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반도체 기업은 아니다. 소부장 회사가 없었다면 K반도체 전성시대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부장 중견·중소기업은 행사장 뒷골목에서 인재를 구걸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기업 인력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부장 기업에 채용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이달 11~13일 열리는 '세미콘 코리아 2026'에서 만난 한 반도체장비 업체 채용 담당자의 말이다. 삼성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와 SK하이닉스 부사장 등이 강연자로 나선 키노트 섹션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전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소재·부품·장비 기업 부스는 한산했다.
리딩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르네상스가 개화했지만 중견·중소 소부장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주처와 계약한 물량을 ‘울며 겨자먹기’로 취소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난 대한민국'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서는 중견·중소 소부장 기업이 인력부족을 겪고 있다.
제품 홍보보다 급한 인재 확보
세미콘 코리아에 부스를 마련한 많은 소부장 기업은 신제품이나 기존 장비를 알리는 대신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전시장 곳곳에 채용설명회나 상담회 진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가득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었다.
한 중소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전공자들 사이에 기승전 대기업 현상이 고착되면서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소부장 기업은 면접 대상자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라며 “세미콘에는 구직자가 많이 모이는 만큼 자사 제품이나 기술력을 알리는 것보다 회사를 홍보하고 인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고 언급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반도체 기업과 연계된 계약학과 6곳의 모집인원은 250명이었지만 551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22.1대1을 기록했다. 예년보다 모집 인원과 지원자가 모두 늘어난 상황으로, 이곳은 졸업 이후 안정적인 취업이 가능해 인기가 많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의 눈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에만 맞춰져 있다. 올해 세미콘에서 인력 찾기에 분주한 중견·중소기업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급여와 처우, 복지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 역부족, 추가 유인책 필요
전시회에서 만난 한 반도체학과 졸업예정자는 “반도체가 국가기간산업이고 중견·중소기업이 인력부족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대부분이 다 아는 얘기”라며 “소부장 기업의 기술력이 뛰어나고 경쟁력이 있다는 것도 수업시간에 들어 인지하고 있지만 연봉이나 커리어 등을 생각할 때 선뜻 중견·중소기업 부스로 발길이 향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소부장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문제다. 이직률이 너무 높아서다. 산업통상부의 반도체 인력 통계 자료에 따르면 소부장 기업 1~3년 차 엔지니어의 이직률은 대기업보다 2.5배나 많다.

실무역량을 갖춰 본격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황금 경력이 되면 더 높은 연봉과 처우가 보장되는 대기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정부가 소부장 기업 인력 활성화를 위해 급여보조금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연간 성과급이 수억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소부장 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느끼는 인재 갈증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허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며 “1등 기업만으로 생태계가 유지될 수는 없다. 우수 인재가 소부장 기업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기업은 물론 정부도 실질적인 유인 및 안정책을 강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은 예년처럼 부스를 마련하지 않고 전시회의 원활한 진행과 소부장 기업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스페셜스폰서’ 역할만 맡았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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