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예측이 무너졌다"…'신념' 돼 버린 중동 전쟁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8. 13:03
[온더스팟] 가자전쟁 1년 후 중동은 어떻게 변했나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지구 저편엔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깊이 있고 생생한 글로벌 지식뉴스를 전해드립니다.
가자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중동 전체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인지, 국내 최고의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와 지금 중동 상황 분석합니다.
Q. 그동안의 중동 분쟁과 현재의 중동 위기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훨씬 더 긴장의 수위가 높다고 봐야 할까요?
A. 중동에서 굉장히 군사적으로 강한 두 나라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본토에서 미사일을 주고받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거는 좀 이전과 다르다.'
그리고 이란은 지금 핵 개발을 시도해 왔고 그것 때문에 국제사회가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반면에 이스라엘은 본인들이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핵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나라이다 보니 두 나라 간에 실제로 본토에서 미사일을 주고받는 상황이 됐을 때 이게 자칫 잘못하면 통제 불능 상태까지 갔을 때 정말 치명적인 위기가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하는 공포감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례인 거죠.
Q. 지금 이스라엘은 새해를 맞는 축제 기간이라고 들었는데 이 이후에 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수 있는 어떤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전망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변곡점이 될 만한 시기들이 또 있을까요.
A. 이제 곧 (10월 11일~12일) ‘욤 키푸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절기가 도래하고 그 이후에 (10월 15일~23일) ‘수코트’라고 하는 ‘초막절’, 계속 이런 종교적으로 정체성을 자극하는 그런 시기들이 연이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종교적으로 거기에 굉장히 과도하게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기대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절기에 뭔가 신적 의미를 더 부여하는, 정당성을 더 부여하는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죠. 평일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욤 키푸르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대속죄일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은 소위 자기들이 믿는 신 야훼에게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전 국민의 죄를 대신 고하고 용서를 받는, 그러니까 일종의 전 국민이 유대교인들 입장에서는 한 해 한 해 생존을 담보하는 그런 절기인 거죠.
1973년 4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굉장히 뼈아픈 전쟁이었습니다. 이기긴 했지만 그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해서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갔던 게 바로 그 ‘욤 키푸르 전쟁’이었거든요.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대의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나서 욤 키푸르 그러면 국가의 위기랑 자연스럽게 등치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날은 워낙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날이고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욤 키푸르를 앞두고는 대대적인 공세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린 추론은 아닐 것 같습니다.
Q. 가자전쟁 초기만 해도 이게 중동 지역 전체의 긴장으로 확산할 가능성, 확전이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이런 전망이 우세했는데 그런 것이 빗나가는 이벤트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A. 작년에 이 가자 전쟁이 시작된 초기만 해도 국가 단위에서는 사실은 전면전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까지 포함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이 점점 확전 쪽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거는 이스라엘 내부의 분위기가 작년과는 또 다르게 훨씬 더 강경하고 차제에 자기들 안보 위협의 모든 근원을 한번 판을 뒤집어 보겠다고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독립 변수는 이스라엘이 된 거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강경 보수 각료들이 합리적인 계산을 한다기보다는 모든 적을 차제에 완전히 세력을 약화하는 일종의 굉장히 센 게임의 판을 그리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이스라엘이 생각보다 많이 보수화됐고, 두 번째는 미국의 중재력이 생각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변수일 것 같고요. 여기에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도 변수가 되다 보니까 국가와 국가끼리만 싸우게 되면 합리적인 게임을 하는데 이 판이 굉장히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고 그런 양상입니다.
Q.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이 지난 4월에 테러를 당하면서 그때 이란이 보복을 다짐하고 첫 본토 공격을 하면서 '우리가 걱정했던 확전이 이렇게 일어나는 거구나…' 돌이켜 보면 그때 더 큰 확전으로 안 갔던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A. 여기서 좀 판을 저희가 봐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이 전쟁을 뭐라고 부르냐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근데 그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싫은 구도예요. 왜냐하면 하마스는 한 줌도 안 되는 가자에 가두어 놓은 테러 집단인데 이스라엘이 그런 하마스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고 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이란의 전위 세력들이 계속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자기들이 그,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조무래기들하고 계속 싸우고 있는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판을 바꾸려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정말 원흉은 뒤에 있는 이란이고 이란을 링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게 이스라엘의 지금까지의 목표입니다.
그럼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바라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요. 이란이 너무 큰 나라고 이스라엘도 지금 1년째 전쟁이 계속되니까 이란도 힘들고 이스라엘도 힘들어요.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판단을 하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바라는 것은 전쟁의 수준은 계속 유지가 돼야 하고 그렇다고 막 전면전으로 이게 확전이 돼 가지고 끌고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고 그러니까 한 번 이란을 도발한 게 4월 1일에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 공격이었고, 이란은 전면전으로 끌려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공격을 당했으니까 국가이니까 반응해야 하고 그때 그래서 4월 14일에 미사일과 드론 해서 한 320발 쏘면서 반응합니다. 그때는 한 번 딱 주고받고 서로 간을 본 거죠.
이란은 ‘우리는 이렇게 조율된 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언젠가 우리가 마음먹으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하는 걸 과시했어요. 그러나 그때 중간에 다 요격됐거든요. 미국이나 이런 데에 의해서. 이란은 내심 그걸 바랐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로 너무 큰 타격이 일어나면 그때는 이제 통제 안 되는 확전으로 가니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반응으로 다시 이란을 공격했는데 나탄즈 근처에 있는 핵 시설의 레이더를 정확히 정밀 타격합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줬던 건 너네는 한 300발 쐈지, 우리는 한두 발 가지고도 너희 심장부를 그대로 타격할 수 있어라고 하는 걸 한번 보여주고 상황이 종료가 됐던 거죠.
그런데 점점 이스라엘 내부에서 네타냐후 연정이 반전 여론이나 국제사회의 협상 압력에 계속 노출되기 시작해요. 결정적인 계기는 몇 주 전에 있었던 라파에서 이스라엘 인질 6명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국민들의 반감이 굉장히 커졌거든요. 그때 사실은 국민들이 막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에서 55만 명인가 나와서 시위하고 막 이랬었습니다. 그때 네타냐후가 아예 체제의 판을 헤즈볼라 쪽 북부 전선으로 돌리면서 고조시킨 거죠.
Q. 헤즈볼라는 어떤 조직이고 이란에는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란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건지.
A.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와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던 하산 나스랄라는 30년 지기이죠. 1992년인가요, 그때부터 하산 나스랄라가 헤즈볼라를 이끌기 시작했는데 이란에는 1989년부터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였죠. 그러니까 비슷한 때 집권해서 30년 넘게 이란의 ‘혁명 수출’이라고 하는 대의에 같이 복무했던 두 지도자죠. 이란 입장에서는 하산 나스랄라를 잃었다고 하는 건 적어도 최고 지도자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동료 또는 후배, 동지를, 전우를 잃은 느낌일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이란은 1979년에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 혁명을 한 이란의 중요한 국시는 자기들이 완성한 이 이슬람 혁명을 전 이슬람권에 편안하게 전파하고 확산시키겠다고 하는 그런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헌법에도 반영이 돼 있고요. 이란 체제의 확산에 에이전트들, 대리자들이 필요했고 마침 레바논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내전 국면이 막 이루어지고 있을 때라 그 레바논의 시아파를 대리하는 이 헤즈볼라가 정확히 딱 결이 맞았던 거죠.
지도를 보면 이란이 있고 그 옆에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데 그중에서도 헤즈볼라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은 이란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지중해 연안 국가고 또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다는 거죠.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이 축의 종착점이 헤즈볼라이고 이스라엘에 가장 중요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게 또 헤즈볼라이기 때문에 1순위 파트너였던 거죠.
Q.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보는 여론은 어떤가요?
A. 레바논은 우리가 흔히 모자이크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양한 종파가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거든요. 1930년대로 기억하는데 그때 인구 조사에 의해서 권력을 분점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그 당시에 인구가 제일 많았던 게 마론파 크리스천이어서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한다, 총리는 수니파가 한다, 그다음에 시아파가 국회의장하고 외교부 장관 한다 이런 식으로 나눠놨어요.
근데 시아파 입장에서는 그게 마뜩잖은 거죠. 왜냐하면 자기들이 인구가 지금 더 많은데 늘어나서 그러면 인구 조사 다시 해서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안 하니 그럼 우리가 직접 권력을 잡겠다고 투쟁에 나선 게 ‘아말’이라는 정당 그리고 지금 ‘헤즈볼라’라고 하는 시아파 정당인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까 말씀드렸던 기독교 계열이나 수니파는 헤즈볼라가 저렇게 막 이스라엘과 싸우면서 분탕질하는 것 때문에 레바논이 훨씬 살기가 어렵게 됐다고 하는 원망을 분명히 갖고 있죠.
그러나 반면에 시아파를 지지하는 또 적지 않은 인구들은 또는 시아파들은 레바논 내에서 헤즈볼라가 실질적인 통치자다, 교육 의료 복지라고 하는 소위 국가의 최소 기능이나 필수 기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정파보다 잘해요. 그러니까 양가감정이 있죠.
Q. 확전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시각은?
원래는 이스라엘의 정치 지형이 이념 지형이 완전히 세속주의자가 한 30%, 중도가 한 30%, 그다음에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30%, 그리고 완전히 극우,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중세적 신정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한 10%였는데요.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범보수가 한 35~ 40%였는데 이게 한 거의 50%까지 왔다고 보는 거죠.
네타냐후가 지향하는 그 방향은 전반적으로 이 절반에 육박하는 보수 지형하고 같아요. 네타냐후의 게임은 뭐냐면 2026년 9월까지는 총선을 안 해도 되니까 그때까지 계속해서 강경한 모드로 그동안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었던 공작 능력이라든지 적에 대한 첩보 능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마음껏 과시함으로 아 그래 그래도 네타냐후가 이런 어지러운 혼란 국면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저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그런 소구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죠.
그런 의도가 잘 반영됐던 게 (베이루트) 무선 호출기 폭발 사건이라든지 이런 거는 이스라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아 그래도 우리 모사드나 신베트가 열일했구나.
그리고 네타냐후가 작년 10월에는 참 허무하게 당했고 그때 완전히 우왕좌왕해서 엄청나게 잘못한 지도자인데 그래도 하고자 마음먹으니까 하마스의 지도자도 날리고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도 날리고 다 하는구나. 이 혼란 국면에 애매한 중도 지도자를 세우는 것보다 차라리 그 책임 묻는 걸 유보하자는 데까지 여론이 가주기를 바라는 거죠.
Q. 지금 아니면 중동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큰 그림으로 접근하는 거다라는 얘기도 있던데 네타냐후의 정치적인, 개인적인 필요, 욕심 이런 것도 있다고 봐야 되는 거군요.
A. 겹쳤어요. 네타냐후는 지금 말씀하신 것 같은 그런 신념을 스스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차제에 판을 완전히 바꾸자 그래서 이란의 정권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러나 헤즈볼라도 적어도 리타니강 이남의 남부 즉 이스라엘과 접경하고 있는 그 위험 지역만큼은 완전히 초토화를 시킨다. 가자의 라파 지대를 초토화시킨 것처럼 그래서 당분간 몇 년 동안은 다시는 우리를 도발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안전하게 만들자라고 하는 게, 자기가 지도자로서의 의무라고 믿기 시작한 것 같아요.
A. 작년 10월 7일에 하마스의 기습 테러가 너무 컸어요. 충격이 너무 컸던 거죠. 건국 이후에 민간인 거의 800명 가까운 숫자가 한나절에 다 저렇게 사살된 경험은 처음 해 본 거거든요. 미국으로 따지면 9.11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작년 10월 7일 트라우마로 이스라엘에게는 이제 작동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작동을 하게 되면 사실은 밖에서 국외자들이 너네 왜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어요. 이걸 공격한 사람들이 어후 이거 우리가 진짜 괜한 짓 했구나라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가 죽을 각오로 물어뜯어 놔야 된다라고 하는 게 이스라엘의 아마 보편적인 심리일 겁니다. 뭐 중도건 보수건 진보건 막론하고 아마 비슷한 심정일 거예요. 실제로 그렇죠. 어쨌든 하마스의 그 민간인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작년의 학살 그리고 그 테러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지구 저편엔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깊이 있고 생생한 글로벌 지식뉴스를 전해드립니다.
가자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중동 전체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인지, 국내 최고의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와 지금 중동 상황 분석합니다.
‘치명적 위험’의 공포... 이번에도 ‘욤 키푸르’?
A. 중동에서 굉장히 군사적으로 강한 두 나라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본토에서 미사일을 주고받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거는 좀 이전과 다르다.'
그리고 이란은 지금 핵 개발을 시도해 왔고 그것 때문에 국제사회가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반면에 이스라엘은 본인들이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핵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나라이다 보니 두 나라 간에 실제로 본토에서 미사일을 주고받는 상황이 됐을 때 이게 자칫 잘못하면 통제 불능 상태까지 갔을 때 정말 치명적인 위기가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하는 공포감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례인 거죠.
Q. 지금 이스라엘은 새해를 맞는 축제 기간이라고 들었는데 이 이후에 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수 있는 어떤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전망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변곡점이 될 만한 시기들이 또 있을까요.
A. 이제 곧 (10월 11일~12일) ‘욤 키푸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절기가 도래하고 그 이후에 (10월 15일~23일) ‘수코트’라고 하는 ‘초막절’, 계속 이런 종교적으로 정체성을 자극하는 그런 시기들이 연이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종교적으로 거기에 굉장히 과도하게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기대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절기에 뭔가 신적 의미를 더 부여하는, 정당성을 더 부여하는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죠. 평일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욤 키푸르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대속죄일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은 소위 자기들이 믿는 신 야훼에게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전 국민의 죄를 대신 고하고 용서를 받는, 그러니까 일종의 전 국민이 유대교인들 입장에서는 한 해 한 해 생존을 담보하는 그런 절기인 거죠.
1973년 4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굉장히 뼈아픈 전쟁이었습니다. 이기긴 했지만 그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해서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갔던 게 바로 그 ‘욤 키푸르 전쟁’이었거든요.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대의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나서 욤 키푸르 그러면 국가의 위기랑 자연스럽게 등치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날은 워낙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날이고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욤 키푸르를 앞두고는 대대적인 공세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린 추론은 아닐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전쟁은 어떻게 변했나
A. 작년에 이 가자 전쟁이 시작된 초기만 해도 국가 단위에서는 사실은 전면전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까지 포함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이 점점 확전 쪽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거는 이스라엘 내부의 분위기가 작년과는 또 다르게 훨씬 더 강경하고 차제에 자기들 안보 위협의 모든 근원을 한번 판을 뒤집어 보겠다고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독립 변수는 이스라엘이 된 거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강경 보수 각료들이 합리적인 계산을 한다기보다는 모든 적을 차제에 완전히 세력을 약화하는 일종의 굉장히 센 게임의 판을 그리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이스라엘이 생각보다 많이 보수화됐고, 두 번째는 미국의 중재력이 생각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변수일 것 같고요. 여기에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도 변수가 되다 보니까 국가와 국가끼리만 싸우게 되면 합리적인 게임을 하는데 이 판이 굉장히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고 그런 양상입니다.
Q.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이 지난 4월에 테러를 당하면서 그때 이란이 보복을 다짐하고 첫 본토 공격을 하면서 '우리가 걱정했던 확전이 이렇게 일어나는 거구나…' 돌이켜 보면 그때 더 큰 확전으로 안 갔던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A. 여기서 좀 판을 저희가 봐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이 전쟁을 뭐라고 부르냐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근데 그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싫은 구도예요. 왜냐하면 하마스는 한 줌도 안 되는 가자에 가두어 놓은 테러 집단인데 이스라엘이 그런 하마스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고 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이란의 전위 세력들이 계속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자기들이 그,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조무래기들하고 계속 싸우고 있는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판을 바꾸려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정말 원흉은 뒤에 있는 이란이고 이란을 링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게 이스라엘의 지금까지의 목표입니다.
그럼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바라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요. 이란이 너무 큰 나라고 이스라엘도 지금 1년째 전쟁이 계속되니까 이란도 힘들고 이스라엘도 힘들어요.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판단을 하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바라는 것은 전쟁의 수준은 계속 유지가 돼야 하고 그렇다고 막 전면전으로 이게 확전이 돼 가지고 끌고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고 그러니까 한 번 이란을 도발한 게 4월 1일에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 공격이었고, 이란은 전면전으로 끌려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공격을 당했으니까 국가이니까 반응해야 하고 그때 그래서 4월 14일에 미사일과 드론 해서 한 320발 쏘면서 반응합니다. 그때는 한 번 딱 주고받고 서로 간을 본 거죠.
이란은 ‘우리는 이렇게 조율된 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언젠가 우리가 마음먹으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하는 걸 과시했어요. 그러나 그때 중간에 다 요격됐거든요. 미국이나 이런 데에 의해서. 이란은 내심 그걸 바랐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로 너무 큰 타격이 일어나면 그때는 이제 통제 안 되는 확전으로 가니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반응으로 다시 이란을 공격했는데 나탄즈 근처에 있는 핵 시설의 레이더를 정확히 정밀 타격합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줬던 건 너네는 한 300발 쐈지, 우리는 한두 발 가지고도 너희 심장부를 그대로 타격할 수 있어라고 하는 걸 한번 보여주고 상황이 종료가 됐던 거죠.
그런데 점점 이스라엘 내부에서 네타냐후 연정이 반전 여론이나 국제사회의 협상 압력에 계속 노출되기 시작해요. 결정적인 계기는 몇 주 전에 있었던 라파에서 이스라엘 인질 6명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 국민들의 반감이 굉장히 커졌거든요. 그때 사실은 국민들이 막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에서 55만 명인가 나와서 시위하고 막 이랬었습니다. 그때 네타냐후가 아예 체제의 판을 헤즈볼라 쪽 북부 전선으로 돌리면서 고조시킨 거죠.
Q. 헤즈볼라는 어떤 조직이고 이란에는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란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건지.
A.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와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던 하산 나스랄라는 30년 지기이죠. 1992년인가요, 그때부터 하산 나스랄라가 헤즈볼라를 이끌기 시작했는데 이란에는 1989년부터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였죠. 그러니까 비슷한 때 집권해서 30년 넘게 이란의 ‘혁명 수출’이라고 하는 대의에 같이 복무했던 두 지도자죠. 이란 입장에서는 하산 나스랄라를 잃었다고 하는 건 적어도 최고 지도자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동료 또는 후배, 동지를, 전우를 잃은 느낌일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이란은 1979년에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 혁명을 한 이란의 중요한 국시는 자기들이 완성한 이 이슬람 혁명을 전 이슬람권에 편안하게 전파하고 확산시키겠다고 하는 그런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헌법에도 반영이 돼 있고요. 이란 체제의 확산에 에이전트들, 대리자들이 필요했고 마침 레바논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내전 국면이 막 이루어지고 있을 때라 그 레바논의 시아파를 대리하는 이 헤즈볼라가 정확히 딱 결이 맞았던 거죠.
지도를 보면 이란이 있고 그 옆에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데 그중에서도 헤즈볼라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은 이란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지중해 연안 국가고 또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다는 거죠.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이 축의 종착점이 헤즈볼라이고 이스라엘에 가장 중요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게 또 헤즈볼라이기 때문에 1순위 파트너였던 거죠.
Q.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보는 여론은 어떤가요?
A. 레바논은 우리가 흔히 모자이크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양한 종파가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거든요. 1930년대로 기억하는데 그때 인구 조사에 의해서 권력을 분점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그 당시에 인구가 제일 많았던 게 마론파 크리스천이어서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한다, 총리는 수니파가 한다, 그다음에 시아파가 국회의장하고 외교부 장관 한다 이런 식으로 나눠놨어요.
근데 시아파 입장에서는 그게 마뜩잖은 거죠. 왜냐하면 자기들이 인구가 지금 더 많은데 늘어나서 그러면 인구 조사 다시 해서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안 하니 그럼 우리가 직접 권력을 잡겠다고 투쟁에 나선 게 ‘아말’이라는 정당 그리고 지금 ‘헤즈볼라’라고 하는 시아파 정당인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까 말씀드렸던 기독교 계열이나 수니파는 헤즈볼라가 저렇게 막 이스라엘과 싸우면서 분탕질하는 것 때문에 레바논이 훨씬 살기가 어렵게 됐다고 하는 원망을 분명히 갖고 있죠.
그러나 반면에 시아파를 지지하는 또 적지 않은 인구들은 또는 시아파들은 레바논 내에서 헤즈볼라가 실질적인 통치자다, 교육 의료 복지라고 하는 소위 국가의 최소 기능이나 필수 기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정파보다 잘해요. 그러니까 양가감정이 있죠.
보수화된 이스라엘... ‘신념’이 된 전쟁 목표
Q. 확전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시각은?
원래는 이스라엘의 정치 지형이 이념 지형이 완전히 세속주의자가 한 30%, 중도가 한 30%, 그다음에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30%, 그리고 완전히 극우,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중세적 신정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한 10%였는데요.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범보수가 한 35~ 40%였는데 이게 한 거의 50%까지 왔다고 보는 거죠.
네타냐후가 지향하는 그 방향은 전반적으로 이 절반에 육박하는 보수 지형하고 같아요. 네타냐후의 게임은 뭐냐면 2026년 9월까지는 총선을 안 해도 되니까 그때까지 계속해서 강경한 모드로 그동안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었던 공작 능력이라든지 적에 대한 첩보 능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마음껏 과시함으로 아 그래 그래도 네타냐후가 이런 어지러운 혼란 국면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저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그런 소구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죠.
그런 의도가 잘 반영됐던 게 (베이루트) 무선 호출기 폭발 사건이라든지 이런 거는 이스라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아 그래도 우리 모사드나 신베트가 열일했구나.
그리고 네타냐후가 작년 10월에는 참 허무하게 당했고 그때 완전히 우왕좌왕해서 엄청나게 잘못한 지도자인데 그래도 하고자 마음먹으니까 하마스의 지도자도 날리고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도 날리고 다 하는구나. 이 혼란 국면에 애매한 중도 지도자를 세우는 것보다 차라리 그 책임 묻는 걸 유보하자는 데까지 여론이 가주기를 바라는 거죠.
Q. 지금 아니면 중동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큰 그림으로 접근하는 거다라는 얘기도 있던데 네타냐후의 정치적인, 개인적인 필요, 욕심 이런 것도 있다고 봐야 되는 거군요.
A. 겹쳤어요. 네타냐후는 지금 말씀하신 것 같은 그런 신념을 스스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차제에 판을 완전히 바꾸자 그래서 이란의 정권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러나 헤즈볼라도 적어도 리타니강 이남의 남부 즉 이스라엘과 접경하고 있는 그 위험 지역만큼은 완전히 초토화를 시킨다. 가자의 라파 지대를 초토화시킨 것처럼 그래서 당분간 몇 년 동안은 다시는 우리를 도발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안전하게 만들자라고 하는 게, 자기가 지도자로서의 의무라고 믿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스라엘 ‘보복’의 딜레마... 9.11 응징의 데자뷔?
A. 작년 10월 7일에 하마스의 기습 테러가 너무 컸어요. 충격이 너무 컸던 거죠. 건국 이후에 민간인 거의 800명 가까운 숫자가 한나절에 다 저렇게 사살된 경험은 처음 해 본 거거든요. 미국으로 따지면 9.11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작년 10월 7일 트라우마로 이스라엘에게는 이제 작동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작동을 하게 되면 사실은 밖에서 국외자들이 너네 왜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어요. 이걸 공격한 사람들이 어후 이거 우리가 진짜 괜한 짓 했구나라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가 죽을 각오로 물어뜯어 놔야 된다라고 하는 게 이스라엘의 아마 보편적인 심리일 겁니다. 뭐 중도건 보수건 진보건 막론하고 아마 비슷한 심정일 거예요. 실제로 그렇죠. 어쨌든 하마스의 그 민간인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작년의 학살 그리고 그 테러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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