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다 미용하는 거죠‥이게 이게 나라 망하는 겁니다"

정승혜 luxmundi@mbc.co.kr 2024. 10. 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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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8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산병원에는 ‘개두술,’ 머리뼈를 열고 뇌수술을 할 수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없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산병원이지만 뇌혈관외과 교수는 단 2명, 한 명은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다른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간호사는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 왜 아산병원은 ‘개두술’ 의사가 2명 뿐이었을까?..“수술 할수록 적자”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의 아산병원에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2명 뿐이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산병원이니까, 그나마 뇌혈관외과 의사가 2명 있었던 거였다’는 것이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설명입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에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고, 그러다보니 밤에 뇌출혈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는 수술받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병원들은 왜 ‘개두술’ 의사를 여유 있게 고용하지 않을까?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뇌혈관 개두술은 돈이 안 되는 걸 넘어서 수술하면 할수록 병원이 적자를 내는데 왜 더 뽑겠어요?

4시간 정도 걸리는 최상위 난이도의 뇌동맥류 수술 수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250만 원입니다. ‘아산병원 사건’ 이후 220만 원에서 30만 원 올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뇌혈관수술 수가는 일본의 2/7 수준입니다.

국내 다른 분야 수술과 비교해도 아주 낮은 수준입니다. 미용/성형수술들과 비교해보세요..”

그래프 제공: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뇌혈관수술/시술 수가가 가슴 성형수술, 코 성형수술보다 낮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 교수의 말을 듣다보니 최근 문을 연 동네 피부과의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오픈기념할인이라는 무슨 레이저 패키지가 300만원이 넘었던 것 같은데, 최상위 난이도의 뇌동맥류 수술 가격이 피부 레이저 가격도 안되는 구나...

정부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의대 증원의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의대생을 더 뽑는다고 병원들이 ‘개두술’ 신경외과 의사를 더 고용하게 될까? 정부와 의료계의 주장이 갈리는 대목입니다.
그래프 제공: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 신경외과 안에서도 ‘뇌’보다 ‘척추’ 지원..“1년 365일 백 콜(back call)”

신경외과 전문의는 매년 90~100명씩 배출됐습니다. 그런데 현재 전국에 있는 신경외과 4년 차 전공의는 다 끌어모아도 12명, 내년에는 12명 안팎의 전문의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다 뇌혈관을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방재승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신경외과 안에서도 뇌와 척추가 3:7 정도..비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뇌를 안 하죠. 왜 척추를 선호하느냐? 야간 응급수술이 적어요.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병원에 불려올 일이 적고, 수술 결과가 안 좋다고 의료소송 당할 일도 상대적으로 적어요.

뇌 안에서도 개두술을 하는 외과가 아니라, ‘색전술’을 하는 뇌혈관내시술 전공을 더 선호하죠. 1년 365일 온콜 당직(on call duty)하는 ‘개두술’ 의사를 우리 세대가 가면 누가 하려고 할까요? 뭐라고 하면서 젊은 의사들에게 하라고 하죠?”

서울대병원(본원) 신경외과 하은진 교수의 말도 같았습니다.

“저는 작년까지 세븐데이 24시간 콜을 받았습니다. 신경외과 중환자실 전담 교수가 저밖에 없었거든요. 올해 2월에 한 분 오기 전까지는...

환자 상태가 좀 안정돼서 집에 갔다가도 다시 나빠지면 병원으로 불려오는 백 콜(back call)을 1년 365일 저 혼자 7년 동안 받았습니다. 삶의 질이 이러니까 몇 년간은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3년, 5년, 10년 시간이 지나면 삶이 좀 안정되고 나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바로 위의 선배, 교수들 사는 거 보면 미친 듯이 기계처럼 일해도 하나도 안 바뀌는 거 전공의들도 알거든요. ‘뇌혈관 하시는 교수님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척추하려고 합니다’...안 오게 되는 거죠.”


■ “다 미용하는 거죠..이게 이게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어느 분야 의사가 필요한가?

피부과 개업에 몰리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피부과는 없고 미용만 하는 것이 정상일까? 방재승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그건 진짜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건 아니거든요. 피부과 전문의가 피부 질환을 봐야지 왜 미용만 쳐다봅니까? 이건 바꿔야 됩니다.

단, 그러려면 피부과도 수가를 정상화 해줘야겠죠. 여드름 처방, 무좀 치료, 화상 치료, 흉터치료만 해도 병원 임대료를 내고 간호사 월급 줄 수 있어야 양심적으로 하지 않겠습니까? 적자만 보면 보험 피부질환 치료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용을..너도나도 다 미용만 하는 거죠. 이게 이게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 진짜..”

하은진 교수는 어느 분야의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하게 추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유지해야 되는 분야의 의사가 얼마나 필요하냐.. 1년에 그 질환이 얼마나 발생하고, 그 질환이 발생하는 지역의 특색이 있는지, 그 지역에 맞춰서 몇 명을 배치했어야 됐나, 그런 자료가 있습니까? 논의는 해봤습니까?

뇌혈관외과 수술 의사가 병원에 4~5명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있습니까?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부족하다고 하면 그냥 2000명 늘리면 된다? 그 분야로, 필요한 분야로 가냐고요, 병원들이 적자가 나도 그 분야 의사를 고용하고 계속 수술하라고 하냐고요...”


■ “필수의료는 끝...내년 3월에도 안 돌아오면 셧다운”

의료공백사태가 벌써 9개월째입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 2개 의사단체가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그 뒤 별다른 진전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실마리가 풀릴까?

방재승 교수의 말이 격해졌습니다.

“바뀐게 없습니다. 내년 3월까지 전공의들이 안 돌아오면 의료사태는 그냥 끝난 거 같습니다. 진짜 해법이 없는데, 기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자꾸 해법을 찾아야 된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내년에 전문의 안 나오고, 군의관/공중보건의 안 나오고.. 전문의가 안 나오니 전임의 지원자 당연히 없겠죠. 그러면 상급종합병원은 셧다운입니다. 교수들이 언제까지 퐁당퐁당 당직 설 수 있겠습니까? 3월까지 버텨보고 그 때도 안 돌아오면...해법이 어디 있습니까?”

온 대한민국이, 의사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9개월 동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뤘는데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의 말이 조금, 아주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해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래도...다시 힘을 내봐야겠죠.”

정승혜 기자(luxmundi@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650042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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