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경제 더하기]
우리나라 농가 왜 가난할까
우리나라에서 어느 계층이 가장 빈곤한 삶을 살고 있을까? 상대적 빈곤율 지표를 기준으로 보면 농어촌 지역의 노령계층이다. 상대적 빈곤율 지표는,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소득을 얻고 있는 가구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20년 기준 농촌 지역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빈곤율 수치는 57.6%이다. 이는 전체 인구 기준의 상대적 빈곤율 15%보다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65세 이상만 놓고 보더라도 도시지역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대 간 불평등, 그리고 같은 세내 내에서의 지역 간 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훨씬 큰 편인데, 이 두 가지 차원의 불평등이 중첩되는 가장 열악한 집단이 바로 농어촌 지역의 노령계층인 것이다. 늙어서 못 살고, 시골이어서 못 사는 것이다.
농촌 노인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첫째, 도농 간 소득 격차 때문이다. 농림어업 가구의 경상소득은 비농림어업 가구 소득의 62%밖에 되지 않는데, 이러한 격차가 그대로 노후 저축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농어촌 지역 주민은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되고 7년 반이 지나서야 가입대상이 되었고, 그마저도 초기 가입률이 저조했다. 따라서 현재 농어촌 노령층의 공적연금 수령금액은 도시지역의 65%에 불과한 수준이다.
셋째,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소득보장제도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퇴직연금이 도입 후 20년 동안 일반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고 농어업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노후 자산을 축적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농어촌 노령계층의 빈곤은 당장 소득 불평등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청장년층의 농어촌 유입을 억제해 해당 지역 및 농어업이 쇠퇴, 소멸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농어촌 인구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이다. 인구 25만 명이상 도시 거주 주민을 제외한 소도시 및 농어촌 거주 인구 비중은 우리나라가 11.2%로, 30~60% 수준인 대다수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낮다. 이 비율이 우리보다 더 낮은 국가는 인구 70만 명의 도시국가 수준인 룩셈부르크(0%)뿐이다.

농촌 노후 빈곤책으로서 '퇴직연금'
그러면 농촌 노후 빈곤을 해소하여 중장기적으로 농촌을 평생 살만한 곳으로 탈바꿈하는 데 어떠한 정책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산업 및 노동 정책 측면에서는 농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도농 간의 소득 격차를 구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복지/연금 정책 측면에서는 도시지역의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노후 저축의 기회가 적은 농촌 청장년의 노후 연금제도를 강화하고 가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연금 정책과 관련해서는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모두가 해당한다. 그러나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이제 농어촌 지역에서도 보편화돼 있다. 정부가 농어업 종사자들에게 국민연금보험료를 지원해주는 보조 정책을 꾸준히 시행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온 덕분이다. 그 결과 2023년말 기준 농어촌 18~59세 청장년 세대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77.65%로 대도시의 79.32%와 거의 같고 중소도시보다는 월등히 높다. 앞으로 공적연금 수령금액의 도농 간 불평등은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제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 제도는 2005년 말 일반 근로자들 대상으로 도입되었는데, 2023년 말 전체 근로자 가입률은 51.5%에 달한다. 비정규직(28.5%)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18.3%)의 가입률이 아직 저조한 상황이지만, 이들 역시 기존 퇴직금제도를 적용받고 있어 퇴직 이후 목돈 마련의 보장장치는 똑같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퇴직연금 가입률이 저조한 3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2022년부터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 제도를 도입하여 정부 보조금까지 지원하면서 가입 확대를 유도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반해 농업인 그리고 자영업자에게는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입하라 할 수도 없다.
공적연금, 퇴직연금(또는 퇴직금), 개인저축 등 3개의 노후 소득보장 장치 중 한 축이 농업인에게만 빠져 있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등한 사회보장권(right to social secuity)을 누려야 한다는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농업인에게 퇴직연금제도를 제공해 근로기간 동안 노후 저축을 하도록 하면 적은 부담으로도 또 하나의 국민연금 또는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효과를 누리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간 30년 동안 매월 12만 5,000원을 보험료로 내고 2%의 연실질수익률을 얻으면, 축적된 원리금으로 은퇴 후 20년 동안 매월 30만 원(현재 기초노령연금의 상한액인 32만 3180원에 상응하는)의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 근로자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월 기여율이 월평균임금의 8.33%이므로, 매월 12만5,000원을 납부하게 되는 월평균임금 수준은 약 150만 원이다. 이는 우리나라 2022년 평균 농가의 경상소득 월 239만 원보다 훨씬 낮다. 만일 평균 239만 원을 기준으로 기여금액을 높이면, 30년간 매월 20만 원을 기여하여 은퇴 후 20년간 50만 원의 연금급여를 수령하게 된다. 이는 현재 농어촌 국민연금 평균 수령금액 42만8,000 원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다.

의무 가입시키되 정부가 보조해야
다만 이러한 퇴직연금 도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은, 당장 보험료 납부 부담으로 인해 당사자인 농업인의 제도 거부감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든 어떤 국가든, 청장년 세대는 노후 준비에 관해 단견(short-sighted) 행태를 보이며, 연금제도의 적극적 가입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노후 저축의 독려는 개인의 자발성에만 맡겨 놓을 사안이 아니다. 세계 어떤 국가도 공적 연금을 법적 강제에 의존하지 않은 사례는 없고, 2층 퇴직연금 역시 준강행 제도 또는 연성 가부장주의(soft paternalism)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농업인 퇴직연금이 2층 연금으로서 근로자 퇴직연금과 대등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의무 가입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근로자 퇴직연금의 경우 사용자의 의무 설정을 전제로 하고 있고 기여금을 사용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가입자(근로자)의 의무 가입은 아무런 저항이 없지만, 농업인 퇴직연금은 가입자 본인이 기여금을 부담해야 하므로 의무 가입에 대한 반발이 클 수 있다.
따라서 연성 강제(soft compulsion)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즉 적용 대상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가입(auto-enrollment)시킨 후 본인의 선택 시 탈퇴(opt-out)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가입 방식은, 개인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영어권 국가들에서 강한 규제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한편 소득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업인에게 준강제적인 퇴직연금을 도입해서 이를 안착시키려면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할 것이다.
가입의 편익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임의 탈퇴(옵트 아웃)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보험료 분담이 불가피하다. 유럽 연금제도에서는 1층 공적 연금에서, 사용자 부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자영업자와 농업인에 한정해 정부가 보험료의 일정 비율을 보조해 주는 국가들이 많다.
특히 농업인만을 위한 독립적인 2층 연금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은 최대 절반에 가까운 보험료 부담을 정부에서 보조하고 있다. 일본은 최저 보험료 2만엔의 20~50%인 4천~1만엔의 월 보험료를 대신 부담하고 있고, 대만은 농업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와 같은 금액을 정부에서 매칭해 기여하고 있다.
지자체 '농민수당'을 지원금으로
우리나라도 농업인 퇴직연금의 보험료 지원 방안으로 현재 지방자치단체별로 제공되고 있는 농민수당을 농업인 퇴직연금 보험료 지원금으로 전용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농가당 연평균 60만원 정도로 지급되고 있는 농민수당을 65세 이하 퇴직연금 가입자에게는 연금보험료 매칭 기여금으로 용도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월 최고 4만 6,350원을 보조해 주고 있는 농업인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사업이 가입 확대에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보면, 이와 대등한 규모의 지원이 가능한 농민수당 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안일 것이다. 이 외에도 농업인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제도 설계 방안이나 운영 방식은 이미 여러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 퇴직연금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여 충분히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사회보장권 보장을
농촌사회의 노령 빈곤화가 농업인의 탈농을 더욱 촉진하여 식량 공급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게 될 현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농업인 퇴직연금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유럽이나 일본은 이미 농업인 연금제도를 농업 인구 확보라는 정책 목표의 도구로 인식해 이를 강화, 발전시키고 있다.
세계 선진국 중 2층 보충 연금제도를 농업인에 적용하지 않는 곳은 한국 말고는 없다.
한국의 이러한 연금 불평등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회보장권을 가지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받도록 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어긋난다. OECD 최고 수준의 농촌 노인 빈곤, 지방 공동화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농업인 퇴직연금 도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농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되는 산업이고 미래산업이다. 농민퇴직연금을 통해 국토균형과 돌아오는 농업, 젊어지는 농촌, 이것이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 이용우는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로 정무위원회와 연금개혁특위 등에서 기업의 지배구조, 대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거래 이슈 관련 입법 활동을 많이 했다. 아울러 기후위기 등 대전환의 시대에 주목하여야 하는 ESG 제도 정립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최초로 문제제기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국회의원 전에는 현대그룹, 한국투자금융지주,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CIO,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고, SAIS(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Johns Hopkins University Visiting Scholar(방문학자)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