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집단, 에이즈와의 투쟁에 대한 작가의 부드러운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뉴욕 포토그래피 쇼 전시.

마크 모리스로(Mark Morrisroe, 1959~1989)는 짧고 빛나는 한 순간 동안 사진과 공연 예술의 지형을 바꾸며 미국 아방가르드에 독보적인 길을 개척했다. 그의 삶은 라이언 머피(Ryan Murphy)의 티비 시리즈 소재 같지만, 모리스로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사랑, 그리움, 상실감 등의 부드러운 감정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나와 내 친구들의 옛날 사진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1999년에 트윈 팜스(Twin Palms)에서 출간된 기념비적인 에세이에서 모리스로는 밝혔다. “우리는 정말 예쁘고 섹시한 아이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항상 기분이 나빴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왕따였고 인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었다.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우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달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거다.”

트라우마, 마약 중독, 성 노동, 총기 폭력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기 훨씬 전부터 모리스로는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불과 5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란 자신의 끔찍한 과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2023년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뉴욕에서 열리는 포토그래피 쇼(The Photography Show) 기간 동안 클램프(Clamp) 부스에서 모리스로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스트 브라이언 클램프(Brian Clamp)는 “모리스로는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말한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는 홀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모리스로는 어린 시절 침실 벽에 ‘보스턴의 교살자’로 알려진 알버트 드살보(Albert de Salvo)의 구겨진 사진을 붙여두고, 우연히도 자신이 잉태될 당시 어머니의 가까운 이웃이자 집주인이었던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상상하며 지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모리스로는 페르소나, 퍼포먼스, 사진에 매료되기 시작했고, 그의 삶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모리스로는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술적으로 모든 면에서 무법자였다. 그는 극적이고 폭력적인 10대 매춘부 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독특함에 대한 깊은 불신과 맹렬한 감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라고 1993년 낸 골딘(Nan Goldin)은 말했다.
13세 때 모리스로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시작했고, 몇 년 후 불만을 품은 한 고객이 그의 가슴에 총을 쐈다. 총알은 척추에 너무 가까이 박혀 제거할 수 없었고, 모리스로는 평생을 심하게 절뚝거리며 살아야 했다.

“이는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리스로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가슴 속의 총알을 직접 볼 수 있었고, 굴곡진 그의 삶은 작품 안팎에서 투영되었다.”라고 클램프는 말한다. “모리스로는 반항아였다. 그는 성격이 거칠었고 행동뿐만 아니라 작품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성, 장애, 생존, 죽음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모리스로는 자신이 구현하고 연기할 수 있는 페르소나를 개발했다. 1975년, 그는 고등학교 친구인 리넬 화이트(Lynelle White)와 함께 보스턴 전역의 지하 나이트클럽을 돌며 유명인 가십과 팬픽으로 가득 찬 수채화 잡지인 ‘Dirt’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스턴 학파(the Boston School)는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공연가, 사진가들이 등장하면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명문 보스턴 미술학교(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에 입학한 모리스로는 잭 피어슨(Jack Pierson), 낸 골딘(Nan Goldin), 데이비드 암스트롱(David Armstrong), 필립 로르카 디코르시아(Philip-Lorca diCorcia), 스티븐 타쉬지안(Stepehn Tashjian, 일명 태부(Taboo)!), 게일 태커(Gail Thacker), 팻 헌(Pat Hearn), 더그(Doug)와 마이크 스턴(Mike Starn) 등 곧 예술계 스타가 될 이들과 우정을 쌓으며 그들과 단단히 어울려 지냈다.
낸 골딘은 1993년 “1977년 미술학교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우정의 표시로 내 우편함에 똥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복도를 거칠게 절뚝거리며 자신을 마크 더트(Mark Dirt)라고 불렀던 그는 보스턴 최초의 펑크족이었다. 그는 완전히 독특한 예술적 비전과 시그니처를 가진 사진작가로 성장했다. 연인, 친한 친구, 욕망의 대상을 담은 사진과 방, 죽은 꽃, 꿈의 이미지를 담은 감동적인 정물 사진 모두 성적 갈망, 외로움, 상실감으로 공명하며 시대를 초월한 삶의 파편으로 남아 있다.”
모리스로는 네거티브와 프린트를 조작하여 새로운 원본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195 랜드 카메라(Polaroid 195 Land Camera)를 사용했다. 이 매체를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모리스로는 ‘샌드위치 프린트(Sandwich print)’라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컬러 인화물을 만들고 이를 흑백으로 촬영한 다음 두 네거티브 필름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육신에서 벗어나 기억과 정신의 위치에 속한 흐릿하고 미묘한 이미지였다. 이 사진들은 마치 우리가 경이로움과 경외감을 품고 다시 찾아가는 유물처럼 멀리 다른 시간과 장소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은 마치 모리스로가 사진 프레임 주위에 누가, 무엇을, 언제 촬영했는지 기록한 메모를 갓 휘갈겨 쓴 듯 생동감으로 가득하고 본능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폴라로이드는 모리스로가 선택한 다양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포토그래뷰어(photogravure), 시아노타입(cyanotype), 리소그래피(lithography), 슈퍼 8 필름 전사 작업도 병행하며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는 작품의 기술적 결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현상 과정에서 생긴 스크래치, 먼지, 지문을 그대로 남겨두어 이미지의 무형적 감각과 상반되는 물성을 프린트에 부여했다.
사진의 표면 안팎을 넘나드는 모리스의 작업은 그의 삶의 방식을 반영한다.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친밀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클램프는 말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솔직했고, 그 덕분에 친구들도 경계심을 풀고 그와 교류할 수 있었다. 잭 피어슨, 태부, 게일 태커와 같은 사람들과의 친분 관계를 통해 그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도전하며 또 다른 차원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1985년, 모리스로는 저지 시티로 이주하여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한 뉴욕 시내를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모리스로는 젠더, 섹슈얼리티, 정체성, 커뮤니티를 다룬 작품들을 제작하며 후대의 퀴어 이미지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듬해, 팻 헌(Pat Hearn)의 유명한 이스트 빌리지 갤러리(East Village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바로 그 해에 모리스로는 HIV 진단을 받았다. 헌은 모리스로가 1989년 사망한 후에도 1990년대에 일련의 추모 전시회를 개최하며 2000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리스로의 작품을 소개했다. 최근에는 클램프가 모리스로의 독특한 유산을 보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모리스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던 시기에 당당히 성에 관한 발언을 했고, 그것은 매우 용감하고 이례적인 일이었다.”라고 클램프는 말한다. “그는 성에 대해 매우 솔직했고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 커밍아웃을 했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에이즈가 그의 목숨을 위협했을 때에도 그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까지 그는 자신의 쇠약해진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모리스로의 말년은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긴박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비록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업적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예시하며 계속 살아 숨쉬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항상 존재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보다 더 깊은 것을 다룬다고 생각한다.”라고 클램프는 말한다. “이젠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목소리를 높이고 일어서서 싸울 의향이 있다.”

All images courtesy of CLAMP, New York. © The Estate of Mark Morrisroe (Ringier Collection) at Fotomuseum Winterthur.
에디터 Miss Rosen
번역 Yongsik Kim
패션이 뒤바뀐 1997년의 순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