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밥상 - 대구는 치킨의 도시? 반골의 도시! [전국 인사이드]
돌이켜보면 닭을 무지하게 먹었다. 조각 나 양념이 묻은 치킨, 야채와 당면에 덮인 찜닭은 살아 있는 닭과 상관없는 무언가였다. 경상도에서 자라며 지금껏 먹은 닭을 줄 세우면 못해도 동네 한 바퀴는 될 것이다. 비건 아닌 내가 갑자기 음식에 살아 있는 생명을 겹쳐 보게 된 배경이 있다. 그건 대구의 특징과도 관련 있다.
대학 시절, 닭 요리는 싸고 접근성이 좋았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자주 친구들과 찜닭을 먹었다. 거짓말 좀 보태 대학가 한 집 건너 한 집에선 찜닭을 팔았다. 간장찜닭 중(中) 사이즈를 시키면 세 명이 배불리 먹었다. 납작만두, 당면, 떡 사리를 추가해 양을 불렸다. 동아리 회식은 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의 첫 번째 식당에서 하곤 했다. 프라이드 양념 반반 닭똥집을 질겅질겅 씹으며 생맥주를 마셨다. 해장 단골은 닭곰탕이었다.
닭이야 전 국민이 먹는 음식이라지만 내가 느끼기에 대구·경북은 유별나다. 이 동네에서 시작한 치킨 프랜차이즈가 많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 소비량도 많은 편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 소비자패널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의 1인당 닭 평균 구매 중량은 890g, 대구·경북은 1121g이다. 광주·전라·제주(954g), 대전·세종·충청(843g), 부산·울산·경남(903g), 서울·경기·인천·강원(861g)보다 많은 양이다.
대구에선 매년 여름 치맥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한국치맥산업협회가 주최하고 대구시,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후원한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부스를 차리고 연예인이 무대에 선다. 시민들은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돗자리와 테이블을 깔고 치맥을 즐긴다. 야외에서 먹고 놀고 버리고 떠난다는 점에서 여타 지역 축제와 차별성은 없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는 2014년 쓴 책 〈대한민국 치킨전〉에서 이렇게 평한다. “내세울 만한 음식이 많지 않은 대구가 그나마 유일하게 치킨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축제는 따로 있다. 바로 ‘N맥 페스티벌’이다. 치맥 페스티벌에 반대하는 동물권‧환경단체들이 만든 맞불 축제다. ‘생명을 착취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지역 축제에 의문을 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관계를 위해’ 2022년 첫 축제가 열렸다. 시민단체만의 축제냐 하면 그렇지 않다. 채식을 실천하지만 커뮤니티가 없는 사람,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 SNS에서 보고 온 사람을 더하며 축제는 매년 커지고 있다.
8월31일부터 9월1일까지 이틀간 열린 올해 N맥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고기 아닌 친구로 만나’이다. 축제는 지역과 긴밀하게 호흡한다. 환경, 생태 활동가들이 워크숍을 열고 쓰레기 없는 장터가 펼쳐졌다. 동물권, 비거니즘, 기후정의 관련 영화를 보는 모임은 한쪽에서 영화제를 진행했다. 대구시 지도에 도축장, 동물원, 소 힘겨루기 대회,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 등 동물권 침해 현장을 점으로 찍은 전시도 인기를 끌었다.
그러니까, 대구는 다양성의 도시다. 역동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곳에 살면서 깨지고 부딪히며 변화하는 경험을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입에 넣으려던 음식에 살아 있는 생명이 겹쳐 보이는 순간마다 N맥 페스티벌과 그 친구들을 떠올린다. 함께라면 내 삶을 조금씩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 N맥 페스티벌의 도슨트 활동가 제니가 말했다. “동대구역을 지나가는데 성별 구분을 해놓은 닭 조형물이 서 있었어요. 치맥 페스티벌 마스코트였죠. 그 옆에는 ‘기후 시계’가 있었고요. 기후위기 메시지와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주는) 육식 소비 행사 홍보가 같이 이뤄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짜증나서 2주 만에 맞불 축제를 만들어버렸어요. 치맥 페스티벌 현장에서 행진했죠. 그게 N맥 페스티벌의 시작이었어요.” 역시 대구는 역사 깊은 반골의 도시이기도 하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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