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와 한 끼] 스시 달인 코우지 "초밥은 한 입 크기로 아슬아슬하게 먹어야 제 맛"








23세에 초밥 배워 40세에 전성기! 스시 셰프 나카무라 코우지초밥은 한 입 크기로 아슬아슬하게 먹어야 제 맛! 세계적인 일본 요리사는 모두 학교가 아닌 스승에게서 배웠다
스시를 좋아한다. ‘스시’라는 부드러운 발음 뒤엔 내 살갗을 부벼 기어이 감동하고야 마는 황홀한 나르시시즘의 세계가 있다.
따뜻한 밥을 타고 목구멍으로 떠내려오는 물고기의 희고도 붉은 살결, 간장에 절인 새우의 미세한 바이브레이션, 붉은 참치의 농밀함, 노란 성게알의 동물성..., 혀로 스시를 향유하는 기쁨은 초여름 평상에서 나쓰메 소세키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을 때의 기쁨과 견줄만 하다. 마치 나라는 개인을 위한 성대하고 화려한 애무랄까.
스시 셰프는 오랫동안의 준비 작업을 거쳐, 숙련된 솜씨로 단 칼에 한 입 스시를 내어놓는다.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스시의 세계에서 불은 불경한 것이다. 대신 질좋은 와사비로 마무리된 스시는 전라도 3년 묵은 김치나 홍어 혹은 후숙(後熟)이 잘된 치즈처럼 머릿속에서 화르륵 잔불을 일으킨다.
그리고 거칠고 강한 와인들이 입 안에서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하듯,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듯, 밥과 생선도 부드럽게 녹아든다. 그것은 완벽한 관능의 맛이다.
◆ 밥 짓기 3년, 밥 쥐기 8년이라는 초밥의 세계
반대로 지나치게 쏘는 와사비, 부서지는 밥알, 뻣뻣한 생선을 씹을 때는 재미없는 농담을 들을 때처럼 한숨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탄식하고야 만다. 차라리 우라늄을 먹는 게 낫다!
나카무라 코우지(40세)는 23세에 초밥을 배우기 시작했다. 17년 간 밥을 짓고 생선을 만졌다. 그의 손마디는 굵고 단단하지만, 손바닥은 고운 핑크빛이다. 때론 연인의 손을 잡듯, 때론 투수가 야구공을 쥐듯, 매일 한 줌의 밥알을 쥔다. 밥알의 갯수를 일일이 셀 수는 없지만, 한번 쥐면 정확히 13g이다.
‘밥 짓기 3년, 밥 쥐기 8년’은 일본의 초밥 세계에서 유명한 말이다. 밥알을 쥔 직후가 가장 맛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물 흐르는 듯한 속도로 손님 앞에 초밥을 내어놓는다.
“자, 드시죠.”
잘 만든 초밥은 완성된 후, 밥알 사이 공기가 빠져나가 숨을 쉬듯 몇㎜ 가라앉는다. 코우지가 자신만만하게 접시에 올려놓은 스시는 군더더기가 없다.
심지어 ‘겨우 요 정도인가?'싶을 만큼 크기도 작고 생김새도 단출하다. 입을 하마처럼 벌려 욱여넣야할 정도의 과도한 사이즈, 복잡하고 화려한 토핑으로 조형한 타파스 형태의 ‘창작 스시'들이 넘쳐나는데, 이토록 소박한 스시라니!
그건 마치 부풀린 사자 머리 미녀들이 늘어선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쪽진 머리의 산골 처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잘 지은 밥, 숙성된 생선, 와사비와 간장이 만나서 어우러진 일식 미니멀리즘의 정수. 그 단순한 한 입 먹거리가 가진 놀라운 풍미에 음식 블로거들이 성지 순례하듯 돌아다닌다는 스시의 세계. 초밥 전문점 스시 코우지는 쟁쟁한 스시 장인들이 문을 열고 경합하는 청담동 일식당 중에서 요즘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이다.
◆ 더 보고 싶은 데 스르르 사라지는 여자같은 스시의 맛
코우지는 한국인 아내를 둔 덕에 한국말이 유창하다. 기계공학도 출신으로 스시에 반해 도쿄의 역사 깊은 ‘이즈미스시’에서 8년 간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쳤다. 그 후 호주 시드니 ‘피시 페이스’ 등에서 헤드 셰프로 일했다.
도쿄로 돌아와 8년 연속 미슐랭 3스타 선정된 일식 레스토랑 ‘칸다’에서 스승 칸다에게 가이세키 요리를 배웠다. 2012년, 한국으로 건너와 63빌딩 일식당 ‘슈치쿠’에서 조리장을 맡았을 때, 이미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유명인사가 됐다. ‘스시 코우지’는 그가 2014년 청담동에 연 초밥집이다. “내가 최고라고 말할 순 없지만, 긴자의 스시 명인이 한국에 와도 당장 나만큼 맛있게는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실내 장식엔 그 흔한 꽃이나 대나무 장식도 없다. 편백 도마와 몇 개의 긴 칼, 10개 남짓한 의자, 안쪽 룸에 서너 개의 테이블이 전부다. 여백이라고 불러야할 지, 미완이라고 불러야 할 지 아리송할 정도. 어쨌거나 눈 앞에 초밥 말고는 눈 둘 때가 없다.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참치 뱃살 스시와 광어 스시를 먹어보았다. 몸에 꼭 맞는 바지를 입은 듯 한 입 스시가 입 안으로 꼭 들어찼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분 좋은 당혹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먹은 게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닌데..., 그렇게 코우지의 스시는 3초 간의 황홀한 추억을 남기고 목구멍 너머로 아스라히 사라졌다.
“더 보고 싶은 데 어디 가버린 여자같죠?”라고 코우지 셰프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스르르…, 작은 뱀장어나 비단 스카프가가 입 안을 훑고 지나간 것 같아요”라고 내가 말했다.
◆ 발효 생선 먹기 위해 만들어진 스시, 식초에 버무린 밥으로 새롭게 탄생
‘셰프와 한 끼'에 매번 동행하는 게스트 에디터이자 압구정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 이유석은 ‘바로 그게 스시 코우지의 매력'이라고 했다. “자꾸만 다시 보고 싶어서 또 찾게 돼요. 저는 지금 장염 걸렸는데도, 유혹을 못 참고 스시를 먹으러 왔어요.”
생선을 크게 만들어 얹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게 코우지의 신념이다. “생선과 밥은 입 안에서 순식간에 같이 없어져야 해요. 입 안에 따로 남아 어그적거리는 건 일본인 스시 셰프 입장에선 말이 안돼요.” 그는 생선을 크게 해달라는 사람에겐 아예 스시 2피스를 준다.
일본 전통 음식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스시. 서양인들은 오로지 스시를 먹기 위해 젓가락질을 배운다. 일본에서 스시는 생선을 장기간 보존할 목적으로 생선과 전분을 갈아넣고 발효시킨 데서 유래했다. 처음엔 은어나 붕어 같은 민물 생선을 소금에 절인 뒤 밥 속에 묻어 누름돌을 올려놓고 수개월 발효시킨 후 밥보다 주로 생선을 먹었다.
힘들게 해 먹던 초밥은 ‘니기리스시'라는 방법이 고안되면서 부터 빠르게 일반화됐다. ‘니기리'는 손으로 쥐어만든다는 뜻. 1820년대 요리사 하나야 요헤이가 밥을 식초 비빈 뒤 손으로 쥐어 생선 조각을 얹어냈다. 식초를 첨가한 조리 방식으로 최소 몇 달이 걸리던 초밥을 단 몇 분 안에 만들 수 있게 됐다.
성격 급한 도쿄 사람들에 의해 니기리 스시는 더욱 발전했다. 간토 대지진 당시 도쿄의 스시 요리사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더욱 명성을 얻었다. 2차 대전 후엔 연합군 사령부가 식량 공급을 통제하기 위해 식당 영업을 금지하고 쌀 1홉과 초밥 10개의 물물교환만을 허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초밥의 생명은 생선이 아니라 밥이라는 것. 내가 코우지에게 스시 코우지가 자랑할만한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시그니처는 ‘밥'이라며, 신주단지 모시듯 나무 밥통을 안아서 보여주었다.
◆ 쌀은 경기도 이천 쌀, 밥솥은 압력이 아닌 일반 밥솥으로
스시 코우지의 밥은 경기도 이천 쌀로 짓는다. 전기압력밥솥이 아닌(압력 밥솥에 밥을 하면 쌀이 깨지거나 밥이 질어질 수 있다), 일반 밥솥으로. 밥물을 얼마나 할 것인가는 여전히 주방의 논쟁 거리다. 물을 10g 더할까, 말까가 코우지의 유일한 비밀 레시피다. 밥을 지은 후 적초(술 찌꺼기를 3년 숙성시켜 만든 빨간 식초)를 섞을 때도 밥맛은 또 미세하게 달라진다. “머리에 예상 목적지가 있어야 해요. 레시피와 혀를 사용해서 그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거죠.”라고 그가 덧붙였다.
코우지는 내가 일본 스시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묵묵한 스시 장인들과는 달리 매우 경쾌한 사람이다. 그렇게 그가 만든 초밥도 묵직하고 깊은 맛보다 사랑스럽고 간질간질한 맛이다. 매실을 생각하면 침이 고이듯, 산도와 와사비의 매운 맛이 완벽하게 조절된 그의 스시는 먹으면 먹을수록 첫사랑에 몸이 단 총각같은 마음이 된다.
동행한 이유석 세프는 ‘셰프와 한 끼'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코우지가 완성된 스시를 내놓을 때마다 받아 삼키며 마치 열반에 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과거의 클래식한 초밥과 요즘의 트렌디한 초밥의 딱 중간에 있어요. 밥의 익힘과 붙음이 정말 최고예요.”
육포 위에 참기른 바른 듯 매무새 반듯한 참치 등살 스시, 혀에 닿는 순간 햇살에 봄 눈 녹 듯 사라지는 참치 뱃살 스시, 스모키한 야생의 맛 구운 참치 스시, 모범생같은 장어 스시, 삼키고 나면 일본 민요라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전갱이 스시, 순식간에 북해도 어시장 골목으로 데려가는 간새우 성게알 스시…, 이윽고 말로만 듣던 전설의 시메사바 보우 스시를 경험할 순간이 왔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를 최고로 맛있게 해야 진정한 요리사
일본 관서 지방에서 해먹는다는 전설적인 고등어 김밥 스시를 이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날줄이야! 코우지는 도마 위에 초절임한 고등어 한 마리를 펴서 생강, 와사비, 시소를 빠른 손놀림으로 넣었다. 그 위에 밥을 얹어 넣어 김밥처럼 돌돌 만 다음, 숯을 얹은 석쇠로 표면을 살짝 지졌다. 이어 유자 가루를 뿌리고 투명 다시마 필름을 얹어 코팅하면 마무리.
김밥처럼 한 입 크기로 썰어진 시메사바 보우 스시는 의외로 투박한 맛이었다. 초밥을 먹는 행위의 즐거움은 재료의 에센스를 모아 놓은 음식을 입 안으로 쏙 집어넣는 그 경쾌함에 있는데... 아쉽게도 시메사바 보우 스시는 중심축인 고등어와 주변축인 시소, 다시마 보다 밥의 뚱뚱한 무게감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제대로 된 무게감으로 치면 마지막에 먹은 계란 구이가 일품이었다. 새우와 마를 섞어 만든 계란 구이는 아랫 층에 무거운 카스테라와 윗층에 가벼운 푸딩의 맛이 오묘하게 겹을 이뤘다.
어쨌든 스시에 대한 코우지의 자신감은 손님을 행복으로 전염시켰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여기서 먹었다,는 손님도 있었어요. 계란구이나 밥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냥 밥인데 왜 이렇게 맛있지? 그냥 계란구이인데 왜 이렇게 맛있지,라고 느끼는 순간 진짜 감동이 오는 거예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요리를 아무도 못할 수준으로 만들어 보여줄 때, 그 최선의 기본을 행할 때, 감동이 오는 거죠.”
◆ 학교가 아닌 가게에서 오랜 시간 배우는 일본 요리사들
일본 요리사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도 바로 그런 정신 때문이라고. “일본 요리사들은 요리 학교 안가요. 학교에 가면 머리만 커져요(웃음). 일본인들은 어릴 때 부터 유명한 가게에 들어가 막내 생활을 하면서 배워요. 어릴 때부터 하루 13시간 씩 계속 요리를 해왔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을 수 있을까를 스승을 보며 깨치죠. 돈과 성공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스시 코우지의 메뉴판은 이 집의 인테리어처럼 심플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셰프에게 다 맡긴다’라는 뜻의 오마까세가 메뉴의 전부. 어디에 앉아 몇 피스를 먹느냐에 따라 점심 4만 5천원~10만원, 저녁 12만원~18만원이다. 스시의 특성 상 셰프가 바로 바로 쥐어 내놓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바가 단독 룸보다 비싸다.
요리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곳, 스시 코우지에서 코우지의 스시를 먹었다. 상어 피부 강판으로 즉석에서 갈아 낸 와사비와 몇 알의 소금, 생강을 앞에 두고. 복받은 얼굴로 맛있게. 그 맛은 단순하고 선명했고,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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