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화력발전 지상주의...누군가 또 흘릴 눈물

밀양 10년 1) 세월이 흘러도

2) 밀양을 찾는 사람들

3) 밀양을 등진 사람들

4) 또 다른 밀양

5) 밀양, 수도권의 땔감

조명주(65) 하동 금성면 명덕마을 이장은 집 옥상에 올라서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옥상에 양손 가득 담아내도 넘치는 석탄재가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 이장은 석탄재를 발로 쓸어내며 "이런 데서 지금까지 어찌 살았을까"라며 쓴웃음을 보였습니다.

명덕마을 앞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있습니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경제·환경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명덕마을만 겪는 문제는 아닙니다. 정부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석탄·LNG·원자력발전소 같은 시설은 경남을 비롯해 경기·제주 등에 추가 건설됩니다. 명덕마을의 오늘은 화력·원자력 발전 시설이 들어설 곳의 미래입니다.

지난 12일 오전 하동군 금성면 명덕마을 한 주택 옥상에 석탄재가 양손 가득 담겨있다. /정종엽 기자

명덕마을에 사는 정영심(71) 씨는 청소가 유난히 싫다. 집 안 바닥이나 마당에 놓인 평상을 걸레질할 때 묻어나오는 검은 때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는 날이 더우나 추우나 창문을 꼭 닫고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마을에서 50m 떨어진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비회(fly ash)와 목을 칼칼하게 만드는 연탄 냄새 때문이다.

명덕마을 주민 수는 409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155명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하동화력발전소 1~8호기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하동화력발전소는 1993년 착공해 1997년 1호기를 시작으로 2009년 8호기까지 준공했다.

명덕마을 주변 기피 시설은 화력발전소뿐만 아니다. 발전소와 명덕마을 사이 산등성이에는 345㎸, 154㎸ 송전탑이 늘어섰다. 주민들은 화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 20여 년 동안 생업 기반과 건강을 잃었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몸에서 검출된 발암물질 = 경남 석탄화력발전소의 2023년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20%인 2350만t에 달한다. 굴뚝자동측정기(TMS) 대기오염물질 배출량도 전국 배출량의 25%인 7755t을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5월 경남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가 공동으로 정보공개 요청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2023년 호기별 온실가스 배출량 및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라는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대부분이 2차 미세먼지의 원인인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로 구성됐다.

2017~2021년 환경부가 진행한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 당시 사천·고성 성인 40여 명의 소변검사에서 나프탈렌 대사물질 농도가 각각 6.18㎍/L, 9.28㎍/L로 나왔다. 창원시 주민(2.42㎍/L)보다 4배 높은 수치다. 또 사천 2개 학교와 고성 1개 학교 학생 320여 명이 참여한 조사에서도 나프탈렌 대사물질 농도가 3.42㎍/L로 전국 평균(2.49㎍/L)보다 높았다. 나프탈렌 대사물질은 1급 발암물질이다.

◇발전소 지으면 마을 좋아지는 줄 = 지난 11일 오전 명덕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정욱(49) 명덕마을주민피해대책위원장은 '석탄발전소 건설'이라는 강을 건넌 걸 후회했다.

이 위원장은 "중학생 때 수업을 마치면 항상 김 양식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을 도왔다. 그때 명덕마을은 김 양식을 주업, 밭농사를 부업으로 삼았다"며 "그때 부모님이 전면보상을 받고 발전소가 들어설 때 김 농사 안 한다고 엄청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다"고 말했다.

2020년 명덕마을 주민들은 석탄발전소 소음피해와 관련한 배상을 이끌어냈다. 석탄발전소 피해 관련 전국 첫 배상 사례다. 2020년 경남도 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발전소 소음 탓에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명덕마을 주민 주장을 인정했고 주민 86명에게 4억 353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조정안을 권고했다.

주민들은 암을 비롯한 질환자들이 늘고 있어 자체적으로 중금속·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해 건강권 상실을 입증해 이주 요구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이 위원장은 2010년 이후 암에 걸린 주민만 35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20명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 어머니 역시 희귀질환을 앓고 있고, 형수 역시 식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위원장도 원인 모를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 주민들은 한국남동발전을 상대로 이주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다.

삼천포 화력발전소는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총 6기가 지어졌다. 현재 1~2호기는 폐쇄됐고 3∼6호기는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다만, 3~4호기는 LNG로 전환해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천포화력발전소 근처에는 모례마을(사천 향촌동)이 있다. 주민 120여 명인 이곳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이다. 전형적인 어촌이었으나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어업 비중이 줄고 지금은 주민 대부분 밭농사를 짓는다.

처음에는 발전소가 들어오면 동네가 그저 살기 좋아지는 줄 알았다. 기대했던 경제 효과 대신 흘러들어온 것은 석탄 가루였다. 창문을 열지 못했고 빨래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김세상(74) 모례마을 통장은 "여름철에 바람을 타고 석탄 가루가 흘러들어온다"며 "현재 발전소 가동이 줄어 피해는 줄었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명주(왼쪽) 하동군 금성면 명덕마을 이장과 이정욱 명덕마을주민대책위원장이 석탄화력발전소 인근을 바라보고 있다. /김다솜 기자

◇명덕마을과 닮았던 밀양 = 조명주(65) 명덕마을 이장은 2014년 밀양행정대집행 당시 현장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투쟁했다. 조 이장은 당시 밀양이 명덕마을 처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명덕마을도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 전 평화로운 일상이 있었고, 발전소 때문에 공동체가 깨지는 일도 경험했다.

명덕마을은 하동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민 대부분이 수산업으로 삶을 꾸렸다. 김 양식이 활발했는데 조 이장은 그때를 떠올리며 큰 손짓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 당시에 다 수작업을 해서 김을 뗀다고 해요. 한 장씩 떼서 말리거든요. 불에 가져다 대거든요. 이 지역은 불에 김을 떼면 색이 너무 좋게 나와요. 그때 하동김은 인기가 최고였죠."

2004년 평화롭던 명덕마을 주민들이 갈라서기 시작했다. 하동화력 7·8호기 증설 당시 발전소 인근에 있는 가린마을과 명덕마을 이주대책이 논의됐다. 이때 가린마을 이주는 진행됐지만 명덕마을은 불발됐다.

당시 명덕마을 이주가 불발된 이유는 2018년 정보공개청구로 밝혀졌다. 명덕마을 대표가 주민들에게 위임장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밀실에서 '이주 불가'와 '피해조사에 따른 개별보상'을 합의한 것이 드러났다. 2010년 하동화력발전소가 이주협의를 다시 진행하려 했지만 이러한 내용은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문제로 명덕마을 주민 400여 명은 양쪽으로 갈려 갈등을 빚었다. 그렇게 무너진 공동체는 한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눈엣가시 발전소, 없어져도 걱정 = 이정욱 위원장은 "발전소 인근에 있어 무슨 보상을 많이 받는 줄 알지만 지금까지 받은 것은 소음 관련 배상뿐"이라며 "발전소 때문에 생업기반을 잃고 소음·환경 등 생존권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덕마을 주민들은 발전소가 내는 발전소 주변지역사업비나 경남도 지역자원시설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하동군은 하동발전본부가 낸 주변지역사업비를 매년 발전소 인근 5㎞ 이내에 있는 금성면·금남면·고전면에 특별회계로 배정한다. 지역자원시설세 역시 경남도가 받아 60억 원 정도를 하동군에 내리지만 마을 주민에게 쓰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민들은 녹차밭 같은 현장에서 일용직을 하거나 작은 밭농사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조명주(오른쪽) 하동군 금성면 명덕마을 이장과 이정욱 명덕마을주민대책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조명주 명덕마을 이장은 "주변지역사업은 발전소 피해를 보는 마을 주민들의 소득사업으로 써야 하지만 이마저도 농로 포장, 하천 정비 등에 쓰이는 게 현실"이라며 "또 인구별로 차등지급해 발전소 코앞에 있는 우리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사업비를 적게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은 여수나 율촌산단, 발전소에서 일하기도 한다"며 "노인들은 현장에서 일할 수가 없으니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지역주민들은 화력발전소 폐쇄 이후도 걱정이다.

하동석탄화력발전소 1~6호기는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모두 폐쇄된다. 주민들은 폐쇄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가속화를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하동군은 지금 연간 3400여 명씩 인구가 주는 마당에 화력발전소까지 전부 폐쇄되면 지역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며 "정부는 대책이랍시고 가동률도 얼마 안 되는 LNG발전소 건설을 내놓았는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남희 사천남해하동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LNG로 전환되면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등이 일자리를 잃게된다"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소 사용을 중단하는 동시에 정부가 고용과 지역 경제 침체를 해결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밀양10년기획취재팀 = 김다솜·김연수·박신·최석환·정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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