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씬 #1
때 : 5월 어느 화창한 날
곳 : 다저스 덕아웃
역시 명문대 출신이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스탠퍼드 졸업생 토머스(토미) 에드먼(30)이 누군가에게 질문한다. 이상한 자세에 대한 의문이다.
분명 하이 파이브 자세다. 그런데 왼손이 오른손을 받치고 있다. ‘처음 봤다. 도대체 무슨 경우냐?’ 그런 물음인 것 같다.
답변해야 할 사람은 당사자 A다. 그런 포즈를 취한 오타니 쇼헤이(31)다. 뭐라고 열심히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슬쩍 누군가를 가리킨다.
바로 옆에서 웃고 있다. 또 다른 당사자 B다. 루키 김혜성(26)이다. 이 동작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윽고 당사자 B의 보충 수업이 진행된다. 문화적 배경과 역사에 대한 추가 설명이다. (판토)마임을 해석하면 이런 내용으로 추정된다.
“(하이 파이브를) 그냥 한 손으로 하는 건 후배나 동기생 친구들에게만 가능하다. 선배나 존경하는 분에게는 깍듯하게 두 손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분 나쁜 선배의 표정까지 흉내 낸다. 버릇없음의 예시다.
탁월한 전달력이다. 스탠퍼드 출신은 곧바로 이해한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의 피가 흐른다.
‘공손한 하이 파이브’. 이젠 다들 아시는 김혜성의 홈런 퍼포먼스다. 홈에 들어오며, 오타니의 환영을 받는다. 둘이 동시에 두 손으로 예의를 갖춘다.

씬 #2
때 : 2월 어느 화사한 날
곳 : 다저스의 애리조나 캠프
아직 정식 일정이 시작되기 전이다. 부지런한 멤버들이 자율훈련 중이다. 분위기는 느긋하고, 여유롭다.
마침 쉬는 시간이다. 그라운드에 몇몇이 모였다. 가벼운 농담이 오간다. 키득키득, 낄낄낄….
그러던 중이다. 저쪽에서 누군가 나타난다. 이어 좌중을 향해 머리를 숙인다. 그런데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양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굽힌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인사의 전형이다.
한국에서 왔다는 그 내야수였다. 바로 김혜성의 출근 첫날이다.
다른 사람은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딱 하나 다른 반응이 있다. 흰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응대다.
처음에는 짝다리로 편하게 있었다. 그 자세로 엉겁결에 신참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바뀐다. 자신도 정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다. 바로 MVP 오타니였다.
사실 루키의 깍듯함은 이때부터 화제였다. 코치나, 스태프, (선배) 선수들…. 하이 파이브 때도, 주먹 키스 때도. 늘 두 손으로 공손하게 맞는다.
절친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그 연유를 알았다. (일본도 두 손으로 하는 문화는 없기에) 그걸 선배 오타니에게 전해줬다.
예의라면 눈빛이 달라지는 사람이다. 무척 흥미롭게 여겼다. 결국 훗날 홈런 퍼포먼스로 탄생하게 됐다.

씬 #3
때 : 5월 어느 맑은 날
곳 : 다저스 덕아웃
D백스와 홈경기다. 선발 출전에서 제외된 몇몇이 벤치를 덥히고 있다. 윌 스미스, 김혜성, 야마모토 등등의 모습이 보인다.
그중 김혜성은 손에 1회용 컵을 들었다. 처음에는 뭘 마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혀 다른 용도다. 왼손의 해바라기씨를 먹고, 껍질을 컵 속에 얌전하게 뱉는다.
대개는 이러지 않는다. 그건 아메리칸 스타일이 아니다. 껍질은 그냥 툭툭 뱉는 게 일반적이다. 덕아웃 바닥이어도 상관없다. 그라운드 위에서도 아무렇지 않다.
그게 메이저리그의 감성이다. 그게 거친 야생의 느낌이다.
심지어 다저스는 이걸 면전에 뿌리기도 한다. 외야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가 고안한 환영식이다. (당연히 아직 씹지 않은) 해바라기씨를 한 움큼 쥐고, 홈런 치고 돌아온 타자에게 뒤집어 씌운다.
김혜성 자신도 수혜자였다. 또 직접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장면, 컵에 껍질을 뱉는 모습.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씬 #4
때 : 작년 2월 시범 경기
곳 :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미국 첫 공식전 날이다. 덕아웃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눈길이 있다. 오타니였다.
게임조도 아니었다. 훈련이 끝났으면, 집에 가도 그만이다. 그런데 퇴근을 미뤘다. 후배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무척 진지한 표정이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잘 던져야 할 텐데. 긴장하면 안 되는데. 혹시라도 조언해 줄 게 없나. 애틋한 마음이 담긴 모습이다.
그런데 오른손이 특이하다. 역시 1회용 컵을 2개나 들고 있다. 손이 커서 하나처럼 보일 뿐이다.
뭐지? 2개 씩이나?
궁금증은 곧 풀렸다. 해바라기씨다. 한 컵에는 먹기 전 것이 담겼다. 다른 컵은 껍질 뱉는 용이다. 정교함과 깔끔함, 그 잡채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MLB에서 해바라기씨를 누가 처음 씹었을까. 설이 분분하다. 대체로 1950년대를 꼽는다. 전설적인 타자 스탠 뮤지얼이 사랑했다는 보도가 있다.
대중화된 것은 1970년대다. ‘미스터 옥토버(10월)’ 레지 잭슨이 마니아였다. 방송에 출연해서 예찬론을 펼쳤다.
“해바라기씨에는 단백질, 철분, 마그네슘, 인 등등이 엄청 많이 들었다. 근육이 긴장되는 걸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하더라. 매 경기마다 이걸 즐긴다. 그러면 집중에도 도움이 되고, 리듬이 잘 풀리는 것 같다.”
이후로 메이저, 마이너 할 것 없다. 많은 선수들이 애용한다. 심지어 리틀 리그 아이들, 소프트볼의 여성 선수들까지 즐기는 기호품이 됐다.
물론 인성이 바른 사람들도 씹기에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뒤처리까지 신경 쓴다. 남들이 버린 것도 줍는 사람들 아닌가. 자신이 쓰레기를 만들 수는 없다.
게다가 입에서 뱉어낸 껍질은 또 다른 문제다. 팬데믹의 끔찍한 기억도 있다. 어쩌면 도덕성 이상이다. 공중 보건의 문제라는 인식의 확장도 가능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