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대박', 대박을 꿈꾸며 역사를 상상했다

기자 2016. 5.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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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을 상상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는다. 역사로 구축된 현재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인생사가 곧 도박”이라는 관점으로 “단 하나뿐인 옥좌를 둘러싼 꾼들의 전쟁”을 표방한 SBS 월화드라마 ‘대박’도 가능성의 역사를 상상한 역사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조선왕조 제19대 왕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숙종은 장희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로 그동안 대부분의 역사드라마에서 염문의 주인공으로 호출되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숙종(최민수)은 기존 역사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성정의 인물로 등장한다. 인현왕후를 그리워하는 지아비의 모습과 함께 노론과 소론의 정쟁(政爭)에 맞서 왕권을 지키는 절대 군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현왕후를 연상시키는 무수리 복순이(윤진서)를 품에 안기 위해 그녀의 남편 백만금(이문식)을 상대로 투전판을 벌이고,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숙종과 맞서는 역사적 인물은 이인좌(전광렬)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이인좌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권쟁탈을 시도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이른바 ‘이인좌의 난’으로 잘 알려진 그는 드라마에서 백만금과 복순이를 이용해 역모를 꾸미는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운명을 타고났으나,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인물로 설정된 이인좌는 복순이가 인현왕후와 닮은 것을 인지하고 그녀를 숙종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이인좌의 계략에 따라 숙종의 여자가 된 복순이는 회임을 하면서 숙원(淑媛) 첩지를 받고, 6개월 만에 아들을 출산한다. 육삭둥이로 태어난 숙원 최씨의 아들이 임금의 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면서 그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궁궐 밖의 백만금에게 보낸다. 육삭둥이로 태어나 투전판 타짜의 아들로 성장한 백대길(장근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인좌의 음모와 계략에 휘말린다. 그리고 투전방에서 만난 연잉군(여진구)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숙종과 이인좌 그리고 숙원(숙빈) 최씨와 연잉군(영조) 등의 실존 인물 사이에 백만금과 백대길 등의 허구적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역사적 사실(史實)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투전, 골패, 바둑, 장기, 쌍륙, 검패, 승경도 등 조선시대 도박을 매개로 옥좌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박을 꿈꾸며 상상한 역사 혹은 역사드라마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인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연출되었고, 개연성을 담보하지 못한 백만금의 부활은 반전이라기보다 눈속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 연잉군과 허구적 인물 백대길의 대립과 갈등이 선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숙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싶을 정도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행간을 상상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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