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로 지목된 기업비자금, 형사적 처리는?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2016. 6. 1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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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비자금 조성의 목적·용처에 따라 횡령죄 성립 여부 갈려

[머니투데이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 [[the L] 비자금 조성의 목적·용처에 따라 횡령죄 성립 여부 갈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꼽았다. '양성화'라는 표현으로 인해 도박, 마약, 성매매와 같은 지하경제를 합법화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양성화'는 그간 세금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지하경제를 '드러낸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다. 지하경제를 파악해 세수를 확보하고 재원을 마련, 국민들의 조세부담을 줄이고 국민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 지하경제의 중요부로 지목된 기업의 '비자금', 조세포탈의 결과 초래

기업이 경영활동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祕資金)'도 지하경제의 중요부로 지목됐다. 비자금은 일반적으로 법인의 회계장부상에 올라있는 법인의 공적 자금이 아니라 법인회계로부터 분리시켜 별도로 관리하는 법인의 자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매출을 축소하는 등 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돈을 마련하는 행위는 기업 자산을 감소시키고 과세표준을 줄임으로써 조세를 포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대기업 등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더욱 본격화 되었고, 2013년부터 이루어진 수사의 결과물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잇달아 접하고 있다.

그런데 "비자금을 조성한 자는 징역 몇 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는 법조항은 없다. 비자금 조성 자체로 곧바로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한 행위들과 조성 후에 해당 자금을 사용한 행위가 형법이나 조세범처벌법, 각종 특별법을 위반하였는지는 살펴 범죄인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조성한 비자금을 은닉하거나 도피, 반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서 처벌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 비자금 조성했다고 곧바로 횡령죄가 되는 것은 아냐

비자금으로 적발된 기업들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방법은 매출액을 실제보다 감소시키는 것이다. 회사가 벌어들인 돈 중 일부를 누락시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세금계산서를 사용하지 않고 거래를 한다든지, 매출단가를 조작하거나, 생산량을 축소 조작하는 방법이 적발된 바 있다.

이와 같이 경영자가 기업 영업활동에 따른 수익을 누락하여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위가 형법이 정하는 횡령죄에 되는지가 문제되곤 한다.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의사'가 필요한데, 불법영득의사란 남(법인)이 아닌 자기(경영자)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남의 재산을 자신의 것처럼 처분하는 의사이다.

따라서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회사를 위해 사용할 목적으로 조성했고, 실제 회사를 위해 사용했다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와 무관한 용도 혹은 개인적으로 착복할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된다.

판례도 "법인의 운영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의 자금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조성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인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횡령죄의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 1999. 9. 17. 선고 99도2889 판결, 대법원 2008. 8. 21. 선고 2007도9318 판결 등)

그런데 비자금 조성이 법인을 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경우인지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한 불법영득의사는 결국 행위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 검찰이 그 내심의 의사를 입증하는 것에는 사실상의 어려움이 있다.

결국 법원은 여러 간접적 정황을 고려하여 '불법영득의사'를 판단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의 동기, 방법, 규모, 기간, 비자금 보관방법 및 실제 사용용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대법원 2006. 6. 27. 선고 2005도2626 판결, 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6도6994 판결 등)

◇ 비자금을 회사임직원 경조사비·국회의원 입후보자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경우는?

비자금을 회사를 위해 또는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사용한 경우에는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회사 임직원과 현장관계자 및 거래처에 대한 경조사 비용, 복리후생증진 비용, 휴가비용, 명절 선물비용으로 지출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7도4784 판결)

법원은 위 사안에서 경조사비와 같은 지출을 개인적 이익이 아닌 회사의 원활한 운영과 임직원 관리, 거래처와의 유대관계 유지 등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비자금을 위와 같이 사용함으로써 부수적인 목적으로서 경영자 개인의 위상과 평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 오고자 하였거나 결과적으로 그러한 효과를 얻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들만으로 횡령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을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것이 문제된 적도 있다. 보관 중인 회사 재산을 처분한 대금을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의 선거자금으로 지원한 경우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그 주된 목적이 국회의원 입후보자 등의 이익을 도모함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질 뿐, 전적으로 회사 자체의 이익을 도모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고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1999. 6. 25. 선고 99도1141 판결)

또 최근 법원은 비자금을 조성하여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모 기업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2심에서 횡령죄를 인정하기도 했다.

1심은 비자금 조성은 인정되나, 비서실 운영자금이나 회사에 필요한 경조사비, 임직원 격려비용 등에 쓴 만큼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달랐다. 피고인이 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비정상적인 방법(회사 임원들의 현금 수당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내부 구성원조차 그 존재를 몰랐던 점,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인 자금과 유사하게 비자금을 사용한 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

경조사비, 격려금 등 회사업무상의 필요로 지출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업무추진비의 목적을 넘어 개인체면유지, 지위과시를 위한 비용 지출로 보고 회사를 위한 경비 지출이 아니라고 하며 횡령죄를 인정했다.

◇ 비자금(slush fund), 질척하고 지저분한 돈인가, 선원이 모아둔 고기 기름인가

비자금은 비밀자금의 줄임말이다. 숨겨둔 돈, 존재 자체가 비밀이 되어야하는 돈이다.

이런 비자금을 영어권에서는 slush fund 라고 한다. 보통 slush(슬러쉬)는 '반쯤 녹아 질척해진 눈'을 가리키는 단어로 알려져 있지만, 점성이 증가해 진흙처럼 된 기름 역시 slush라고 한다.

과거 영국에서 선원들이 항해 중에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고기를 끓이면 기름이 떠올랐는데, 그 고기의 기름을 버리지 않고 몰래 모아두었다가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항구의 상인들에게 팔았다. 이렇게 고기를 끓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름을 팔아 챙기는 짭짤한 부수입이 slush fund로 불리게 되었고, 후에 몰래 조성한 돈, 부정한 자금이라는 뜻에서 비자금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slush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뜻과 같이, 녹아 질척해진 눈처럼 기업과 사회를 혼탁하게 할 뿐인지, 아니면 고기를 끓이면서 생겨난 기름과 같은 존재인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시각을 달리한다.

그리고 그 고기기름을 왜 모으게 되었는지, 이를 팔아 번 돈으로 무엇을 하였는지에 따라 비자금에 대한 횡령죄 판단은 결론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계리 변호사는 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기업 활동에 따른 횡령, 배임 및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 등 기업형사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웹페이지 바로가기

김계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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