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베드 코리아] 역전의 용사들 "90년대 CDMA 성공 신화 단순 복제로는 안돼 "






“제가 법대를 졸업한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들 공대를 졸업한 줄 알지요. 인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
“행시에서 톱 20위 합격자 대부분이 정보통신부를 지원할 정도로 정통부에는 우수한 자원이 많았습니다. 정통부가 사라진 지금, 그 인재들은 어떤 비전을 꿈꾸며 지낼 지 궁금합니다.”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경상현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이 급환으로 지난 2일 별세했다. 맑고 흰 피부에 차분한 음색을 가진 경 전 장관의 부고가 새해 벽두에 들려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습관대로 아침에 산책길에 나섰다가 쓰러졌다. 경 전 장관은 ‘한국정보방송통신대연합 경상현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12일 예정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 초청장도 IT업계 종사자들에게 발송해놓은 상태였다.
지난 3일 고인의 빈소(서울 서초구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를 찾았을 때, 정보통신부를 출범시킨 주역들과 세계 10번째로 전전자(全電子)교환기(TDX)를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을 상용화한 ‘역전의 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통부 출범 산파 역할을 한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 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시절 CDMA 2단계 개발을 지휘했던 양승택 전 정통부 장관, ‘탱크주의’로 유명했던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고인의 고등학교·대학교 동문인 김은영 전 KIST 원장, 카이스트(KAIST) 총동문회장을 역임한 오길록 전 ETRI 원장 등이다. 이들은 80·90년대를 또렷이 기억해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한민국이 제2, 제3의 CDMA 신화를 다시 쓸 수는 없을까. 원로들의 답은 “CDMA 기술 개발 절차를 단순히 복제해서는 승산(勝算)이 없다”였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답이었다.
◆ “80·90년대 TDX/CDMA 성공 신화 단순 복제로는 안돼”
TDX와 CDMA 주역들은 1980, 90년대 대한민국 상황과 2015년 대한민국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1980년만해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500달러 수준이었다. 2014년 기준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963달러다.
양승택 전 정통부 장관은 “1980년대 TDX를 개발할 때 삼성전자가 인쇄회로기판(PCB)도 제대로 못 만들었다”면서 “ETRI가 PCB와 테스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주고 테스트 장비까지 사줬지만, 삼성전자는 시제품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다”고 회고했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 CDMA 개발할 때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ETRI에서 PCB 설계도를 보내면,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 즉각 시제품을 만들어 올 정도로 기업 경쟁력이 커진 것이다. CDMA의 경우 연구개발과 응용제품 제작을 같이 하는 이른바 ‘동시공학’이 가능했다고 양 전 장관은 전했다.
그는 “이제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예산은 ETRI 예산의 열배가 훨씬 넘는다”면서 “민간 영역이 이렇게 커진 상황에서 CDMA 성공신화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1980,90년대 국가 주도형 ‘테스트베드 코리아’를 뛰어넘는 새 국가산업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배순훈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해외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경상현 전 장관이 한국으로 귀국했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는 “박 대통령은 서울대 교수 월급의 3~4배를 더 주며 해외 우수 과학자들을 한국 국책 연구소 연구원으로 데려왔는데, 고인도 그 중 한명이었다”면서 “이런 일은 권위주의 시대에는 가능했지만, 지금 가능한 일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책 연구소 연구원들의 애국심과 사명감은 대단했다. 배 전 장관은 “고(故)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고인 등이 나라 걱정하며 밤을 새웠던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TDX를 개발할 때는 연구원들이 일종의 각서도 썼다. 기술개발을 책임진 연구소장, 선임연구부장, 관련 부서 실장들이 ‘전자교환기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체신부에 제출했고 당시 연구원들이 이 서약서 사본을 회람했다. 연구원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CDMA 개발할 때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경상현 전 장관은 생전에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1991년 5월 퀄컴과 CDMA 기술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 후 ETRI 연구원 30~40명은 물론 가족까지 미국에 보냈다”면서 “연구원들은 기술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시험을 하고 문제점을 발견해 나갔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국책 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예우는 크게 바뀌었다. 김은영 전 KIST 원장은 “연구원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줄어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면서 “국가 주요 연구소의 인재 유인책이 하나둘씩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소 연구원들이 CDMA 시스템을 개발할 때처럼 불타는 사명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오히려 연구소는 잇따른 인재 유출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 CDMA 중국이 표준으로 채택하면서 날개...와이브로는 고립하다 좌초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개인이동통신서비스(PCS)의 표준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난항이었다. CDMA 기술은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보다 통화품질이 우수하고 가입자 수용 규모도 크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기술이었다. 반면, TDMA는 많은 나라에서 표준으로 채택한 검증된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TDMA와 CDMA 복수 표준안을 채택하는 것이 국내 기업의 해외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경 전 장관은 “2개 표준으로 가면, 국가 예산 1000억원을 투자한 CDMA 기술이 사장될 수 있다”면서 CDMA 단독 표준을 고수했다. 청와대 쪽에서는 미국의 압력과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복수 표준안을 내심 바랬다. 결국 경 전 장관은 초대 정통부 장관이었지만, CDMA 단독 표준을 고수하다 1년 만에 경질된다.
우여곡절 끝에 PCS 방식은 CDMA 단독 표준으로 결론이 나고 1996년 한국이 CDMA의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상용화에 성공해도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동통신 서비스업체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CDMA 기술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국내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CDMA 기술을 활용해 각각 ‘애니콜’, ‘화통’이라는 브랜드로 휴대전화 단말기를 속속 내놓았다. 1994년만 해도 모토로라의 국내 단말기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지만, 1996년에는 70%가 삼성전자 제품이었다. 퀄컴과 우리나라가 CDMA 기술을 공동 개발했기 때문에 국산 통신장비 회사들이 잘 나갔다.
문제는 해외였다. 삼성전자, LG전자는 CDMA를 통해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GSM 방식의 해외 시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GSM 단말기 개발 능력은 경쟁사에 비해 한참 뒤처졌기 때문이다.
CDMA의 구세주 역할은 중국이 했다. 김대중 정부의 끈질긴 구애 끝에 중국 정부가 CDMA를 이동통신 표준 가운데 하나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도 CDMA 방식을 채택하면서 CDMA 방식이 세계 이동통신시장의 20%까지 올라갔다. 삼성전자가 중국에 통신 장비를 팔고 LG전자와 팬택 등이 해외에 휴대전화 단말기를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국내 통신사 고위 임원은 “중국 정부가 CDMA를 표준으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CDMA 신화와 통신강국 코리아는 없었고, 휴대인터넷 ‘와이브로’처럼 국내에서 쓰다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제2의 CDMA’를 꿈꾸며 지난 2006년 차세대 통신기술인 ‘와이브로’ 개발에 성공한다. 200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파총회에서 ‘IMT-2000’으로 통칭되는 3세대 이동 통신(3G)의 6번째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꿈도 컸기에 정부는 와이브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정부는 기업들과 함께 1조원 가까이 투자해 와이브로를 개발했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 등에서 서비스됐지만, 북미, 유럽 등 통신 신진국에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또 CDMA의 성공을 도운 중국마저 자체 기술력으로 이동통신 표준을 준비하면서 와이브로는 ‘변방의 기술’로 전락했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CDMA의 성공 신화를 단순히 답습했던 것이 와이브로의 실패 요인이었던 것이다.
◆ 정통부 노하우 잇지 못하고 한번에 사라져…테스트베드 2.0 전략 고민해야
1980년대부터 체신부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TDX처럼 전화시스템이 컴퓨터와 결합하고, 컴퓨터와 컴퓨터가 통신하는 데이터통신이 개막하는 시대였다.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체신부를 정통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정통부는 행정고시 상위 20위권 내에 들어가야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는 최고 인기 부처가 됐다.
부처가 출범하고 뿌리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통부 출범 역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직 개편은 없다”고 공직 사회를 안심시켰다가 철통 보안 속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3일 만난 원로들은 “여러 부처에서 시기와 질투, 견제를 보냈는데, 당시 상공부의 견제가 가장 노골적이었다”고 전했다.
정통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갑자기 해체됐다. 정통부 소속 관료들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당시 지식경제부, 행정자치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옛 정통부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일부가 됐다.
양승택 전 장관은 “정통부는 예산을 따야 하는 다른 부처와 달리 정보화촉진기금을 바탕으로 일을 벌이면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면서 “잦은 조직 개편 탓에 그 노하우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고 정통부를 지원했던 우수한 인재들이 갈 일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인 5세대(G) 이동통신 선점 경쟁에 돌입했다. 5G는 4세대보다 최소 100배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주파수와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꿈의 서비스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황창규 KT 회장은 4일 신년사에서 “2018년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5G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면서 “첫 5G 시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CDMA 성공과 와이브로의 실패를 교훈 삼아 5G에서는 중국, 일본 등과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있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제2의 CDMA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까. 또다시 와이브로의 실패 전철을 밟을까. 원로들은 CDMA 성공의 인자(DNA)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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