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구조와 기능을 닮은 '뉴로모픽 컴퓨터'는 과연 미래를 바꿔놓을까?

오늘날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대 컴퓨팅은 놀라운 속도로 점점 더 많은 전력을 원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까지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암호화폐 등에 사용되는 전력 소비량은 2022년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2026년 기준, 이 세 분야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양이 일본의 연간 에너지 수요와 엇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오늘날 AI 툴에 대부분 사용되는 칩을 만드는 ‘엔비디아’ 등 기업들은 더욱더 에너지 효율이 높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아키텍처(컴퓨터 구조), 즉 에너지 효율이 높은 아키텍처 개발이 대안이 될 순 없을까.

실제로 일부 기업은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더 적은 전력만으로도 더 많은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뇌이다.

뉴로모픽(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 컴퓨팅이란 뇌의 뉴런과 시냅스를 모방해 뇌의 전기 신호 네트워크와 유사한 방법으로 서로 연결된 시스템을 뜻한다.

아예 새롭진 않다. 연구자들은 지난 1980년부터 이 기술을 개발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러나 AI 혁명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이 기술을 구현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현재로선 아직 연구 툴 정도로만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지만, 이를 지지하는 이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 상업적인 야망을 지닌 이들로는 인텔, IBM과 같은 대형 하드웨어 기업들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일부 중소기업들도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테크인사이트’의 댄 허친슨 분석가는 “이를 구현할 기업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서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은 기업은 엔비디아를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핀클라우드’ 측은 자사의 뉴로모픽 컴퓨터가 AI 구동 시 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에서 비롯된 기업인 ‘스핀클라우드 시스템스’는 지난달 최초로 뉴로모픽 슈퍼컴퓨터를 판매한다면서, 사전 주문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헥터 곤잘레스 CEO는 “우리는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더 빨리 뉴로모픽 슈퍼컴퓨터 상용화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뉴로모픽 컴퓨터 분야를 연구하는 토니 케니언 나노전자 및 나노광자 재료학 교수는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언급했다.

케니언 교수는 “아직 킬러 앱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지만…뉴로모픽 컴퓨팅이 에너지 효율과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 줄 수 있는 분야는 많다”며 “그리고 곧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곳에서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리라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단순히 뇌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부터 거의 완벽하게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하는 단계(아직 현실에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넓다.

하지만 설계상 기존 컴퓨팅과는 차별화되는 몇 가지 기본적인 특성이 있다.

우선 기존 컴퓨터와 달리 뉴로모픽 컴퓨터는 별도의 메모리도, 처리 장치도 없다. 대신 하나의 칩이 이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이에 두 칩 간 데이터 전송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 필요한 에너지량이 줄어들고, 처리 속도도 빨라진다는 게 케니언 교수의 설명이다.

두 번째, 이벤트 기반 접근 방식이다. 기존 컴퓨팅에선 시스템의 모든 부분이 언제나 활성화돼 있으며, 다른 부분들과 항상 통신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그러나 뉴로모핑 컴퓨팅에선 이렇게 모든 부분이 늘 활성화돼 있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뇌 내 뉴런과 시냅스가 무언가 이유가 있을 때만 활성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뇌를 닮은 컴퓨팅도 커뮤니케이션 시에만 잠깐 활성화된다. 처리할 일이 있을 때만 작업을 수행하기에 에너지 소모량이 비교적 적다.

세 번째, 현대 사회의 컴퓨터는 0과 1을 사용해 데이터를 표현하는 디지털 방식이지만, 뉴로모픽 컴퓨팅은 아날로그 방식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처리했던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한 컴퓨팅일 경우 연속적인 신호에 의존하며, 외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경우에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성으로 인해 오늘날 상업적인 뉴로모픽 컴퓨팅 대부분이 디지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뉴로모픽 컴퓨팅이 적용될 만한 상업적 예시는 다음 두 가지 범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스핀클라우드’사가 집중하는 분야이기도 한, AI 구동 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작업 성능도 더 좋은 플랫폼 개발이다. 영상이나 이미지를 분석하고, 음성을 인식하고, ‘챗GPT’와 같은 챗봇을 구동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등에 필요하다.

두 번째는 ‘엣지 컴퓨팅’에서의 구현이다. 데이터가 클라우드가 아닌 로컬 장치에서 실시간 처리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자율주행차, 로봇, 휴대전화, 웨어러블 기술 등이 이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한계도 존재한다. 뉴로모픽 컴퓨팅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로는 이러한 칩을 작동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동하기 위해선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프로그래밍을 기초부터 개발해야 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이에 대해 허친슨 분석가는 “뉴로모픽 컴퓨팅의 잠재력은 엄청나다…문제는 어떻게 구현하냐는 것”이라면서 뉴로모픽 컴퓨팅이 주는 이점을 실제로 느끼게 되기까진 적어도 10년, 혹은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비용도 문제다. 현재 기업들은 상업적 이익을 따져 실리콘을 사용하고 있다. 실리콘이든, 다른 재료를 사용하게 되든 새로운 칩 개발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게 케니언 교수의 설명이다.

마이크 데이비스(오른쪽)는 인텔의 뉴로모픽 컴퓨팅 개발이 “빠른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텔의 현 프로토타입 뉴로모픽 칩은 ‘로이히 2’라고 불린다.

지난 4월 인텔은 ‘로이히 2’ 1152개를 모아 ‘할라 포인트’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11억5000만 개 이상의 인공 뉴런과 1280억 개의 시냅스로 구성된 대규모 뉴로모픽 연구 시스템이다.

올빼미의 두뇌와 거의 비슷한 뉴런 용량을 자랑하는 해당 시스템은 현존 최대 규모라는 게 인텔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텔의 연구 프로젝트에 불과한 수준이다.

인텔에서 뉴로모핑 컴퓨팅 연구소를 이끄는 마이크 데이비스는 “[그러나 할라 포인트는] AI 구동에 이용될 실질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전자레인지 크기 정도인 할라 포인트는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으며”,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빠른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IBM이 인간의 두뇌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 중인 프로토타입 칩의 이름은 ‘노스폴’이다.

이전 프로토타입 ‘트루노스’ 칩에서 진화한 버전인 노스폴은 지난해 공개됐다.

IBM의 다르멘드라 모다 수석과학자는 인간의 뇌에서 영감을 얻은 이 노스폴에 대해 테스트 결과상 시중에 나온 그 어떤 칩보다 에너지 및 공간 효율적이며, 처리 속도도 빠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 칩들을 연결해 더 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다음 단계는 시장 출시일 것”이라는 모다는 노스폴에서 보여준 큰 혁신 중 하나는 처음부터 아키텍처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와 함께 더불어 설계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규모는 작지만, 이 외에 뉴로모픽 컴퓨팅을 개발 중인 기업으로는 ‘브레인칩’, ‘신센스’, ‘인네트라’ 등이 있다.

IBM은 자사의 ‘노스폴’ 칩은 다른 칩에 비해 더 에너지 효율적이며 처리 속도도 빠르다고 말한다

한편 ‘스핀클라우드’의 슈퍼컴퓨터는 EU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와 맨체스터 대학 연구진이 함께 개발한 뉴로모픽 컴퓨팅을 상용화하고 있다.

그 결과 뉴로모픽 슈퍼컴퓨터 2대가 탄생했다.

하나는 맨체스터 대학에서 지난 2018년부터 운영 중으로, 뉴런 10억 개 이상으로 구성된 ‘스핀내커 1’이다.

두 번째는 드레스덴 공과대학에 자리한 ‘스핀내커 2’다. 현재 설정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그 성능은 뉴런 최소 50억 개의 작업을 모방할 수 있을 정도다.

곤잘레스 CEO는 스핀클라우드가 상용화할 시스템은 뉴런 최소 100억 개 수준으로 구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니언 교수는 미래엔 기존 컴퓨팅과 더불어 뉴로모픽, 퀀텀까지 다양한 종류의 컴퓨팅 플랫폼이 공존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