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살리려다 마을까지 살리게 생겼어요

안녕하세요, 브랜디입니다. 여러분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단체가 있으신가요? 저는 인권, (비인간)동물권, 환경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그중 정말 응원하고 관심있게 보고 있는 ‘동물해방물결’(이하 동해물)에서 얼마 전 후원자 모임을 진행했고, 거기에 참석하고 왔어요. 동해물이 구조한 꽃풀소들을 만나는 설레고 뜻깊은 시간이었죠.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꽃풀소들과의 반가운 만남, 그리고 생추어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과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엪지는 종평등 실현을 위해 인간과 비인간 동물에게 동일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ex. 5마리(x) 5명(o))

🙄 생추어리? 처음 들어보는데..

보호구역, 피난처라는 뜻을 가진 ‘생추어리(sanctuary)’. 특정한 목적을 갖고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원래 태어난 습성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이에요. 한국에서는 2019년 직접행동DxE가 농장에서 ‘새벽이’라는 돼지를 공개 구조하면서 만든 ‘새벽이 생추어리’가 최초인데요. 국내 최초 ‘소’ 생추어리인 ‘꽃풀소 생추어리’ 이야기는 2021년, 동해물이 인천에 있는 한 폐업 직전의 목장에서 15명의 홀스타인 남성 소들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 15명의 소에게 죽음이 아닌 자유를 선물해주고 싶었던 동해물은, 소들이 강인하게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풀과 들꽃을 딴 이름을 붙이고 ‘꽃풀소’라고 불러주었어요.)

목장이 폐업되면 소들은 바로 도살장으로 가게 되니 동해물이 이들을 구조하기로 한 거죠. 하지만 죽이는 게 합법이고 살리는 게 불법인 이 나라에서,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해요. 생추어리를 만들기 전까지 소들을 임시보호할 수 있는 목장을 알아보던 중 인천 목장 폐업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는데, 당시 모인 모금액이 6명만 구조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고심 끝에 목장 출입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머위, 메밀, 미나리, 부들, 창포와, 구조 당일 가장 먼저 문을 넘어온 엉이를 구조하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남은 9명, 겅퀴, 꽃다지, 달래, 둥굴레, 들콩, 박하, 백도라지, 봄동, 완두는 2021년 8월 10일에 도살되었습니다. ( 마지막 인사 영상)

가슴 아픈 이별은 이게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임시보호처에서 지낸 지 1년이 지난 2022년 10월 30일, 미나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돼요. 현행법상 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서는 채혈 작업을 꼭 거쳐야 하는데요. 생추어리로 이주하기 직전 채혈 도중 미나리가 넘어졌고, 인대 손상으로 열흘간 일어나지 못하다가 급성 장독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망한 꽃풀소 10명의 명복을 빕니다.)

(▲ 강원도 인제군 신월리에 위치한 '달뜨는 보금자리'의 모습 | 출처 : 동물해방물결)

우여곡절 끝에 새 집에 도착한 머위, 메밀, 부들, 창포, 엉이. 이들이 태어나 처음 흙땅을 밟고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은 제 부동의 최애 영상이에요. 그렇게 5명의 소들은 ‘달뜨는 보금자리’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아늑한 집에서 서로 투닥거리기도, 보살펴주기도 하면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됐어요.🙂 ( 꽃풀소 최근 소식 보러 가기)

🐮 소는 처음이라..

조금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소’라는 동물을 제대로 마주했어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축사 안에 갇혀있는 소들을 멀리서 본 것 외에는 기회가 없었거든요. 온전한 모습이 아닌 조각조각난 형태로는 수도 없이 많이 만났는데 말이에요.

처음 만난 소들의 첫인상은.. ‘우와.. 크다..’ 였어요. 😅 보통 소들은 2살이 되기 전, 500kg 정도일 때 도살되는데요. 3살이 된 꽃풀소들(충격. 국내 최고령 홀스타인 소임.)은 1톤이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들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3톤까지 클 수도 있다는데… 앞으로의 모습도 정말 기대돼요. 😮

(▲ 미나리 추모하려고 펜스 넘어갔는데 바나나 달라고 그 앞까지 쫓아온 메밀..😂 뒷편에 돌이 쌓여있는 곳이 미나리의 무덤.)

잠깐 봤는데도 5명의 성격이 제각기 다른 걸 느낄 수도 있었어요. 몸집이 가장 큰 흰 소 머위는, 낯선 사람들이 오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시크한 모습이었고요. 반대로 부들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친화력과, 처음 맛보는 딸기도 맛있게 먹는 적응력(?)이 돋보였어요. 메밀이는 바나나를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들고 있던 바나나 5개를 모두 먹고 나서도 저의 노란색 폰 케이스를 바나나로 오해해서 그거 달라고 보채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어요. 엉이, 창포와는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는데요. 소문난 단짝 친구답게 언제나 둘이 꼭 붙어있는 모습이었답니다. 😄

⛺ 소를 살리려고 시작했는데, 마을을 살리게 생겼다.

생추어리가 위치한 강원도 인제군 신월리는 아주 한적한 마을이에요. 인제군의 면적이 서울의 2.7배가량 되는데, 인구는 겨우 3만 2천명이라고 하면 어느 정돈지 감이 오시나요? 특히 이곳 신월리는 대중교통이 전혀 다니지 않고, 60대가 주민 중 젊은 축에 속하는 초고령상태라 지방소멸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해요.

그러던 중 신월리와 동해물이 운명처럼 만나게 된 거예요. 소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마을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마을 사람들은 소들을 이주시키고 살리는 데에 도움을 주었고, 동해물 활동가 4명이 신월리로 주소를 이전해 마을에 젊은 층이 유입되었어요. 또 동해물은 폐교된 분교를 활용해 추후 동물권 교육, 공연, 캠핑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마을의 관계인구를 늘리는 데 힘쓸 예정입니다.

아, 동해물 활동가 4명 말고도 마을에 유입된 또 다른 젊은이(?)들이 있는데요. 바로 매일 꽃풀소들을 돌봐주는 돌보미 가족, 타샤, 현욱, 가야, 솔님이에요. 타샤, 현욱님이 부부이고, 가야, 솔님은 아이들이죠. 이 네 분은 모두 비건이고, 아이들은 언스쿨링* 하고 있다는 점도 특별한 부분인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가야님의 명강의가 올라와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

(*언스쿨링(unschooling) : 학교에 다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학교 방식의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배울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합니다.)

🙃 모두가 '나답게' 살 수 있었으면

(▲ 사람들 소리가 들리자 밖으로 나와보는 메밀. 반가움에 환호성이 절로 나오던 순간 😂)

생추어리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감각이 있어요. 바로 부들이의 콧김인데요. 생각보다도 정말 강해서 놀랄 정도였거든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 감각을 느끼고 나니 부들이와 다른 소들이 살아있다는 게 문득 실감이 났어요. 바나나를 먹고 싶은 메밀이가 뛸 때도, 만사 귀찮다는 듯이 누워있는 머위를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어떻게 살아남은 존재들인지 알고 있으니 이 만남이 정말 소중했죠. 사실상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답게’ 살다가 자연사할 수 있는 소들이라고 생각하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동해물은 5명의 꽃풀소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기 위해 필요한 비용 마련을 목적으로 돌봄 후원금을 따로 모금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도 꽃풀소와 신월리를 살리는 ‘살리미’가 되어 소중한 존재를 지키는 일에 동참해 보면 어떨까요? 😊

※ 본 뉴스레터에 사용된 이미지는 저작권법 제28조에 따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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