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4060 '옷장'과 '워드로브'


최근 옷 잘 입고 패션에 관심 많은 친구들이 종종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워드로브(Wardrobe)’. 본래는 옷장이나 의상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상의 모든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더 나아가, ‘누군가의 취향을 반영한 현재 혹은 앞으로 갖출 의상 계획’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좀 더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죠.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써 온 말이지만 한국에서 워드로브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의미를 부여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옷이 평상복과 외출복의 영역을 넘어, 내 옷장 안의 모든 것, 즉 ‘개인의 취향’이 깃들기 시작하며 찾게 된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워드로브를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인물이 윈저공(Duke of Windsor·사진) 입니다. 윈저공은 영국 왕 조지 5세의 맏아들로 1936년 왕위에 올랐으나, “무거운 책임을 맡는 일도, 왕으로서 원하는 바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았다”는 멋진 말을 남기며 1년 만에 자신의 왕위를 포기한 로맨티시스트로 많이 알려져 있죠. 또한 멋쟁이로도 유명했죠. 전통과 자부심으로 뭉친 영국 신사들의 복식을,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스타일을 시도함으로써 무차별적으로 깨뜨려 남성 복식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바로 윈저공입니다. 글렌체크나 페어아일 등의 패턴물을 믹스 매치하거나 당시 노동자들이 입던 스웨터를 포멀의 상징인 타이와 같이 레이어드해서 입었고, ‘윈저 노트’라고 불리는 새로운 타이 매는 법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워드로브에는 이런 그의 취향이 명확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다양하게 연출된 스타일에 비해, 실제 보유하고 있는 옷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합니다. 취향이 명확히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끊임없는 새로운 조합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옷장을 열어 “아, 입을 게 정말 하나도 없어”라고 투덜댑니다. 주말을 기다려 백화점이나 매장으로 달려가 눈에 들어오는 옷 몇 개를 사서 다시 옷장에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 옷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옷들과 좀처럼 잘 어울리지 않죠. 그리고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됩니다. 매번 이렇게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건, 내가 가진 ‘취향’을 기반으로 한 나만의 구매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옷장을 ‘옷장’이라 부르는 것과 ‘워드로브’라 부르는 건 그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며 하나둘씩 채워온 옷들, 그리고 여기에 어울릴 만한 다음 옷들을 계획을 세워 채워 넣었다면 어땠을까요.
다시 말해서 워드로브는 내 옷장을 살펴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것이죠. 애초에 기준이 잘 세워져 있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확률이 낮습니다. 충동구매로 돈을 낭비하는 경우도 줄어들겠죠. 윈저공처럼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옷들로 끝없는 조합을 만들어가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모든 옷을 다 바꾼다 생각하지 말고,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나씩 내 기준과 호흡으로 채워 가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오늘은 다시 한 번 옷장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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