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살해 사형수, 어떻게 '교도소 담장' 넘어 탈옥했나

박태훈 선임기자 2024. 9.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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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의 롤모델' 정두영 노역 중 파이프·전선 수집 [사건속 오늘]
몰래 만든 사다리로 '3번째' 넘다 휘어져…이후 모든 교도소 방범창
ⓒ News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6년 9월 28일 시민들은 '사형 대기수 탈옥 시도'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탈옥을 시도한 인물이 다름 아닌 정두영(1968년 12월 31일생)이었기 때문이다.

10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 정두영은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이 "나의 롤모델이었다"고 할 만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흉악범으로 2000년 11월 30일 '사형'을 확정받고 사형집행을 대기 중이었다.

아침 식사 막 마친 대전교도소에 울린 1급 비상벨

정두영은 8월 6일 아침 7시 30분 무렵 탈옥을 시도했다.

이 일은 법무 당국이 쉬쉬하는 바람에 아름아름 전해지다가 53일이 지난 9월 28일 언론 레이더에 잡혀 알려지게 됐다.

그가 탈옥에 나선 건 아침식사(오전 7시부터) 후 노역장(공장)으로 이동을 시작할 무렵.

정두영은 한밤중 또는 새벽의 경우 근무자들이 신경을 집중해 경비에 나서지만 아침식사 직후엔 교도관이나 죄수 모두 긴장이 풀어져 있고 노역장 이동 시간에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는 점을 노렸다.

재소자들이 각자 일 할 공장으로 이동하고 있던 오전 7시 36분, 대전교도소 전역에 '1급 비상'이 걸렸다.

교도소 3개의 담장 중 2번째 담장에 설치된 감지센터가 작동,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에 전 교도관은 즉시 비상태세에 돌입, 감지센서 쪽으로 달려갔고 3번째 담장을 막 넘으려던 정두영을 붙잡았다.

그때가 오전 7시 38분을 막 넘긴 순간이었다.

정두영이 몰래 만든 사다리와 담요를 이용해 대전교도소를 탈옥하려다가 사다리가 휘어지는 바람에 마지막 3번째 담장 앞에서 붙잡혔다. (TV 조선 갈무리)

노역장에 있던 파이프, 전선으로 몰래 제작한 4m 사다리…마지막 담장서 굽어져

그날 정두영은 몰래 만든 길이 4m짜리 사다리를 이용해 3개의 담장 중 2개를 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3번째 담장을 넘던 중 허술한 사다리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굽어지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졌고 때마침 달려온 교도관들이 그를 덮쳤다.

정두영은 탈옥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3개의 담장을 넘으려면 사다리가 필요하며 길이도 4m 이상 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노역 중간중간 빼돌린 파이프와 전선을 연결해 완성했다.

당시 정두영 등 대전교도소 수용자들은 자동차 부품회사에 전선을 납품하는 노역을 하고 있었으며 그런 까닭에 작업장에는 플라스틱 파이프와 전선이 널려 있었다.

담요로 철조망 덮은 뒤 담장 넘어…정두영 사건 뒤 모든 교도소에 철제 방범창

사건 당일 정두영은 서둘러 조립한 사다리를 감방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빼냈다.

이어 자신과 동료의 모포를 챙겨 나왔다.

대전교도소는 탈옥을 막기 위해 3중 담장을 설치했다. 첫 번째 담장은 철조망으로 이뤄졌고 두 번째 담장엔 센서, 마지막 세 번째 담장은 4m 높이여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두영은 사다리를 걸치고 담요를 철조망에 두르는 방법으로 1차 담장을 가볍게 돌파했다.

2차 담장도 비슷한 방법으로 넘어간 정두영은 센서가 올려도 3차 담장만 빨리 넘어가면 도망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다리가 휘어지는 바람에 3차 담장을 넘던 도중 넘어져 실패했지만 성공했다면 그 뒤의 일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정두영 탈옥시도 뒤 법무부는 사다리 등을 창문을 이용해 감방 밖으로 빼내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의 모든 교도소 감방 창문에 철제 방범창을 설치했다.

2016년 8월 당시 대전교도소 삼중 담장. (SBS 갈무리) ⓒ 뉴스1

18살 때 첫 살인, 징역 12년형…출소 후 10개월간 9명 살해

정두영은 18살이던 1986년 6월 검문하던 방범대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6월 만기출소한 정두영은 그해 9월 절도 혐의로 다시 붙잡혀 6개월가량 옥살이를 한 뒤 1999년 3월 출소했다.

이후 1998년 6월 부산 서구의 한 가정집에서 강도살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의 재력가 집에 침입해 2명을 살해하는 등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9명을 해쳤다.

모두 10명을 살해한 사형수 정두영. (MBC 갈무리) ⓒ 뉴스1

1· 2심 모두 사형, 상고 포기로 사형 확정…유영철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

정두영은 17명을 살상(살해 9명, 중상 8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00년 7월 21일 1심(부산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했으나 2000년 11월 30일 부산고법도 역시 사형에 처했다. 정두영이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됐다.

정두영은 대전교도소 탈옥 시도 이후 실질적으로 사형집행이 가능한 유일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구치소로 이감돼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정두영을 롤모델'로 삼았던 유영철은 2023년 9월 25일,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대구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 정두영 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과 함께 사형을 대기 중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집행을 끝으로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에 속한다. 현재 미집행 사형확정자는 모두 59명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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