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연애의 정령>-편의점 알바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

2016. 4. 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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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정령>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꿀알바’가 아님을 보여준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편의점을 찾지만, 최저 기준의 보장도,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편의’는 더욱 땅에 떨어져 간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일명 ‘땅콩리턴’ 사건 이후, ‘갑질’이라는 단어가 우리 곁에 제대로 자리잡았다. 이전에는 뭐 저런 경우가 다 있어, 하고 생각하던 일들을 우리는 이제 그렇게 명명한다. 얼마 전 미스터피자의 정우현 회장 덕분에 이 신조어는 다시 한 번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 회사에서 나가지 않았는데 정해진 시간에 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했다. 악수하는 척 다가가서 손을 잡고는 턱을 두 차례 때렸다고 한다. 상대를 방심하게 하고서는 붙잡아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급소를 가격한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연출에서나 볼 법한, 그리고 ‘Don’t try this at home’이라는 문구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할 비열한 행동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 중에서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시간제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을의 공간에 서는 이들이다. 대개는 최저 기준의 사회적 보장을 받거나 그것조차 받지 못 하는 일이 많다. ‘알바생’이 업주에게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각 포털의 ‘아르바이트 게시판’에는 최저시급이나 주휴수당을 받지 못 하고 신고 여부를 고민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라는 문구가 언제부터인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그 어떤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더라도 묵묵히 감내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김호드 작가의 만화 <연애의 정령>의 한 장면.

알바의 당당한 태도에 독자들 열광

<연애의 정령>은 평범한 ‘모태솔로’ 대학생에게 연애 코치를 담당할 정령이 찾아온다는 다소 환상적인 설정의 웹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연애보다는 오히려 ‘편의점 알바’라는 키워드로 화제가 되었다. 작중 인물 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은이 업주와 손님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동은은 신입 교육을 시작하며 먼저 그에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겉옷을 입게 한다. 그에 따르면 알바를 천민처럼 생각하는 진상들에게 나도 귀한 자식이란 걸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그는 반말을 하는 손님이 들어오자 함께 반말로 응수한다. 왜 반말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니가 하길래” 하고 간단히 답한다. 손님이 돈을 던지자 거스름돈을 바닥에 뿌리고, 새치기를 하는 손님은 “황천길도 새치기해서 가세요”라며 밖으로 내쫓는다. 점장에게도 “친구 집 개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곤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을 한다. 독자들은 여기에 열광했다. 많은 이들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추억이 있다. 혹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많은 선후배들이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누군가는 사회 경험을 쌓으려는 다양한 목적으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동은이 만났던 수많은 ‘진상’들과 마주했을 것이다.

최저시급이면 일도 최저만 하게 시켜야 나 역시 학부생과 대학원 과정생 시절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편의점에서 가장 오래 일했다. 낮에는 수업을 듣거나 조교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주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진상은 ‘점주’였다. 그는 내가 야간에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의 최저시급조차 지급하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여기는 다 그렇다는 그의 말에, 스무 살 중반이었던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유니폼을 입었다. 한 번은 폐기된 음식을 먹었다가 꽤나 모욕을 당했다.

직영점이 아니어서 폐기 식품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새벽에는 술에 취한 손님들이 많이 왔다. 넘어지면서 가판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30대 직장인도 있었다. 어차피 내가 치워야 할 일이었는데, 그는 나에게 기분이 나쁘냐고 묻고는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훈계를 하고 돌아갔다. 그밖에 돈을 던지거나, 새치기를 하거나, 여러 사소한 ‘갑질’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편의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간제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한다. 최저, 혹은 그 이하의 사회적 보장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도 최저 수준으로 해도 좋다”는 암묵적 합의는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는 언제나 그 이상을 강요 받는다.

<연애의 정령>은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서비스를 도맡아야 하는 편의점 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꼬집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노동으로 흔히 인식된다. 하지만 편의점은 더 이상 계산대에서 바코드만 찍어 주면 그만인 공간이 아니다. 우선 대형마트의 조리코너에나 있을 법한 음식들이 카운터를 중심으로 진열되어 있다. 치킨이나 튀김, 수제 과자와 빵 같은 것들은 물론 전화로 예약하면 피자까지 직접 구워내야 한다. 이런 조리뿐만 아니라 배달 업무도 추가되었다. 일부 편의점에서는 원두커피를 일정 금액 이상 주문하면 추가비용 없이 배달도 해준다. 얼마 전에는 애플리케이션과 결합한 편의점 택배 서비스도 출시되었다. <연애의 정령>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더 이상 ‘꿀알바’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림을 참조하면 음식을 직접 조리하거나 고객의 건강까지 책임지고 있다면서 “이런 편의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부연했는데, 인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소급하면 이미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절반은 넘는다. 편의점 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경우는 지역 노인의 건강관리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다고 하니, ‘편의’라는 단어는 정말이지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셈이다.

선거가 가까워 오면 여러 정치인들이 편의점을 찾는다. 유니폼을 덧입고 바코드 찍는 기계를 들고서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을의 공간’에 관심을 갖는 정당이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저 기준의 보장도,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편의’는 더욱 땅에 떨어져 간다. 동은이처럼 연애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롤’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하고 치킨을 시켜 먹으면 만사가 행복한 평범한 대학생들이 오늘도 편의점에서 ‘편돌이’로 ‘편순이’로 변신한다. 우리는 이들 역시 ‘남의 집 귀한 자식’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돌 혜리가 TV광고에서 “알바가 갑”임을 선언한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사장님’들이 단체로 해당 업체의 탈퇴를 결의하는 등 우리 사회의 반향도 컸다. 하지만 혜리도 틀렸다. “알바‘도’ 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집단이 자신의 아래로 선을 긋는 것은 분명히 다른 집단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모든 타인 역시 ‘갑’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갑질이라는 단어는 조금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땅콩은 제 손으로 까먹어야 하고, 문이 닫혀 있으면 열어주기를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사장님도 알바생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갑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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