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로 ‘속닥’, 종이값 71% 폭등···담합 제지사들에 20년 만에 ‘가격재결정명령’
4년간 60차례 은밀 회동…공중전화까지 동원한 ‘치밀한’ 가격 담합
톤당 가격 71% 폭등·시장 95% 장악…출판·소비자에 부담 전가
3년간 6개월마다 가격 보고하는 가격재결정 명령도

약 4년간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주요 제지사들이 3000억원대 과징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물게 됐다. 공정위는 20년 만에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가격재결정명령’도 부과했다. 이들 회사들은 담합 적발을 피하려고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식당 전화나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6개 인쇄용지 제조·판매사업자가 약 3년10개월간 인쇄용지 전 제품의 가격 인상에 합의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 총 3383억2500만원을 부과했다고 23일 밝혔다. 공정위는 위반 행위 금지명령·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도 함께 내렸다.
담합 업체와 과징금 부과액은 한솔제지(1425억원)·무림피앤피(919억원)·무림페이퍼(458억원)·무림에스피(3억)·한국제지(490억원)·홍원제지(85억원) 등이다. 공정위는 이 중 한국제지·홍원제지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6개 업체의 국내 인쇄용지 시장점유율은 2023년 기준 95% 이상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6개 제지사는 2020년 이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환율 상승 등으로 원가 상승 압박이 커지자 담합을 모의했다. 이후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60번 넘게 만나 7차례 판매가격 인상에 합의했다. 용지 품목별 기준가격을 올리거나 할인율을 낮추는 식이었다.
담합을 통한 인쇄용지 가격 인상 폭은 최대 15%에 달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한 차례 가격을 올리고 3~4개월 만에 또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담합을 주도한 임직원들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본인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식당 전화나 공중전화를 사용해 연락을 취했다.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이니셜이나 가명 등으로 적어 관리했다. 이들은 먼저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업체에 반발이 집중될 것을 예상해 통보 순번까지 정했다. 합의가 잘되지 않으면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순서를 결정했다.
담합으로 업체들이 이익을 보는 동안 피해는 중간유통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담합 기간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톤(t)당 84만1000원에서 143만9000원으로 약 71% 올랐다. 백상지·중질지·아트지 등 흔히 사용되는 인쇄용지들이 모두 담합 품목에 포함됐다. 담합 관련 매출액은 4조300억원으로 추산됐다.
공정위는 홍원제지에는 관련 매출액의 4%, 나머지 업체들은 12%의 부과 기준율을 적용해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5번째로 크다.
공정위는 업체들이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다시 정하고,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재결정명령도 내렸다. 신규진입이 어려운 제지업계 구조상 담합행위가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고, 마지막 합의 이후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조치다. 공정위가 재결정명령을 부과한 것은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20년 만이자 역대 두번째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주요 인쇄용지가 모두 담합 품목에 포함됐고, 출판업계가 가격 인상의 부담을 떠안는 측면이 있었다”면서 “(재결정명령으로) 가격 결정의 근거를 함께 보고하도록 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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