨는 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파면 유지' 판결을 내렸다.
201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용화여고 스쿨미투. 고작 1명이지만, 가해교사는 형사 처벌받았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고 가해교사를 감옥으로 보내기까지, 학생과 시민들의 기나긴 '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은 또 일어났다. 2020년과 2022년 용화여고에서만 두 차례. 2020년 사건의 가해교사는 2018년 스쿨미투 당시에도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였다. 그리고 2022년에는 더 "무거운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에 스쿨미투가 있었던 고등학교가 있어요, 서울에. 가해자로 10명 넘는 교사가 지목됐는데 극히 일부만 교단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또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2번이나 재발했습니다. 심지어 1건은 교사가 면직 처분을 받아야 될 만큼 아주 무거운 사건이었어요." (민형배 무소속 의원, 2022. 10. 21.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가해교사들 대부분이 학교로 돌아갔다는 점도 문제였다. 2018~2022년 용화여고 성희롱·성폭력 가해교사 20명 중 13명이 교단에 남아 있다. 징계 수준은 파면․해임 각 1명, 면직 2명, 정직 3명, 정직·경고 1명, 견책 4명, 경고 8명 등이다. 이 중 경고는 교원 징계에 포함되지 않는 가벼운 처분이다.
용화여고 사례가 보여주듯 수많은 학생이 용기 내 고발하고, 가해자 처벌까지 이뤄졌지만,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은 또다시 발생했다. 이는 교육 당국이 어느 학교에서 사건이 일어났는지, 징계 수준은 어떤지 사후조치 정보를 감추고 있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약 4년에 걸쳐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진행한 행정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들이 받아낸 '2018~2021년 17개 시도교육청 스쿨미투 처리 현황' 문서에서도 정확한 처리 현황을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하나의 양식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일부 교육청은 그조차 지키지 않았다. 가해교사의 '복직일'과 '퇴직일'을 구분하지 않고 알 수 없는 날짜만 적어내는가 하면, '피해자-가해자 분리 여부', '직위해제 여부', '감사 실시 여부', '퇴직 여부' 등에는 '정보 부존재'라는 답변을 줄줄이 내놨다. 경기, 경남, 대구, 대전, 전남, 충북 등 6개 교육청은 학교명을 비공개했다. (관련기사 : 「끝까지 추적해주마… 당신들이 꼭꼭 숨긴 '스쿨미투'」)
서울시교육청은 홈페이지에 2022년 스쿨미투 현황을 공시하고 있었다. 그나마 공개한 자료에는 학교명, 사건 발생 날짜, 퇴직 여부, 사법 절차 현황 등 중요한 정보는 빠져 있었다. 가해자가 학교로 돌아갔는지, 성폭력이 재발했는지, 공립인지 사립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학교 내 성폭력 처리 현황 공개의 필요성은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강조된 바 있다. 당시 서울 명지고 성폭력 피해학생의 부모가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명지고 가해교사 12명 중 3명만 학교장 주의 조치를 받고, 나머지는 징계나 수사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퇴직한 4명은 '정년퇴임' 했다.
"공개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여 잠잠하게 하더니 해당 학생(피해 학생 대부분 3학년)들이 졸업하니까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평상시처럼 되돌아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어요." (명지고 학부모 편지 일부, 2022. 10. 21.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공개)
민형배의원실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2 학교 성폭력 발생 현황' 분석 결과 자료에 따르면, 교육 당국은 가해교사가 학교에 복귀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학생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한 교사 255명 중 75명(29%)이 교단으로 돌아갔다. 거취를 알 수 없다는 뜻의 '정보부존재'는 81명이었다. 정서적 폭력을 저지른 교사 264명 중 56명(21%)이 여전히 학교에 재직하고 있고, 이 역시 '정보부존재'는 162명(61%)에 달했다.
교육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가해자도 있었다. 바로 기간제 교사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가 직접 채용하는 계약직 교원. 기간제 교사가 성폭력 사안으로 면직 처분을 받아 계약해지됐다고 가정해보자. 교육기관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성범죄 이력 등 결격사유 조회를 거친다. 형사 처벌을 받은 지원자는 공식적인 기록이 확인된다.
반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교사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기간제 교사가 중도 계약해지 되는 경우 사유를 교육청에 보고하지만, 기간제 교사가 새로 지원하는 학교에 계약해지 사유를 전달하진 않는다. 이를테면 언어적 성희롱 등으로 면직 처분을 받고 계약해지 된 교사가 있다 해도, 채용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지원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렵다.
5년 전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온 스쿨미투. 하지만 가해교사 한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데도 학생과 시민들의 기나긴 싸움이 필요했다. 또 그들에 대한 사후처분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청에도 교육 당국은 소송으로 시간을 끌며 버티고 숨겼다.
사건은 숨기고 징계는 봐주는 동안,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그 사이 가해교사들은 조용히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은, 또다시, 일어났다. 결국 어제의 가해자를 벌하지 못해서, 내일의 피해자를 막지도 못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민형배 의원의 탄식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도대체 학교에서 어떻게 성폭력이 발생했고 처리 현황이 어떤 거냐 제출하라고 그랬더니 제대로 안 줘요. (…) 이렇게 은폐를 계속하니까 (사건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 기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베이비뉴스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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