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 뚫어야 대입도 뚫어요.. 고교 동아리, 가입 경쟁률만 10대 1

박상현 기자 2016. 6.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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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학종시대 新풍속도(4) 동아리+인맥.. 명문대 간 선배들이 멘토 역할, 입시 스펙에도 유리화학·생물·영어·신문 동아리가 '명문'.. "고교 첫 시험이 동아리고사"

"동아리 가입도 또 하나의 입시(入試)예요. 서울대생 배출한 동아리는 경쟁률만 10대 1이 넘습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세화고의 한 실험실. 흰 가운 입은 '화학실험연구동아리' 학생 20명이 과산화수소수가 담긴 비커에 황산·말론산 등 여러 시약(試藥)을 섞으며 색깔 변화를 관찰했다. 학년마다 10명 선발하는 이 동아리에 가입신청서를 낸 신입생은 총 103명. 서류전형에서 A4용지 1장 분량의 '실험사전보고서' 과제를 심사해 우수학생 20명을 추리고, 화학 기초 지식을 묻는 최종면접을 거쳐 10명이 선발됐다. 동아리 반장 선우원(17)군은 "지난해 이 동아리 출신 선배 7명이 서울대 등 주요 대학에 합격해 학기초부터 가입 경쟁이 치열했다"며 "명문대 진학한 선배들과 연결고리가 생겨 매력적"이라고 했다. 지도교사 서윤수(27)씨는 "이름난 동아리는 입성(入城) 기회가 신입생 때 한번뿐이라 가입부터 전쟁"이라고 했다.

10대 1 넘는 경쟁률

동아리도 '명문(名門)'을 따진다. 학종 이후 고교생들 사이에선 재미·스펙·인맥 3박자를 고루 갖춘 '명문동아리'가 고급 이력(履歷)으로 통한다. 실습 중심 체험학습이 학교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고, 대입(大入)에선 '전공적합도'를 보여주는 스펙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명문의 가늠자는 '동맥(동아리+인맥)'이다. 졸업생 숫자도 숫자지만 명문대 입학생을 꾸준히 배출해야 건강한 동맥이다. 주요 대학 배출자가 없으면 동맥은 끊어지고 동아리는 죽는다. 사람 동맥(動脈) 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명문동아리가 '될성부른 떡잎'을 찾다 보니 서류부터 필기·면접까지 까다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경기여고 3학년 이수영(가명·18)양은 신입생이던 재작년 3월 초, 동아리 신청 기간에 맞춰 난생처음 토플(TOEFL) 책을 샀다. 이양이 지원하려던 영자신문부 필기시험에 토플 기출문제가 나온다는 소문을 들어서다. 이양은 "8명 뽑는데 90명이 몰렸다. 고등학교 입학해 처음 치른 시험은 중간고사가 아니라 '동아리고사'였다"고 했다.

치열한 동아리 입성전(戰)이 끝나면 희비가 엇갈린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어토론부에 들어간 김지혜(가명·16)양은 "졸업생과 재학생을 일대일로 붙여 '입시(入試) 멘토'를 만들어준다는 동아리에 합격해 기쁘다"며 "신입부원 환영회에 온 명문대생 선배들을 보니 확실히 동기부여가 됐다"고 했다. 동아리 가입에 3수(三修)하는 학생도 있다. 정지호(가명·16)군은 "탈락 소식만 들으니 이러다 동아리 낭인(浪人)이 될까 두려웠다"며 "대학은 동아리처럼 3수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과학·영어동아리 강세

'더 테이블'이 서울 강남지역 고교 10곳에서 대입(大入) 성과가 뛰어난 동아리 20개를 조사해보니 7개 학교에서 화학·생물 등 과학동아리가 '명문'으로 나타났다. 대세가 된 이학·공학계열 인기가 동아리에도 반영됐다. 영작문·구술 실력을 겸비한 우수학생이 모인 영어 관련 동아리 역시 강세를 보였다.

뜻 맞는 학생들끼리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 활동하는 '자율동아리'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정혜원(32) 진선여고 동아리담당 교사는 "명문동아리에서 떨어졌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며 "잘 키운 자율동아리 하나가 열 명문동아리 안 부럽다"고 했다.

세화고 문과생 6명이 지난해 3월 초 창설한 토론동아리 '너머'는 구성원 스스로 자율동아리를 '명문동아리'로 탈바꿈시킨 경우다. 가령 주제어로 '올림픽'을 잡으면 경제학 지망자는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언론학 지망자는 '비인기 종목의 올림픽 중계'를 세부 주제로 잡아 짧은 리포트를 쓰고 발표·토론했다고 한다. 자율동아리로 '전공적합도'를 키운 6명은 올해 서울대 3명을 비롯해 전원 'SKY' 대학에 합격했다. 박기혁(54) 세화고 교무부장은 "자율동아리는 커리큘럼을 직접 짜는 만큼 자신의 적성·진로와 맞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며 "자율동아리 숫자도 매년 증가해 올해는 상설동아리 숫자 60개를 크게 웃도는 92개가 활동 중"이라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동아리 확대가 학종이 목표한 '공교육 강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한다. 전병희(49) 현대고 진로부장은 "학종의 도입 목표는 학교생활만 성실히 해도 대입 준비가 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동아리활동은 그 자체로 진로·적성을 탐구하는 과정이자 대입에 필요한 이력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명문동아리가 오히려 대입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원재(47) 분당영덕여고 교사는 "지원 대학이 비슷한 전교권 학생들이 동아리마저 같을 경우 천편일률적인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동아리 명성에 얽매이지 말고 '차별점'을 둘 수 있는 활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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