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젠트리피케이션, 욕망을 선물하다

2016. 6. 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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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도시 살렸지만.. 터전 잃은 원주민들 도시 난민 전락 / 미국 젠트리피케이션 빛과 그림자
미국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 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도시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한국어로 ‘도시 재활용’ 또는 ‘둥지 내몰림’으로 번역된다. 전자는 이 현상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후자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도심 거주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면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사회보장시설의 미비 등으로 소득불평등 구조가 심화한다. 결국 사회적인 약자는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렇지만 도심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빈민가의 확산으로 도시 전체가 서서히 죽어갈 수 있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빛과 그림자를 심층 진단해 본다.

◆도심으로 밀려드는 두 부류의 사람들

미국 주요 도시의 도심 근처에 위치한 낙후 지역에 ‘신중산층’이 밀려들면서 재개발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쾌적한 주거시설, 상업건물, 쇼핑몰, 문화시설 등이 생겨나면서 젊은 전문직 종사자와 자녀가 집에서 떠난 부유한 중·노년층 부부가 속속 밀려들고 있다.

미국에서 18∼35세 연령층 인구가 부모와 함께 교외에 거주하다가 대학 졸업 이후 고소득 일자리를 찾으면 부모 곁을 떠나 도심에 거처를 마련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또 자녀가 대학 진학과 결혼 등으로 집에서 떠난 부모가 교외에 있는 단독주택을 팔고 도심의 아파트와 콘도 등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이들 두 그룹의 숫자는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고 미 의회 전문지 CQ 리서처가 보도했다.

도심 재개발로 인해 집값과 임대료가 폭등함에 따라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은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시의 임대료는 13.5%, 보스턴은 5%, 마이애미는 6%가량 뛰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도시 인구의 인종별 구성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워싱턴의 흑인 민권운동가 메리언 베리가 직선제 시장으로 취임한 1979년, 도시의 흑인 비율은 70%에 달했다. 백인은 26.9%, 히스패닉은 2.8%에 그쳤다. 그가 2014년에 사망했을 때 워싱턴의 흑인 비율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백인 인구는 36%로 늘어났고, 히스패닉이 10%를 차지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쇠락해 가던 미국의 도시들이 부활하고 있다. 신시내티, 클리블랜드, 피츠버그시 등은 195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쇠락한 도시였다. 그러나 도심 재개발과 함께 주요 기업들의 본사가 도심으로 들어오고,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함께 유입되면서 죽어가던 도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오스틴, 덴버 등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도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이곳의 도시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 시설은 갈수록 첨단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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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이 부른 도시 양극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일부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은 도시 밖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아직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도심지역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도시 전체가 재개발지구와 낙후지역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두 도시 이야기’가 어느 특정 도시가 아니라 주요 대도시에서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시카고, 뉴욕,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등이 대표적이다. 한 도시에 부유한 계층과 저소득층이 거주하면서 양측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소득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도시일수록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포틀랜드, 시카고, 시애틀 등 대도시의 재개발 붐은 이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를 압도하고 있다. 이들 대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은 미국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CQ리서처가 지적했다.

미국은 1990년대 초와 2008년 경기 침체기 당시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요 대도시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도시가 지속적으로 번성하려면 연령과 직업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계층의 주민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도심의 학교는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고 학군이 좋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학교의 질을 높여 학생 자녀를 가진 중산층을 도심으로 유인할 수 있어야 도시가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양극화 문제는 미국 도시가 안고 있는 핵심과제이다. 미국 주요 도시는 앞다퉈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리고 있다.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등 캘리포니아의 주요 도시, 워싱턴 등이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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