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선고’ 책 45만권 ‘구출 작전’…결국 27만권은 과자상자가 됐다
울산대 도서관 장서 폐기 추진…대출 실적 등 기준
인문대 교수들 반발…재선별 설득해 38%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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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한국 출판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판매 기록을 쓰고 있다. 이 현상이 작가 개인의 작품을 넘어 디지털에 밀려나는 종이책 전반의 시간까지 연장해줄진 알 수 없다. 스웨덴으로부터 ‘뉴스’가 날아들기 1년 전 종이책의 위태로운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이 남부의 한 도시에서 벌어졌다. ‘그곳’에 모인 책들의 서로 다른 운명과 책들을 살리려는 구성원들의 분투는 노벨상 특수도 지연시키지 못할 ‘다급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시적인 규모”
소문을 들은 교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 소문을 접한 교수가 “사색”이 돼 동료 교수들에게 달려갔다. 충격이 소문을 “당구공처럼” 쳐냈다. 공식 발표 전 소문으로 전해진 학교의 계획이 “공이 공을 때리듯” 교수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울산대학교(울산 남구 무거동)가 중앙도서관 장서를 폐기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6월 학내에 알려졌다. 폐기 자체는 충격이 아니었다. 전국의 대학들은 매년 일정량(도서관법 시행령 ‘소장 장서의 7% 이내’)의 책들을 폐기해왔고 울산대(보통 1~2만권)도 그랬다.
충격은 규모 때문이었다. 45만권이란 숫자가 언급됐다. 학교 전체 장서가 92만권이었다. “책의 절반을 버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교수들 입에선 “헉 하고 탄성이 먼저 나왔”다. “전대미문의 숫자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시적으로 들리기도 했”(안동섭 철학·상담학과 교수)다.
인문대 교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소문인지 정해진 방침인지부터 확인했다. 6월23일 심민수 학장(영문과) 등 교수 3명이 도서관장을 찾아갔다. “사실”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흘 뒤 학교 부총장과 기획처장을 면담했다. ‘총장 최종 결재는 안 났지만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 예산도 확보했다’는 말을 들었다. 명분은 ‘미래형 도서관’ 구축을 위한 “전면 리모델링”이었다. 디지털 열람실, 전시관, 노트북 존, 메이커 스페이스, 카페 등 “학생들의 학습·소통 공간”을 조성하려면 도서관(본관+신관) 본관 전체를 비워야 한다는 논리였다. “학생들의 편의 공간이 부족하고 종이책 이용률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구성원들의 논의 없이 추진되는 대규모 일괄 폐기엔 찬성하기 힘들었”(심민수)다. 학교는 도서관위원회(단과대별 부학장들로 구성)의 검토 절차를 거쳤다고 했으나 “리모델링을 위한 폐기 계획이 언급됐을 뿐 규모는 공유되지 않았”(김미진 부학장·일본어과)다. 6월27일 본부 교무회의에서 심민수 학장은 인문대 교수들을 대표해 ‘장서 폐기 반대’를 밝혔다.
6월29일 전체 학부(과)장 앞으로 도서관장 명의의 공문이 도착했다. 학교의 폐기 계획이 공표돼 있었다. 엑셀로 정리한 폐기 도서 목록과 선정 기준도 첨부했다. 세부 단위까지 공개된 수치는 45만1982권이었다. 2023년 4년제 대학 1개교 평균 폐기량 1만935권(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대학도서관 실태조사 결과 분석’)의 41.3배였다. “그간의 국내 장서 폐기 사례들에 비춰봐도 처음 듣는 규모”(서울 소재 대학 도서관 사서)였다. 공문은 2주 동안 목록을 검토한 뒤 ‘폐기 제외 희망 도서’를 학과당 500부 이내로 골라 제출하라고 했다. 8월 말까지 완료한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반대 입장 전달 이틀 만에 폐기 절차가 시작되자 인문대 교수들은 당황했다. 책의 생사를 가른 ‘기준’에 특히 반발했다.
폐기할 책을 뽑는 기준이 ‘대출 실적’이었다. 2010년까지 도서관에 등록된 동양서(국내서 포함) 중 그 뒤 대출이 없거나 2005년까지 등록된 서양서 중 그 뒤 아무도 빌려 본 적 없는 책들이 대상(도서관 관계자 “그동안 대출이 없다면 앞으로도 대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100%이므로 부족한 공간에 계속 비용을 들여 갖고 있기는 부담”)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국회도서관 등에서 컴퓨터로 조회 가능하거나, 구독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로 볼 수 있으면 목록에 넣었다. 이 기준들로 사회과학 10만3474권, 기술과학 9만35권, 문학 6만553권, 역사지리 3만8302권 등 분야별 폐기 도서가 추출됐다.
교수들은 “책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에 항의했다. “대출 횟수나 디지털 대체 여부 등 기능을 중심에 놓으면 이용률이 떨어지는 책들은 가치와 무관하게 소실된다”(노경희 국문과 교수)며 ‘폐기량 달성’을 위한 기준 설정이라고 봤다. ‘본관 서고를 완전히 비운다’는 목표가 장서 절반 정리란 단순 계산을 낳았다는 의심(도서관 쪽 “기준에 따라 선별한 결과 그 분량이 나온 것일 뿐”)이었다.
2차 충격은 목록의 ‘내용’에서 왔다. 교수들이 분석했을 때 ‘총류’(특정 영역에 넣기 어려운 책들) 분야 폐기 도서 3만8282권 중에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전에 출간된 “문화재급” 책 1500여권이 포함돼 있었다. 그 가운덴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잡지 ‘조선’(朝鮮) 50여권(1920~1940)도 있었다. 일제 식민지 정책과 당대 현실을 이해하는 중요 사료로 평가받았다.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서양의 고서들도 분야별 목록마다 발견됐다. 19세기 영국 언론인·작가 찰스 매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1841년 출간) 1852년 판본도 보였다. 인간의 비이성적 군중심리와 집단사고를 파고든 고전이었다. “그 귀한 책들이 그냥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박정희 국문과 교수)던 인문대 교수들은 다급해졌다. 역할을 나눠 ‘책 구출’에 나섰다.
무언 시위와 급선회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7월5일 노경희 교수가 울산대 전체 교수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학교의 짧은 공문만으론 파악되지 않는 폐기 도서의 ‘실상’과 추진 과정의 폐쇄성 등을 알리며 ‘사태’ 해결에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단과대별·전공별 온도차가 없진 않았다. ‘디지털 문서가 있는데 왜 굳이 종이책을 남겨야 하냐’는 질문은 학문의 성격과 맞닿았다. 인문학자들에게 오래된 책은 “연구에 없어선 안 될 기초 실험장비와도 같았”(안동섭)다. 책의 ‘물성’보다 정보가 중요한 자연대나 공대 쪽의 시각은 그만큼 절박하진 않았다. 인문대 안에서도 정서는 달랐다. 종이책이 학문의 핵심 재료인 문학이나 고전, 역사와 서지학 쪽과 달리 어학 쪽의 관심은 덜했다. 교수들은 인문대 일부의 요구에 그치지 않도록 학교 전체의 여론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반대 논거와 대안도 다듬었다. 폐기가 불가피할 경우 ‘학생 1인당 70권’(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 제6조) 수준(울산대의 경우 75만권)은 유지해야 하며 그조차 힘들면 본관 1개 층(25만권)이라도 서고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장은 정리된 입장문을 다른 단과대학 학장들에게 전달하고 본부 회의에도 제출해 설득했다. 도서관위원회에 참석한 부학장은 위원회가 ‘절차적 요식행위’로 활용된 데 유감을 표하고 인문대 교수들의 안을 “발신”했다. 인문대 학생회와 총학생회 등 학생들과의 소통도 시도(박정희)했다.
7월11일 오전 인문대 교수들이 모였다. 본부 간부회의에서 장서 폐기 문제가 거론된다는 소식을 듣고 회의장 앞에 섰다. 회의에 참석하는 총장과 간부들 앞에서 “무언 시위”를 벌였다. 회의 멤버가 아닌 학장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대규모 일괄 폐기의 부당함과 인문대의 대안을 설명했다.
이날이 ‘분기점’이었다.
인문대 학장과 도서관장의 의견을 모두 청취한 총장이 폐기 일정을 보류했다. 단과대별로 폐기 리스트를 재검토해 없애선 안 될 책들을 다시 추리라고 지시했다. “사태가 급선회”(심민수)했다. 무엇을 살리고 버릴지를 결정하는 일이 교수들에게 맡겨졌다.
일괄 폐기를 막은 ‘대가’로 격한 노동이 시작됐다. 울산대 교직원들은 그해 여름방학을 온통 책 목록과 씨름하며 보냈다. 단과대별로 각자의 전공 분야를 맡아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도서관 사서들도 새로 추려진 목록들을 다시 정리하느라 일이 몇배로 늘었다.
재선별을 이끌어낸 인문대 교수들은 목록 전체를 검토했다. 45만권 중 이공계 도서를 제외한 나머지를 5~6명의 교수들이 나눠 살폈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심민수)다. 압도적인 분량에 비해 시간과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목록에 정리된 제목과 서지정보만 보고 책의 생사를 판단할 수밖에 없어 버거웠”(김미진)다.
이 작업은 국내 대학의 현실을 정확하게 비췄다.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다방면의 전문성을 요구했다. 버려지는 책 더미 속에서 귀중한 책들을 가려내 보존하는 시스템이 미비한 한국에서 책의 운명은 개별 대학의 인문학 역량과 직결됐다. 대학마다 인문대가 축소되면서 종이책의 퇴출을 막아줄 목소리도 위축됐다. “책의 입장에서 인문대의 몰락은 자신을 지켜줄 부모를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노경희)였다.
문제는 다시 ‘기준’이었다.
책이 차지하는 학문별 위상에 따라 ‘구조 목록’도 달라졌다. 사전의 경우 ‘정보’가 우선인 쪽에선 최신판만 있어도 되지만 문헌학 연구자 입장에선 판본별로 남겨야 했다. 웹소설을 굳이 책으로 보존해야 하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설 전공자에겐 연구를 기다리는 자료들이었다. ‘대출 실적’으로 책을 살리고 죽이길 거부했을 때 “대신할 마땅한 기준을 정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노경희)다.
10권 중 4권 구조
“충돌할 땐 남긴다.”
논쟁 끝에 인문대 교수들이 붙잡은 접근법은 ‘구조가 기본값’이었다. 남겨야 할 책을 가려내는 방식이 아니라 남기지 않아도 될 책을 지우는 방법으로 폐기 분량을 줄였다. 남겨야 한다는 쪽과 폐기해도 된다는 의견이 부딪히는 책은 남겼다. 특정 책을 두고 단과대별 의견이 나뉠 때도 남기자는 쪽의 목소리를 따랐다. 이 원칙에 따라 인문대 교수들의 정한 기준은 한결 품이 넓었다.
① 1950년대 이전 도서는 가급적 남긴다. ② 1960년대 이후 국내 자료라도 필요해 보이면 남긴다. ③ 해외 자료의 경우 최근 자료도 구하기 힘들어 보이면 남긴다. ④ 동일한 본(복본)은 1권만 남기고 폐기한다. 인터넷 열람이 가능한 연속간행물, 공공기관의 정책보고서, 오래된 수험서와 어학·실용 기술 교재 등은 폐기한다.
결과적으로 비인문학 서적들도 인문대 덕을 봤다. 인문대의 목록이 가장 많은 책을 살렸기에 다른 단과대의 책들도 자체 선별 분량보다 더 많이 살아남았다.
8월 중순 인문대 부학장이 단과대별 목록을 취합했다. 8월25일 인문대는 전체 대학의 보존 희망 도서 목록을 정리해 학교에 제출했다. 최초 폐기 대상 책들의 57.5%에 해당하는 25만9917권의 이름이 호명됐다.
이 책들이 모두 회생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9월5일 목록을 검토한 학교 본부는 ‘25만권은 너무 많다’며 2차 선별을 요구했다. 대신 리모델링 뒤 본관 1층에 보존자료실을 마련해 15만권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15일 인문대 교수들은 ‘15만권은 너무 적다’며 불가 입장을 정한 뒤 추가 작업에 들어갔다. 울산대의 폐기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자료’가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약 한달 뒤인 10월13일 인문대는 2차 선정 도서 목록을 학교에 제출했다. 학교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17만5294권.
4개월의 ‘구조 노력’ 끝에 사망 선고를 받은 책들 중 38.8%의 목숨을 구해냈다. 이 목록을 토대로 학교는 최종 폐기 장서 27만6534권을 확정했다.
이 책들은 한차례 더 ‘최후의 선택’을 받았다. 학교가 폐기 전 무료 배부 절차를 밟았다. 5개 학부(과)가 먼저 2453권을 골라 갔다. 185권은 국립중앙도서관(폐기 소식을 듣고 목록 요청)으로 보내졌다. ‘필요한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며 지역 도서관들에 공문을 보냈으나 응답한 곳은 없었다. 올해 2월29일 학내 구성원들에게 ‘배부 안내’를 공지했다. 학부·대학원 학생들과 교직원 등이 6056권을 찾아갔다. 모두 8694권이 아슬아슬하게 폐기를 면했다. 지난 3월14일 무료 배부도 끝났다. 애초 2개월로 계획됐던 폐기 일정이 9개월 만에 종료됐다.
‘울산대 장서 폐기’는 유례 없는 규모 탓에 충격을 줬지만 ‘흔치 않은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내부 진통을 겪으면서도 구성원들이 반발, 협상, 논쟁, 재선별 과정을 거치며 10권 중 4권을 구출해냈다. 책의 가치를 중심으로 폐기 기준을 바꾸고 학교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합의에 따른 보존 절차를 끌어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울산대 장서 폐기는 지난해 10월 언론 보도로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전국 대학과 학계뿐 아니라 출판계에서도 ‘떠들썩한 뉴스’가 됐다. 당시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만든 한 단체대화방에선 “우리 대학도 마찬가지”(사서 전언)란 글들이 잇따랐다. “차라리 다행이란 반응도 있었”다. “각 대학들이 여론을 살피며 눈치를 볼 테니 오히려 잘됐다는 의미”였다. “다만 울산대 사례가 ‘저렇게 책을 버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저렇게 버리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으로 귀결되리란 우려도 함께”였다.
“외국 서점 털어 구한 책들인데”
대부분의 학교가 울산대와 달리 소리 소문 없이 책들을 정리했다. 2021년 164만2845권(391개교)→ 2022년 205만3490권(387개교)→ 2023년 248만2496권(385개교) 등 최근 3년만 봐도 국내 대학도서관의 장서 폐기량(케리스 ‘대학도서관 실태조사 결과 분석’)은 크게 증가했다. 공간 탓이었다.
전국 4년제 대학 도서관의 76.3%(2021년 케리스 ‘대학도서관 장서 폐기 가이드라인 수립 연구’)가 장서 소장 한계치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추락하는 도서관 이용률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공간만큼 책을 폐기한다’는 오래전부터 개별 도서관들의 대안 없는 해법이었다. “얼마나 좋은 장서를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책무인 도서관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책을 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상황”(정재영 문헌정보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에서 ‘그러므로’는 디지털에 밀려나는 현시대 종이책의 처지(2020년 대학 재학생 1인당 대출 권수가 2011년 대비 51.8% 감소했을 때 1인당 상용 데이터베이스 이용 건수는 94% 증가)를 더욱 조여왔다.
“종이책의 시대가 어느 순간 끝나더라도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순리적이어야 한다.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져야 할 대량 폐기가 책의 보존을 둘러싼 골치 아프지만 시급한 논의를 건너뛰는 수단이 돼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정재영)
‘시급한 논의들’은 쌓여 있었다.
‘책을 줄이더라도 이용자가 찾는 도서관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용해도 본래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자멸할 것’이란 주장 사이의 접점은 어디인가. 생사 기로에 선 종이책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보존 여부를 판단할 전문 인력은 어떻게 갖출 것인가. ‘책의 집’에서 책을 추방한 ‘미래형 도서관’이 추구하는 미래란 무엇인가. 쫓겨난 책들을 무조건 없애는 대신 시민적 활용 방안을 구축할 순 없나.
마지막 질문은 도서관계의 오랜 숙원인 ‘공동보존서고’ 건립과도 관련 있다. 공동보존서고는 미국의 대표 사례 중 한곳인 리캡(ReCAP. 프린스턴·컬럼비아·하버드 대학과 뉴욕공공도서관이 프린스턴대 포리스털 캠퍼스에 설립해 공동 운영) 현장 연구 등 국내에서도 논의의 역사가 길지만 현실화되진 못했(정재영 “결국 돈과 권력의 문제”)다. 정부의 ‘제3차 대학도서관 진흥 종합계획(2024~2028)’에도 ‘공동보존서고 모델 개발 연구’가 언급돼 있으나 실제 설립까지 염두에 둔 방안은 아니(교육부 “예산 한계를 고려한 현실 모델을 찾는 것이 일차적 목표”)다. 종합계획엔 “대학도서관 장서 폐기 기준 마련”도 포함돼 있다. 대학별 실태 등을 조사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울산대 폐기 사태를 계기로 추가된 안”(교육부 담당자)이었다.
“학교 이름이 찍힌 책이 밖에서 돌아다니면 학교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다.”(울산대 관계자)
폐기하느니 차라리 시민들에게 나눠 주자는 인문대 교수들의 건의는 ‘책 버리는 학교란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버림받은 책들을 모아 건립될 ‘산사의 도서관’(3회에서 계속)으로 교수들이 찾아가 ‘보관 수락’을 얻어왔을 때도 학교는 ‘억대의 운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책의 운명은 역설적이었다.
“학교에서 작은 아파트 한채 살 돈을 할당해줬다. 그 돈으로 일본 헌책방에서 며칠 동안 책을 골라 컨테이너로 실어왔다.”
외국까지 나가 책을 구하러 다녔던 ‘한때’를 노성환 울산대 명예교수(일본어·일본학과)가 떠올렸다.
1990년대 말까지 국내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도서관 장서를 늘렸다. 한 언론사 대학평가에서 장서 수가 평가 지표로 활용되면서 여러 대학들이 ‘100만권 확보 운동’에 뛰어들었다. 양적 확대는 ‘질적 황폐화’를 낳기도 했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차떼기’로 실어 간 책들을 장서 목록에 올린 뒤 포장된 그대로 지하 서고에 쌓아둔 학교도 있었다. “구하기 쉽지 않은 책들은 포토 카피를 떠서 진본 출간 연도로 등록”(경남지역 대학도서관 사서)한 학교들도 많았다.
프레스 눌러 야적장에 차곡차곡
울산대도 장서 확보에 공을 들였다. 1992년 중앙도서관 개관 직후 도서 구입 예산을 크게 증액(5년간 43억원)했다. 1996년까지 매년 10만여권씩(1991년 20만권→1996년 53만권) 책을 늘렸다. 교수들에게도 돈을 주고 일본, 중국, 대만, 영국, 미국 등으로 나가 책들을 구해오도록 했다. 당시 학과장이던 노성환 교수는 “일본 고베와 교토의 헌책방을 다니며 소장 가치가 있는 책들을 직접 선별”했다. “어마어마한 책 창고를 주인과 며칠을 뒤져 도서관에 넣을 책들을 찾아냈”다. 책방은 “일본 고전과 근현대 문학 전집 등 수천권을 박스별로 분류해서 컨테이너에 담아 학교로 보냈”다. 중국이나 대만·홍콩 학회에 참석한 중문과 교수들도 ‘상하이(상해)고적출판사’나 ‘삼민서국’ 등 유명 출판사·서점 창고까지 들어가 다량의 전집류를 사 왔다. 국내외에서 기증 받은 책들도 울산대 도서관의 한편을 채웠다. 미국 도서관과 학교에서 폐기한 책들이 컨테이너에 담겨 부산항에 부려졌을 때도 다른 대학들과 앞다퉈 실어와 서고에 넣었다. 그 결과 울산대는 2012년 5월 도서관 신관 로비에서 100만권 등록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렇게 모았던 책들의 처지가 10여년 만에 극단적으로 뒤바뀌었다. “안타깝기 그지없게도”(노성환) 학생 공간을 뺏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나라에서 출간돼, 서로 다른 경로를 밟으며 길고 오랜 이야기를 쌓아온 책들(① 책에 묻은 시간)이, 울산대 도서관에서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동거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연구자 에드워드 매커디가 1938년에 편집·출간한 ‘다빈치 노트’는 울산대 도서관에 1996년 입고됐다. 폴란드계 미국인이자 미시간대학교 석사 과정 공학도였던 존 피어낙이 28살의 나이로 숨지기 전 표지 안쪽에 서명을 남긴 이 책은 본래 두권짜리였다. 학교가 작성한 최초 폐기 도서 목록에 두권 모두 이름을 올렸다. 두차례에 걸친 인문대 교수들의 선별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았다. 그중 제2권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공개된 무료 배부 도서 목록에 있었다. 여과망을 거듭 통과한 책이 ‘최후 단계’에서 안동섭 교수에게 발견돼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무료 배부 목록에 제1권은 없었다. 생존 장서들 중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행방불명이었다.
홍콩 제4대 총독 존 보링이 쓴 ‘십진법 시스템’의 1854년 초판도 제동 없이 무료 배부 목록까지 떠내려갔다. 유실 직전 겨우 건져졌다. 이 책이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히브리청년협회’(YMHA) 서고를 떠나 1972년 울산대에 도착했을 땐 같은 단체의 장서인이 찍힌 책 두권이 한해 전 먼저 와 있었다. 무료 배부 단계에서 눈에 띄어 목숨을 구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검열 흔적(16쪽 분량 통째 삭제)을 남긴 ‘조선제종교’(1929년 출간)는 1996년 1t 트럭에 실려 울산대에 기증됐다. 트럭엔 ‘조선공립국민학교 훈도 대동광반’의 명함을 품은 일본어 연구서 ‘국어사개설’(1943년 출간)도 섞여 있었다. 명함의 주인이자 한글 운동가였던 정신득 부산경상전문대(현 부산경상대) 초대 학장이 생전 소장한 도서들이었다. 아들인 정한모 전 울산대 교수(2018년 화학과 퇴임)가 “혼자 갖고 있기보다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게 좋을 듯해” 학교에 맡겼다. 이 책들이 기증도서가 아닌 일반도서로 관리되다 폐기 목록에 올랐다. 무료 배부 단계에서 두 책을 살려낸 안동섭 교수가 지난 8일 정 전 교수를 만나 ‘국어사개설’을 건넸다. 부친의 흔적과 삶의 이야기를 묻힌 책이 기증 28년 만에 아들에게 되돌아갔다.
서가에서 책들이 ‘색출’됐다.
무료 배부까지 마친 26만7840권은 이사 전문업체 ㄱ사에 맡겨졌다. “색출(폐기 도서를 찾아내는 작업을 일컫는 업계 용어)에 특히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여”(ㄱ사 부장)됐다. 울산대 폐기 장서는 ㄱ업체가 “그동안 맡았던 작업 중 가장 양이 많았”다. 압축배가(색출로 생긴 서가 간격 당기기)와 확장배가(빈 공간에 책 채우기), 층·건물 간 이사, 폐기 처리까지 포함한 포괄 계약이었다.
ㄱ사는 “지난 3월부터 3주 작업” 끝에 폐기 책들을 학교 밖으로 반출해 압착업체에 넘겼다. 압착을 하청받은 업체가 책들을 프레스로 눌러 정육면체 덩어리로 만들었다. 13만4740㎏의 책 블록을 경남의 제지업체 ㅎ사가 구입했다. 야적장에 차곡차곡 쌓인 블록들이 폐지로 지은 거대한 건축물 같았다.
휴대폰 케이스, 과자 상자, 담뱃갑…
철사 포장을 푼 책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고도를 높였다.
울산대가 폐기한 책들을 ㅎ사는 ‘원료’로 사용했다. 벨트를 타고 올라간 책들이 커다란 용해로 안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용해로 한쪽에서 탈묵제(잉크 제거 약품)를 섞은 강력한 물줄기가 발사됐다. 옆 사람의 고함 소리를 알아듣기 힘들 만큼 시끄러운 소음이 공장을 채웠다. 물을 쏘인 책들이 고속의 회전을 먹고 죽처럼 녹았다. 한권의 책이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더는 책이라고 할 수 없는 ‘물질’이 거름망에 뿌려졌다. 압력을 가해 수분을 짜내고, 스팀을 넣어 다리듯 말렸다. 종이 겉면을 입히고, 표면을 평평하게 눌렀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아 재단까지 마치면 산업용 포장지인 ‘백판지’가 됐다.
ㅎ사 백판지는 “보통 3개 층을 겹쳐 만들었”(회사 연구원)다. 용해된 폐지가 종류별로 백판지의 상(겉면엔 질 높은 펄프)·중(안 보이는 중간엔 골판지)·하(뒤쪽 표면엔 책이나 신문·잡지)층에 각각 뿌려졌다. ㅎ사는 이 백판지를 국내 유명 상품들의 포장용지로 납품했다. 울산대에서 쫓겨난 책들이 휴대폰 케이스와 과자 상자, 담뱃갑, 아이스크림 컵지, 커피 캐리어 등에 섞여 소비자에게 닿았다.
초코파이 상자에 달라붙어 당신을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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